이현권 작가의 사진전 <서울, 한강을 걷다>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렸습니다. 아쉽게도 현재는 막을 내렸지만,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을 품고 있는 한강을 담아낸 전시를 소개합니다.
이현권은 사진작가인 동시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입니다. 의사 이현권은 인간의 내면에 감춰지고 오랜 시간 동안 억압 받아 왔던 것들을 밖으로 꺼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타인과 자신을 분석적으로 관찰할 수밖에 없는데요. 관찰하는 것이 일인 만큼 정신분석을 포함한 자신만의 색다른 시선을 사진이라는 언어를 통해 풀어냅니다. 기존 작가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접근입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관찰하고 개인의 역사를 투영해 온 ‘한강’ 시리즈로 구성했습니다. 작가는 한강 시리즈를 크게 세 시기로 나누었습니다. 2010년에서 2013년까지는 정신분석을 시작한 시기로 사진이라는 틀에 자신의 감각과 감정의 에너지를 표현하려는 시도를 계속했습니다. 2014년에서 2017년은 정신분석이라는 문법을 통해 감정과 감각을 사진에 투영하는 작업을 심화시킨 기간입니다.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작가만의 시각 언어를 확고히 다지기 위한 다양한 실험들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작품을 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회화성입니다. 사진인데 그림처럼 느껴졌습니다. 파노라마 형태로 한강의 특성을 고스란히 담은 까닭에 길쭉한 형태의 회화 작품을 보는 듯했습니다. 회화성을 강조하고자 후보정을 했는지 물었습니다. “후보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필름 카메라로 촬영 후 필름을 그대로 전달하고 현상, 인화된 결과물을 받아 볼 뿐 포토샵을 통한 후보정은 하지 않는다.
– 이현권 작가 –
작가가 사진을 찍을 때 가장 노력하는 부분은 ‘삶의 과장된 것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과장된 욕망들은 깊은 내면보다는 보이기 위한 사진들을 만들기 때문이라는데요. 작가가 한강과 함께한 10년은 과장된 욕망들이 사진으로 드러났다가 반성한 후 욕망을 제거하기 위해 다시 노력하는 반복의 시간이었습니다.
‘한강 시리즈’는 애초에 어떻게 출발하게 되었을까요? 의사라는 직업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바쁘고 힘틀텐데 적은 개인 시간을 쪼개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는 두 번의 인상 깊었던 순간을 들려줬습니다. 중학생 시절 사촌 형이 직접 인화하고 현상한 흑백 사진을 보여줬던 일, 대학교 본과 3학년 시절 성형외과 교수님이 사용하던 카메라를 툭 빌려줬던 일이 의사 이현권을 사진작가로 만들었다네요. 전공의 시절 정신과 병원에서 만났던 만성 환자들의 삶을 흑백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삶이 구비구비 흘러가는 한강의 속성과 닮았다고 느껴 자연스레 한강 쪽으로 발걸음이 잦아졌다고 합니다.
상담을 하거나 시골 병원의 만성 환자를 접하다 보면 반짝이는 문명에서 벗어난 상처와 고통의 영역에 서 있는 인간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모습 역시 제 안에 존재하고 있고 그런 모습을 받아 들여가며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인 것 같아요. – 의사 이현권
정신분석의 임상에서 만난 환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깊은 마음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저는 한강에서 ‘역사적 인간’을 발견합니다. 제 마음도 더 깊어지는 걸 느낍니다. 제 삶과 한강이 동시에 흘러가기 때문이겠지요. 비록 한강의 역사에 비하면 나의 시간은 ‘점’에 불과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겠지만, 그래도 사진과 함께한 시간은 나에게 가장 의미가 있는 순간입니다. – 사진가 이현권
한강과 함께한 지난 10년의 순간들을 기록한 동명의 사진집도 나왔습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그에게 사진은 자신의 내적 상황을 투사한 결과물이며, 찍는다는 행위는 자연의 외피를 묘사하는 것이 아닌 경험과 선험성의 합일이다. 자연을 능가하는 인간의 우월성을 배척한 겸손함이며, 자유를 향한 몸부림, 나와 분리된 타자적 삶을 지근거리에 위치한 공간에서 스스로 치유하기 위한 무대라고 볼 수 있다.”는 비평을 남겼습니다.

- 서울, 한강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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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한스그라픽
발매
2021.02.25.
■ 이현권 사진전 <서울, 한강을 걷다 10년(2010~2020)>
10월 6일(수) ~ 10월 19일(화)
10:30 – 19:30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2관(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75)
문의 : 02)399-1114
올댓아트 구민경 인턴
권재현 전시팀장
allthat_art@naver.com
자료 및 사진 ㅣ마리앤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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