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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찾았다… ‘채광 맛집’ 빛이 머무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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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유명 가구 매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입구부터 홈 오피스콘셉트에 주력한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코로나19로 집콕 시간이 길어지면서 홈 인테리어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는 뉴스의 한 대목을 증명하듯 말이다. 비단 실내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국내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에는 타운하우스나 단독주택에 대한 관심과 질문이 부쩍 늘었다.
    도시와 집, 이동의 새로운 미래 심포지엄에 따르면 타인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고,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전원주택, 단독주택에 시선을 돌리는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해외 사정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단독주택 판매가 1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고, 탈도시 움직임이 일어나며 주택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저금리·밀레니얼·교외주택 수요에···美 신규주택 판매 15년만에 최대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그려준 화가

    많은 이들이 ‘주택앓이’에 빠져 있는 이 시국에, 우연히 위와 같은 글을 발견했다. 도대체 어떤 집이기에 “내가 살고 싶은 집”이라는 극찬을 남겼을까. 단서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그림에서 찾았다. 



    황혼에 물든 날 Long Golden Day 2000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243.9 x 147.4 cm 현자 리 에이브론스 소장 Collection of Hyonja Lee Abrons Location: Cayuga Lake, NY ©Alice Dalton Brown

    잔잔한 파도와 바람에 휘날리는 커튼만으로 평화로움을 선사하는 이 작품은 드라마 <부부의 세계>, <미스티>, <비밀의 숲> 등 인기 드라마에 등장한 ‘유명 소품’ 이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다면 SNS에서도 종종 목격했을 것이다.

    작품의 제목은 ‘황혼에 물든 날’이다. 그림 속 집을 상상해본다. 요즘 말로 ‘뷰 맛집’, ‘채광 맛집’ 일 것이다. 아직 감탄하기엔 이르다. 이토록 섬세한 이미지는 사진이 아닌 그림이다. 몇 번을 들여다봐도 사진 같지만, ‘사진으로 착각할 만큼’ 세밀한 그.림.이다. 



    창에 비친 산딸나무 Dogwood Reflected 2006 종이에 파스텔 Pastel on paper 59.7 x 45.1 cm 에릭 마틴 브라운과 사라 그레이스 윌슨 소장 Collection of Eric Martin Brown and Sarah Grace Wilson Location: Peekskill, NY ©Alice Dalton Brown

    지난 8월 중순,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빛이 머무는 자리> 전시가 진행 중인 서울 삼성동 마이아트뮤지엄으로 향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해외 최초 최대 규모 회고전으로, 오리지널 유화 작품을 비롯해 대형 유화 및 파스텔화 등 작가의 50여 년간의 작품 활동을 총망라하는 작품 80여 점이 소개됐다.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는 작가가 극사실주의 화풍을 확립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마이아트뮤지엄의 커미션 작을 완성한 2021년 현재까지, 시기와 화풍 별로 분류됐다. 

    앨리스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녀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 1939년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 댄빌에서 태어난 그녀는 뉴욕 주 이타카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즐겼지만 전문적인 예술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대신 학구열이 불타는 동네였다) 그런 그녀에게 자연은 더할 나위 없는 스승이었다. 느지막이 뜨는 햇빛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그림자는 작가의 큰 예술적 영감이 됐다.

    1960년 결혼한 그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대학생이었던 남편과 함께 10년간 교외 지역에 살았다. 이후 교수가 된 남편의 직장을 따라 뉴욕으로 이주했는데, 이 시기는 그녀가 예술가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그녀의 가족이 머물고 있던 동네가 바로 예술계를 평정하던 뉴욕의 중심부였기 때문이다. 소호의 여러 갤러리에서 갓 완성된 작품들을 지척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경험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공부였다. 또 다양한 여성 예술가들의 모임에 참여하며 그녀는 여성도 인정받는 예술가가 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1970년대 뉴욕이 뭐 어찌했는데?! 짧게 설명하자면, 이 시기 미국에는 극사실주의 열풍이 불었다. 이는 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극히 리얼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미술 경향 중 하나다. 일각에서는 사진을 베낀 공허한 미술이라고 비난했지만 사진과 같은 철저한 사실 묘사에 대중들은 시선을 빼앗겼다. 앨리스도  그중 하나였다. 소호의 포토리얼리즘에서 얻은 영감과 기법적 힌트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로 발전했다



    봄의 첫 꽃나무 First Spring Tree 1988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98.1 x 142.2 cm 질과 알렉스 디미트리에프 소장 Collection of Jill and Alex Dimitrief Location: Artist’s closest childhood friend’s home, Ithaca, NY; tree from Washington Square Park, New York City, NY ©Alice Dalton Brown

    지난 50년간 앨리스는 인공적인 소재와 자연적인 소재의 관계에 관심을 두며, 두 요소가 만나는 지점을 빛으로 탐구했다. 특히 ‘시선’을 옮겨가며 ‘빛’을 담아냈다. 1980년대에는 건물 외부와 내부를 나누는 경계에 시선을 두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장면을 그렸으며, 2000년대에는 완전한 가상의 세계를 창조해내기에 이르렀다현재 그녀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뉴욕 공립도서관 등 유수의 기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국내 많은 컬렉터들에게도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에디터가 오래도록 시선을 뗄 수 없었던 ‘내가 살고 싶은’ 집, 아니, 작품들을 추려봤다. 

    어룽거리는 분홍빛



    어룽거리는 분홍빛 My Dappled Pink 1992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98.1 x 154.9 cm 개인 소장 Private Collection Location: Key West, FL ©Alice Dalton Brown

    제게 있어서 집이란 사람, 쉼터, 기억, 꿈을 상징하기 때문에 참 매력적이에요. 시각적으로 현관은 빛을 포착하여 공간의 빛을 머물게 합니다. 현관은 내부도 외부도 아닌, 집에 속하지 않고, 바깥세상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지요.

    이름부터 사랑스럽다. 어룽거리는 분홍빛이라니. 1980년대 후반 여행차 키웨스트 섬을 방문한 앨리스는 이곳의 풍경에 매료됐다. 키웨스트는 플로리다 주의 최남단에 위치한 섬으로, 1년 내내 온화한 기후를 자랑한다. 무성하게 자란 아열대 식물과 아름다운 해변, 그녀는 여기에 더해질 ‘영감의 집’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발견한 집은 비어 있었고, 관리인의 도움을 받아 관찰도 가능했다. 

    아열대 지방의 강렬한 빛에 반사된 이 집을 앨리스는 여러 구도로 담아냈다. 그 결과 다섯 점의 그림이 완성됐는데, ‘어룽거리는 분홍빛’도 이중 하나다. 그녀는 이 지방에서 자라는 다양한 질감의 식물을 똑같이 묘사하지 않고 그 느낌을 전할 방법으로 선형 추상을 고안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다양한 색의 선이 겹쳐져 잎사귀들이 무수히 공간을 채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걸음씩 작품에서 멀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선들이 잎사귀가 되고, 나뭇가지로 변한다. 나무 사이로 새어드는 빛은 복잡한 패턴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집과 벽, 기둥, 현관 바닥을 장식한다.

    설레발 Tip.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빛’은 햇살, 광채 등 직접적인 단어가 아닌 빛(Light)으로 표현된다. 이를 두고 그녀는 작품 밖에서부터 드리운 빛은 장면에 스며든다. 자연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온전히 자연의 것은 아니다. 나의 관심사는 빛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의 모양, 그림자, 반사 및 구성이다고 설명한다.

    여름 바람



    여름 바람 Summer Breeze 1995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78.4 x 127 cm 개인 소장 Private Collection Location: Friend’s home, Long Island, NY ©Alice Dalton Brown

    예순에 접어들었던 1994년, 뉴욕 롱아일랜드에 거주하는 친구의 집에서 우연히 바람에 휘날리는 커튼을 본 앨리스는 달라졌다. 현관 즉 실외에 빠져 있던 열정은 커튼과 바람으로 옮겨졌다. 이후 그녀는 커튼이 있는 물가의 풍경을 그리는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무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4년간 그녀는 커튼과 바람을 탐구했다. 그리고 이를 다양하게 화폭에 담아냈고, 그녀만의 시그니처가 됐다.

    미니멀라이프 해시태그를 붙여야 할 것 같은 위 그림은 ‘여름 바람’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가구도 없이 그저 카펫이 전부인 텅 빈 집. 커튼만 덩그러니 걸려있는 모습은 앨리스가 의도적으로 연출한 장면이라고 한다. 뜨겁기만 한 여름 바람이 이토록 선선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그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튼은 그녀의 작품에서 인간이 만든 부분을 느긋하게 하고 부드럽게 해서 이미지에 동적인 시각적 요소를 제공 하는 역할을 한다. 커튼의 색상이 반투명 흰 색인 이유도, 우리 의식에서 반쯤 숨겨진, 가려진 부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앨리스는 이 작품을 위해 직접 구매한 커튼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오직 
    첫 번째 여름 바람만이 실제의 풍경을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 이후 그녀가 완성한 ‘황혼에 물든 날’은 여동생의 집 베란다와 이타카에 위치한 카유가 호수 풍경을 합쳐 새로운 장소로 재해석했고, ‘느지막이 부는 바람’은 작가가 온전히 새롭게 창조해낸 물가의 풍경을 담아낸 것이라고. 



    느지막이 부는 바람 Late Breeze 2012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71.1 x 91.4 cm 캠벨 오리코 소장 The Campbell-Orrico Collection Location: Cayuga Lake, NY ©Alice Dalton Brown

    한편 9.11 테러는 그녀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가까이에서 엄청난 사건을 목격한 그녀는 상실과 세계 평화라는 주제에 빠졌다. 그리고 그 결과 앨리스의 작품에는 물이라는 모티브가 더욱 적극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베란다를 통해 보이던 호수는 한가운데로 옮겨져 ‘센터’를 차지하기도 하고, 바다 혹은 강가, 그 곁에 커튼만 남겨진 그림으로 변모하기도 했다

    등나무가 있는 안뜰

    앨리스는 남편과 함께 1994년 호지킨병 치료를 끝내고 안정을 취하기 위해 친구의 별장이 위치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마루 루카에 머물렀다. 친구의 집은 400년이 된 농가였는데, 이곳에서 앨리스는 새로운 영감으로, 새로운 그림들을 탄생시켰다. 

    그림들의 주 배경은 이들 부부가 식사를 하던 안뜰 테라스다. 앨리스는 그림을 그릴 때 이곳에 있던 거대한 대리석 식탁을 치하고 테라스의 구조와 안뜰을 채운 식물이 잘 보이도록 구도를 잡았다고 한다.



    등나무가 있는 안뜰 Patio with Wisteria 2019 뮤지엄 보드에 파스텔 Pastel and acrylic on museum board 115.6 x 76.2 cm 작가 소장 Collection of the Artist Location: Lucca, Tuscany, Italy ©Alice Dalton Brown

    1994년 파스텔로 그리기 시작했던 등나무가 있는 안뜰은, 그러나 오랜 시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남겨졌다이 작품이 완성된 것은 35년이 지난 2019. 같은 구도에 꽃이 추가된 꽃이 있는 안뜰(1995)’이 존재하지만 완성됐지만 작가는 두 작품이 “서로 꽤 다른 작품”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전작에서 자세하게 묘사됐던 건물의 돌벽, 꽃과 그림자 등은 ‘등나무가 있는 안뜰’에서 사라지거나 생략됐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집중했던 그녀가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인상을 담아내는데 의미를 두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무와 두 개의 창문 (AAR) #16 Tree with Two Windows, Rome #16 2016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50.8 x 71.1 cm 작가 소장 Collection of the Artist Location: American Academy in Rome ©Alice Dalton Brown

    “저는 감상하는 이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전달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단지 제가 울림을 준 무언가라면, 다른 이들에게도 충분히 크게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여든이 된 지금까지 앨리스의 활동은 왕성하게 이어지고 있다. 작품을 제작할 때마다 여러 차례의 습작을 그리면서 본 작품에 제작에 몰두하곤 한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정해진 몇 점의 작품 제외하고 촬영이 불가능하다. 애초부터 카메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의 매력이었다. 불멍’, 물멍 이어 이번에는 빛멍 빠져볼 차례다.

    설레발 Tip.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지니와 제휴하여 큐알 코드를 인증하면 추천하는 음악들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단, 이어폰이 필요해.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Alice Dalton Brown, Where the Light Breathes)

    2021. 7.24~2021. 10. 24
    월 ~일요일 10:00 ~20:00
    (입장마감 19:00)
    마이아트뮤지엄
    (강남구 테헤란로 518 섬유센터빌딩 B1)
    성인 1만 8천원, 청소년 1만2천원, 어린이 1만원

    올댓아트 김지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사진 및 자료 |마이아트뮤지엄
    ⓒAlice Dalton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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