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울지 않는 숲, 물고기가 사라진 강, 귀뚜라미 소리가 끊긴 가을과 미세먼지로 사라진 파란 하늘 등 조금씩 잃어가는 우리의 일상에 집중한 전시가 있습니다.
시급한 생존의 문제인 ‘환경 오염’을 예술가들의 방식으로 표현한 전시 <푸른 유리구슬 소리: 인류세 시대를 애도하기>가 열리고 있습니다.
전시의 이름인 ‘푸른 유리구슬’은 지구를 뜻하는 이름으로 달로 향하던 아폴로 17호의 승무원이 맑고 투명한 지구의 사진을 찍은데서 따왔습니다.
‘푸른 유리구슬’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작가들의 ‘간절’하고도 ‘다급’한 몸짓을 소개합니다.
강주리, 카오스
강주리는 인간의 욕망이 들어간 ‘자연’을 그리는 작가입니다.
작품 ‘카오스’의 동굴 속 종유석과 같은 형태를 자세히 보면 기이한 생명체들이 매달려있습니다.
여섯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 개, 콧구멍이 세 개인 젖소 등 ‘돌연변이 생명체’가 엉켜있는 이 작품은 혼돈의 생태계를 보여줍니다.
끔찍하지만 현실이 크게 다르지도 않지요. 어느 틈에 성큼 곁으로 다가온 생명체들을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섬뜩함을 전달합니다.
‘복사와 붙여넣기’ 방식으로 만든 ‘카오스’는 무한 증식하고 있는 생태계가 이미 멈출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시사하기도 합니다.
김신혜, 페리에 산수
김신혜 작가는 상품 라벨 속에 산수화를 그려냅니다. 도시에서 자연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죠.
자연의 냄새와 촉감 등은 사라진 채 플라스틱의 매끄러움만 남은 ‘상품 속의 자연’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작가는 작은 공산품 포장 속 자연에 집착할 게 아니라 자연의 감각 그 자체를 느끼고 가꾸는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한성필, 남극의 적막
보는 것만으로 압도감을 주는 한성필 작가의 작품은 작가가 직접 극지방에 가서 촬영했습니다.
황홀한 사진들 뒤에는 기후 위기와 산업화가 낳은 재앙이 숨어있습니다. 인간의 이기심이 훼손하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는 빙하의 사진으로 표현했습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보면서 ‘태풍 전야’를 떠올립니다. 고요함의 역설입니다.
허윤희, 빙하3
빙하를 표현한 작가가 한 명 더 있습니다.
허윤희는 작업실 주변에서 주운 나뭇잎을 매일 그리며 그날 만났던 사람과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나뭇잎 일기’라는 작품이 탄생한 배경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작가는 자연의 변화에 민감한 사람으로 거듭났고, 빙하를 주목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목탄으로 그린 빙하 속에 도시 속 삶을 그려 넣었습니다. 녹아내리는 빙하처럼 인류의 삶도 위협 받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빙하를 벽화로 그리고 손으로 문지르는 퍼포먼스 작업도 함께 진행해왔습니다. 이 역시 같은 맥락인데요. 손으로 지우기 전에 멸종 동물을 하나씩 호명함으로써 인간의 잔인함을 드러냅니다.
전시 <푸른 유리구슬 소리 : 인류세 시대를 애도하기>에는 총 12명의 작가가 참여했습니다.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라져가는 우리의 일상을 관람객들에게 환기시키고 있는데요. 소개한 것 외에도 섬뜩한 감정까지 느끼게 만드는 몰입도 높은 작품이 많았습니다.
전시와 더불어 기후재난과 예술, 코로나19 상황 속 생태에 관련한 강연 프로그램도 열릴 예정입니다.
■ <푸른 유리구슬 소리 : 인류세 시대를 애도하기>
2021년 7월 8일(목) ~ 9월 5일(일)
10:00 – 18:00
*매주 월요일 휴관
서울대학교미술관 전시실1-4
문의 : 02)880-9504
■ 전시 연계 프로그램
2021년 8월 6일(금)
14:00
코로나19 국면 ‘탈’인류세 생태정치를 기획하기
이광석(《문화/과학》 공동편집인·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15:00
기후재난과 예술 : 기후재난에 반응하고 대응하는 예술가들
김향숙(미술사학자·홍익대학교 강사)
올댓아트 구민경 인턴
권재현 전시팀장
allthat_art@naver.com
자료 및 사진 ㅣ서울대학교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