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기다리셨어요?!
공지된 오픈 시간은 오전 10시였지만 이보다 앞선 시각부터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기 번호를 받고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던 이들은 자신의 순서가 되자 입구로 향했다. 흡사 유명 셰프의 ‘맛집’을 떠올리게 하는 이곳은 “SNS 좀 한다”는 이들의 성지라 불리는 ‘그라운드 시소 서촌’이다.
“평일 평균 대기 시간만 2시간”이라는 후기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는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요시고 사진전>을 보기 위해서다. 지난 6월 시작된 <요시고 사진전>은 시작 7월 말 기준 5만 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다녀갔다.
요시고(Yosigo). 언뜻 듣기엔 일본인의 이름 같지만 이는 에스파냐 북부에 위치한 휴양지인 산 세바스티안 출신의 젊은 예술가 호세 하비에르 세라노의 활동명이다.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시구절 중 ‘계속 나아가다’라는 의미인 ‘Yo sigo’를 인용한 이름인데, 어떤 일의 결과가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본능을 믿고 따라 움직이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
정체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간 그는 2009년 ‘Wired(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과학, 기술, 산업 잡지)’ 12월호 표지와 2010년 ‘Colors(베네통이 발간하는 잡지, 신선한 표지가 늘 이슈가 된다)’ 봄 호 표지를 장식하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현재에는 킨포크, 비트라, 잭 다니엘 등 글로벌 브랜드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그를 주목한 것은 ‘업계’ 만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작품을 보여주고 공감하기 위해 시작한 SNS를 통해 그는 핫 인플루언서가 됐다. 평범한 장소, 풍경이지만 숨통이 ‘탁’ 트이고 강렬하게 기억되는 그만의 작품 세계에 빠져든 이들의 무려 20만명(팔로워).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트렌드와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을 갖고 있는 요즘 세대가 빠진 전시, 요시고만의 ‘영업 비밀’은 무엇일까.
코시국의 여행 갈망을 풀다
“푸른 지중해를 둘러싼 유럽의 휴양지부터 마이애미, 두바이, 부다페스트 등 세계 여러 여행지를 기록한 350여 점의 사진들을 건축, 다큐멘터리, 풍경 세 가지 섹션으로 구분해 선보인다. 영감의 원천인 빛을 다루는 세밀한 작업부터 세계 여러 도시에서 진행된 스케일 큰 작업까지 다루는 작가의 넓은 스펙트럼이 관람 포인트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어디로 향하는 것도 편치 않은 요즘이다. 전시는 ‘따뜻한 휴일의 기록’이라는 부제처럼 코로나19로 떠나지 못하는 지금 우리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울컥함은 마지막 섹션인 ‘풍경’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 섹션은 크게 ‘Tourism Landscape’와 ‘Mediterranean Nostalgia’로 나뉘는데, 전자에서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관광객의 관계를 요시고의 독특한 시각적 언어로 표현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스크롤을 한참이나 내려야 하는 위 작품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실제로도 벽 한 면을 내리 채워 전시됐다. 검색창에 ‘요시고 사진전’을 입력하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고, 인증 사진을 남기기 위해 가장 긴 줄을 서야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해변을 가득 메운 인파, 이 사진은 스페인에서 촬영한 것이다. 과거에 그랬듯, 머지않아 그러길 바라는 마음탓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무더위에 마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답답함보다는 청량감이 느껴진다. (소싯적 ‘월리를 찾던’ 심정이 들기도 한다.)
산 세바스티안에서 나고 자란 탓에 바다는 요시고의 주요한 사진 배경이자 가장 오랜 기간 아카이빙 한 테마다.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지는 사진부터 상상력을 자극하는 사진까지 ‘바다’라는 공통된 배경을 벗어나지 않은 다양한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동물적 관광객(Animal Turista)’은 풍경 사진을 찍으며 느낀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관광객들의 존재는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들을 막아버립니다. 풍경을 즐기기보다 놀러 왔다고 주변에 알리는 일에만 관심이 있죠.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연의 포식자가 되어 자연환경의 질감과 색감을 침략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그런 관광객과 풍경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으로 이뤄졌어요. 물론 저 역시 관광객 중 하나라는 점은 잊지 않았습니다.”
반대편에 자리한 ‘Mediterranean Nostalgia’는 요시고의 고향인 산 세바스티안을 주제로 한 공간이다. 그는 단순하게 이미지만으로 공간을 채우지 않는다. 이미지 너머에 자리한 고유의 정서와 분위기까지 표현하곤 한다. 이를테면 그는 산 세바스티안을 근사하고 아름다운 도시처럼 보이지만 차갑고 고독한 동네로 정의한다. 주관적인 의견이 아니다. 산 세바스티안의 지역 예술 또한 외로움과 노스탤지어를 다루는데, ‘Sonido San Sebastian’이라는 장르가 있을 정도라고.
이미지에 담긴 이야기
사람들이 요시고에 열광하는 두 번째 이유는, 아마도 이미지에 담긴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소개한 ‘Mediterranean Nostalgia’의 사례처럼 그의 작품들에는 모두 사연이 있다. 흔히 사진을 찰나의 예술이라고들 하지만 그는 찰나에 머무르지 않는다. 자신의 사진을 통해 ‘이야기’가 전달되길 바라는 듯 친절하게 그 사진과 사진에 담긴 의미를 설명한다. 이를 가장 잘 반영하는 섹션은 ‘다큐멘터리’다.
요시고는 이국적인 것과 미지의 것 속에 숨겨진 균형을 찾고 보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는 다큐멘터리 작가다. 미국, 헝가리, 일본 등 -그의 기준에서- ‘낯선’ 장소를 찾았고, 그곳에서 기꺼이 ‘플라뇌르(한가롭게 배회하는 산책자)’가 되었다. 이렇게 새 문화를 경험하며 기록한 사진들이 ‘다큐멘터리’ 섹션을 채운다.
“모르는 곳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은 매우 자극적인 일이에요. SNS와 기술의 발달로 집 안에서 앉아서 여행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까요? 요즘 사람들은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자극에 아주 둔해졌습니다. 그래서 촬영지를 방문하면 길 잃은 상태에서 낯선 지역과 공간 찾기를 좋아합니다.”
익숙한 공간을 비틀어 보기도 한다. 부다페스트는 ‘스파’를 찍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요시고에게는 그리 낯선 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처럼 탐험이라는 과정은 없었지만 유명 관광지를 자신만의 시각과 언어로 표현해내고 싶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스파’ 사진들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스파 속의 사람들은 이토록 먼 타국에서 전시되는 것에 동의했을까. 어쩌면 요시고는 ‘소셜미디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만의 방식으로 담아냈는지도 모른다. 길거리에서 진행되는 라이브 방송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사람들, 나아가 초상권은 차치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카메라 속에서 이렇게 무방비로 노출되는 현재 우리들의 모습 말이다.
동시에 이 여행들은 ‘건축’에 집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이는 두바이에서의 기록들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그는 반복적인 패턴이 인상적인 아파트부터 거대한 햄버거가 벼락을 맞은 레스토랑, 사막의 자동차 행렬까지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는 이곳들을 “실망스럽지 않은” 촬영지였다고 회상했다.
모두가 사진작가다
요시고는 “사진은 예술 중에서도 아주 드물게 타고난 재능이 필요 없는 분야”라고 말한다. 기술적으로 서툴러도 오히려 그 부족함이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휴대전화만 있으면 사진작가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니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이 말속에는 또 다른 딜레마가 있다. 접근하기 쉬운 만큼 ‘좋은’ 사진은 넘친다. 쏟아지는 이미지 속에서 돋보이기 위해서는 특별해야 한다. 그의 사진이 돋보이는 이유 역시 요시고만의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빛과 구도의 미학이다.
“빛과 빛을 다루는 방식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좋은 빛은 항상 큰 영감을 가져와요. 온종일 지루하게만 보였던 건물도 어느 순간 좋은 빛을 만나면 마법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강렬한 자연광과 함께 그가 흥미를 보이는 것은 기하학적 요소들이다. 그는 그래픽 디자인을 통해 사진에 입문했다. 그래서일까. 기하학적 요소들을 볼 때면 정렬되고 균형 잡힌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또 그는 구도를 정할 때 패턴과 빛의 조화를 통해 만족스러운 사진을 찾곤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피드를 새로 고침 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우리는 자연스럽지만 각이 잡힌 것에 안정감을 느끼고,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평화를 꿈꾸지만 동시에 시시각각 변하는 다채로운 것에 끌린다. 요시고는 바로 그런 우리들의 욕구를 간파했는지도 모른다.
예상대로 역시나 많은 관람객들이 ‘인생 사진’을 남기기 위해 이 사진전을 찾았다. 이들은 요시고가 남긴 사진 앞에서 또 다른 사진을 더해 새 작품을 만들어낸다. 맞다. 남는 건 사진이다. 그것은 불변의 진리다. 그러나 촬영 버튼을 누르는 동안 오래도록 남을 사진을 위해 요시고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떠올려봐도 좋을 듯싶다.
설레발 꾹_ 나도 모르게 결제하게 되는 굿즈 주의 ☞☜
글 사진 올댓아트 김지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자료 |미디어앤아트
콘텐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