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으로 25년을 일했다. 전 직장에서 10년, 신한카드에서 15년 근무하는 동안 내내 IT분야 한 우물만 팠다. 뒤돌아보니 어느덧 나이 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익숙해서 안정적이긴 하지만 가슴을 뛰게 만드는 업무는 아니었다. 신한카드 배은주 차장 얘기다.
변화가 필요했다. 신한카드가 2016년 ‘I am Ventures’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사내벤처 지원제도에 눈길이 갔다. 동갑내기 직장 동료 한 명을 ‘포섭’했다. 영업, IT, 고객관리 서비스 기획 등 다양한 업무를 두루 거친데다 성격도 쾌활하고 친화적이어서 함께 호흡을 맞춰 새 업무를 시작하기에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둘은 ‘미술과 금융의 결합’을 모토로 내걸고 응모해 지난해 11월 당당히 ‘6기 사내벤처’로 선발됐다.
사내벤처의 이름은 ‘아트플러스(Art+)’. 첫 작품이 지난 6일 개막해 한남동 신한카드홀 전시장에서 열흘 동안 이어진 아트페어 ‘더 프리뷰 한남 with 신한카드’이었다. 금융권이 주최하는 첫 아트페어인데다 신한금융그룹 차원의 미술시장 진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져 미술계 안팎의 이목이 쏠린 행사였다. 세간의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쏟아진 만큼 행사를 책임진 두 사람의 부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행사 기간 동안 모두 6,000여 명이 다녀갔고 32개 갤러리가 참여해 6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꿴 문유선, 배은주 두 사람을 지난 23일 아트플러스 사무실(서울 중구 을지로 100 파인에비뉴 A동 24층)에서 만났다. 아트플러스 문유선 대표와 배은주 부대표. 이들의 공식 직함이었다.
아트플러스가 출범한 후 추진한 첫 행사 치고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흥행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나. 어떤 전략이 주효했다고 보는지.
“그간 열린 아트페어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던 신진 갤러리들에 문호를 대폭 개방했다. 부스비를 받지 않은 게 주효했다고 본다. 대부분의 아트페어는 갤러리들이 부스를 차리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 비용을 뽑아내려면 비싼 가격에 작품을 팔아 수익을 내야 한다. 일반 고객들은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그들만의 리그’였다. 갤러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중소 규모의 신진 갤러리들은 아트페어 참여 자체가 어려웠다. 어떤 작품을 몇 개나 팔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싼 비용을 치르고 무작정 입점할 순 없으니까. 일종의 진입 장벽이었던 셈이다. 많은 아트페어 행사들이 대형 갤러리 중심으로 굴러갈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이 장벽을 없앴더니 새로운 갤러리들이 많이 참여했다. 참신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미술 애호가들 눈에도 기존의 아트페어에서 한번도 본 적 없는 작가와 작품들의 대거 등장은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왔고 이런 게 SNS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MZ세대를 비롯해 미술에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젊은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갤러리들의 참가비(부스 사용료)를 없앴다. 작품이 판매될 경우 전체 판매 금액의 20%, 최대 100만 원까지만 주최측에 후불로 지불하면 되는 조건이었는데 통상의 아트페어와 비교하면 파격적인 조건이다. 첫 사업을 추진하면서 어떻게 이런 조건을 제시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신한카드가 지난 1월 블루스퀘어와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연간 일정 금액의 후원금을 내고 블루스퀘어 내 공연장과 전시 시설을 관리비 정도의 비용만 치르고 일정 횟수까지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한 게 계약 내용의 핵심이다. 덕분에 거의 공짜로 전시장을 이용할 수 있어 갤러리들의 부스비를 받지 않고도 아트페어 행사 추진이 가능했다.”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시장을 개척한다는 게 의도처럼 쉽지는 않았을텐데. 어려움은 없었나.
“당초 아트플러스의 주된 사업 방향은 모바일 기반의 ‘마이아트플렉스’ 앱 활성화였다. 개인 소장품 리세일 및 컬렉터와 갤러리 간의 소통과 직거래를 지원하는 앱을 널리 알려 온라인 미술시장의 저변을 넓혀간다는 구상이었다. 사내벤처를 총괄하는 문동권 부사장께서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사업도 병행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때마침 신한카드와 블루스퀘어가 전략적 스폰서십을 맺은 시점이었고, 블루스퀘어에 전시공간이 있으니 활용해보라는 취지였다. 아트페어 개최를 통해 온라인, 오프라인 마켓을 함께 뚫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아트부산에서 독립해 막 AML(Art Meets Life)을 차린 이미림 국장, 조윤영 팀장과 본격적으로 머리를 맞댔다. 사내벤처와 신생 사업체가 협력하여 시작하는 첫 사업이었기 때문에 성과를 내야 했다. 판은 우리가 깔았지만 디테일은 아트페어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이 국장과 조 팀장이 진두지휘했다. 넷은 정말 한 팀처럼 일사분란하고도 열정적으로 움직였다. 지난 수 개월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 없이 일했던 것 같다. 때마침 미술 시장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아트밸리’로 새롭게 뜨고 있는 한남동이라는 공간의 특성도 한몫했다. 컨테이너박스에 전시장을 꾸리는 등 미술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MZ 세대의 ‘힙한’ 취향을 저격한 것도 주효했다. 여러가지가 맞아떨어졌다.”
‘아트’ 쪽으로 사내벤처의 방향을 잡은 배경은 무엇이었나.(※배은주 부대표가 혼자 답변했다.)
“IT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도 미술사에 관심이 많았다. 틈만 나면 화랑, 미술관, 전시회를 찾고 관련 서적과 영상을 즐겨 보곤 했다. 작가와 작품 세계를 다룬 뉴스들도 꼼꼼히 챙겨보는 편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덕업일치’의 경지에 다다를 순 없을까를 늘 꿈꿨다. 나이 들어서도 사람들이 계속 미술사를 공부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고 싶었다. 사내벤처 제도가 눈에 들어왔고 미술과 금융을 결합해 시너지를 모색해 보기로 결심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은퇴자의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분야가 미술 시장이라 판단했다. 아트부산이 운영하는 ‘영 컬렉터클럽 아카데미’ 과정을 1년 정도 수강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이미림 디렉터를 알게 됐다. 함께 판을 벌여보자 제안했고 여기까지 왔다.”
부스비 면제 얘기를 잠시 나눴지만 그외에도 여러모로 신선한 시도가 많았던 것 같다.
“참가 갤러리에 정가제를 요청했다. 작품마다 가격표를 붙였고 앱에도 가격을 공개했다. 기존의 미술품 시장은 현금 거래 비중이 높다. 가격 결정 구조도 불투명하다. 시장 자체가 건전하게 성장하려면 거래 투명화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작품 거래시 카드 결제를 유도하는 이유다. 실제로 이번 아트페어 참여 32개 갤러리 중에서도 카드 가맹을 안 한 곳이 많았다. 신용 한도를 초과하는 금액은 현금으로 거래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카드 결제가 가능하도록 갤러리들한테 카드 가맹 신청을 안내했다. 비용 걱정 없이 이런저런 실험을 할 수 있었던 건 본사(신한카드)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벤처 업무의 특성상 속도와 타이밍이 중요하다. 금융 대기업의 ‘빵빵한’ 인프라 덕분에 짧은 기간 신속하게 업무를 추진할 수 있었다. 작품 결제 프로세스와 무이자 할인 시스템 등은 영업 및 개발부서의 도움을 받았고 유튜브 영상은 브랜드팀이, SNS와 언론 등을 통한 소식 알리기는 홍보팀의 공이 컸다.”
아트페어에 이어 2탄으로는 뭘 준비하고 있나.
“신한카드 내에 쇼핑, 여행, 보험, 렌탈 등 우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여러 팀들이 있다. 이들과 손잡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해 볼 생각이다. 기본 방향은 금융과 미술의 결합이다. 예를 들어, 하늘길이 차차 열리기 시작하면 사내의 ‘올댓여행’팀과 협의해서 카드 우수고객들을 대상으로 해외 아트페어를 참관하거나 해외 미술관, 박물관 등으로 ‘예술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을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누이(신한카드) 좋고 매부(고객)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이런저런 사업 아이템들을 구상 중이다.”
올댓아트 권재현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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