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전시 비하인드 스토리: 김예진 학예연구사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하면서 작가 박수근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는데요.
예전의 텍스트를 보면 박수근을 ‘굉장히 가난했고, 국전에서도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고, 초등학교밖에 못 나와서 굉장히 소외되어 있던 화가다‘라고 언급하는 부분이 많아요. 물론 화가를 너무나 아끼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이 나왔을 거예요.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건 맞아요. 하지만 많은 화집과 잡지를 사서 보고 유화물감과 캔버스를 사서 그림을 그렸으니 궁핍하다는 시선만으로 봐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당시의 많은 화가들이 유화물감도 없어서 공업용 안료를 사다 그림을 그리곤 했던 시대였으니까요.
실제로 박수근의 그림은 당시에 상당히 잘 팔렸어요. 혼자 계산까지 해봤어요. ‘그림 한 점이 30불에서 40불 그게 한 달에 두세 점이 팔렸으니 1년이면 몇 점…’ 그렇게까지 극빈하게 산 분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2전시실에 전람회에서 상을 받거나 초대전에 출품했던 작품을 모은 이유가 박수근이 당시 중견작가로 상당한 위상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였어요. 여러 가지로 다른 작가들에 비해 수모를 겪긴 했지만, 나름대로의 위상을 누렸던 분이어서 그 당시 전혀 인정받지 못한 화가였던 것처럼 비극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50년대에도 지금 못지않게 박수근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의 작품을 꾸준히 구입했던 해외 컬렉터들의 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다만 시대적 제약은 있었죠. 그 시기 자체가 다들 모두 너무 어렵게 살던 시절이었잖아요. 그렇다고 무기력하거나 위축되지 않았어요. 굉장히 뚝심 있는 화가였어요. 남들 다 추상화 그리는데 따라가지 않았잖아요.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군 PX에서 초상화가로 일했지만 국전 상을 받고는 바로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을 걸었어요. 그런 뚝심과 결단력은 이번에 처음 발견했어요.
처음엔 외골수인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 잭슨 플록, 마크 로스크 같은 많은 작가들을 스크랩해서 공부했더라고요. 동시대 그림을 계속 공부한 거죠. 이런 것들을 보면 박수근 그림의 평면성은 서구의 모더니즘에서 가져온 것 아닐까요? 또 1962년작 <농악>과 1963년에 국전에서 발표된 <악>이 달라진 것을 보면 당시에 유행하던 추상화와 본인의 스타일 사이에서 접점을 찾으려 시도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대세가 뭔지 알면서도 자신만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았던 거죠.
동시에 줄타기를 잘하는 전략적인 작가이기도 했어요. 혼자만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외국인의 수요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그런 외국인의 취향과 최신 화단의 흐름도 파악하면서 수용하고 절충했습니다. 국내 전람회에도 꾸준히 작품들을 내면서 명성을 쌓아나갔죠. 성실한 탐구형 화가에 가까울 뿐 소심한 화가는 아니었어요.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50년대에 김환기가 박수근의 그림을 보고는 너무 화법에만 치중하는 것 같다고 일갈했어요. 그런 말을 들어도 박수근은 계속 화법에 몰두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사실은 스스로 변화해가며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박수근을 ‘이웃을 사랑한 화가‘, ‘서민 화가‘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좀 더 크게 바라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입니다. ‘전쟁 후의 한국 사회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담은 화가‘였거든요. 소소한 일상을 그렸다고 하기에는 그의 삶 자체가 너무 비장해요. 얼마나 단단한 결기를 가지고 난관을 헤쳐나갔겠어요. 그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질곡의 시대를 온전히 겪어낸 덕분에 전후(戰後)의 한국 사회를 제대로 담아낸 ‘국민화가‘로 우뚝 설 수 있었다고 봅니다.
박수근의 작품 외에도 한영수 작가의 사진을 함께 전시 중입니다. 관람하는 입장에서야 두 작가의 작품을 함께 즐기고, 시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어 좋지만 ‘박수근 회고전‘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되는 전시인 만큼 한영수 작가의 작품에는 시선이 덜 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 부분에 대한 전시 기획자로서의 고민을 듣고 싶어요.
이거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전시할 때 작품이 큐레이터의 생각이나 의도를 전달하는 도구가 되면 안 되니까요. 그런데 ‘머리를 싸매고 광주리를 멘 그림 속의 대상들을 이런 것들을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박수근의 ‘작품’을 보여주기보다 ‘시대’를 보여주자는 게 이번 전시 기획의 취지였거든요. 그래서 사진을 넣기로 했습니다. 그림을 빌리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으니까 사진은 상대적으로 쉬울 것 같았어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사진이 많기도 했고요.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았을 무렵, 갑자기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사진작가들의 의도도 모른 채 박수근 작품과 어울리는 공간을 촬영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사진들을 모아놓는다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무 무식한 짓을 한 거 아닌가 싶어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어요. 원점에서 다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영수 작가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작가의 활동 시기가 박수근의 작업 시기와 딱 겹치는 거예요. 한영수는 당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한국인이 없었기 때문에 카메라를 숨겨가면서 닥치는 대로 찍었대요. 자연스러운 찰나를 사진에 담을 수 있었던 비결인데요. 당시 사회문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리얼리즘 사진임에도 너무 아름다웠고 박수근 작품이랑 같이 전시하면 잘 어우러질 것 같았어요. ‘시대를 기록한 화가’ 박수근, ‘시대를 기록한 사진가’ 한영수, ‘시대를 기록한 소설가’ 박완서 이렇게 세 명을 같이 놨을 때 엄청난 시너지를 내리라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유족과 관계자분들이 다들 선뜻 허락해 주셨어요. 그럼에도 전시 개막 전까지 굉장히 조심스러웠습니다. 잘못하면 남의 전시에 들러리 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잖아요. 박수근 회고전을 풍성하고 돋보이는 소재로 기능하면서도 독자적인 색깔을 드러낼 수 있도록 단독 공간에 정중하게 전시했습니다.
덕수궁관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1층만 봐도 박수근을 다 봤다고 얘기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들었어요.
“이건 보고 가셔야죠” 하는 기획자로서의 욕심이죠. 특히 어르신들이 덕수궁을 많이 찾으시는데 1층을 보고 재미가 없거나 힘들면 많이들 그냥 가신대요. 이 사실을 재작년에 알았어요. 그전까지는 막연하게 일단 들어오신 분들은 다들 끝까지 보겠거니 생각했거든요. 1층을 둘러본 분들로 하여금 한 층 더 올라가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끔 작품을 배치하고 전시를 기획합니다. 덕수궁이 문화재이기 때문에 추가 공사를 못해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점을 늘 무겁게 생각하고 있어요. 리프트가 있긴 한데 불편해서 휠체어 타신 분들의 어려움이 많죠.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4개 공간을 모두 사용한 대규모 전시입니다. 작품이 굉장히 많아 관람객으로서 행복하기도 했지만 동선이 깔끔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살짝 아쉬웠어요. 작품이 많아 이리저리 둘러보다 놓치는 작품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더라고요.
많이 걱정했던 부분이에요. 특히 2전시실의 고민이 많았어요. 작품 수가 열 점이 조금 넘는 정도에요. 이걸로 방 하나를 다 채워야 한다는 게 기획자로서 너무 어렵더라고요. 워낙 중요한 작품이 많다 보니 어렵다고 해서 다른 작품들과 섞는 건 절대 하기 싫었고요. 작품 수는 적지만 그림들이 방을 꽉 채우면서도 썰렁하지는 않도록 하기 위해 디자이너랑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결국 하나씩 떨어트려서 전시를 하기로 했는데 작품 간격이 너무 떨어져 있다 보니 다 보지 못하고 중간에 나가버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남더군요. 동선을 암시하려고 ‘이정표‘ 차원에서 텍스트를 배치했어요. 공사에 들어가고 나서도 넣고 빼고를 반복하면서 마지막까지 고심했어요. 그런데 사실 그림을 보는 순서가 그리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작품 자체에 완결성이 충분하게 있어서 어떤 동선을 따르든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특히 고려한 부분이 있을까요.
이건 제 욕심인데요. 덕수궁관은 어르신 관람객들이 다른 곳에 비해서 많기도 하고 주로 어른들이 많이 와요. 어린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오죠. 여기에 청소년들이 안와요. 정말 커다란 구멍이에요. 과천은 단체관람으로라도 청소년들이 자주 찾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는 안 오더라고요. 청소년 관객 폭을 넓히고 싶었어요. 꼭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연령층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박수근은 교과서에 가장 많이 실리는 작가니까 그간 덕수궁을 자주 찾지 않았던 청소년들이 많이 왔으면 싶죠.
또 준비하면서 알게 된 것이 미술 선생님들이 박수근으로 수업을 진행하기가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교과서에 그림이 정말 작게 들어가 있어서 박수근 특유의 질감인 ‘마티에르’가 보이지 않아 수업을 진행하기 난감하신 거죠. 그래서 학생들이 전시를 통해 작품을 직접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전시가 박수근의 작품을 학교에서 감상하기 편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서 국립현대미술관 교육팀에서 중등 교육을 담당하시는 선생님과 함께 교재도 만들고 있어요.
이번 전시 관람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을 위해 기획자로서 생각하고 있는 관람 팁이 있다면 들려 주세요.
박완서의 <나목>을 읽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박수근을 이해하는데 정말 큰 도움을 받은 책이에요. 꼭 나목이 아니더라도 박완서의 소설에는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평범한 삶이 나와있어요. 전쟁 중에 박수근이 서울에 있었으니까 이런 상황적인 배경을 이해하고 전시를 관람한다면 박수근의 삶과 작품세계가 더 잘 와닿겠지요. 특히 <나목>은 박완서가 박수근을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이기 때문에 의미가 남다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에서 ‘화가 박수근의 서울’ 영상을 찾아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박수근이 걸었던 서울의 풍경을 통해 박수근을 더 가깝게 느끼고 그의 작품을 공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올댓아트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성실함과 평범함이 큰 미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작가가 박수근인 것 같아요. 꿈은 누구나 꾸잖아요. 박수근이 꾸었던 화가라는 꿈은 사실 누구나 다 꾸는 어린 시절의 꿈일 뿐이었는데 성실하게 평생 애쓰니까 정말 좋은 화가가 됐어요. 앞서 박수근의 전략가 면모를 소개해 드렸습니다만 그 바탕엔 정말 우직하리만치 끈질기게 계획하고 실천하는 집요함이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나도 평생 애쓰면 이런 것도 할 수 있을지 몰라’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수근은 평범한 삶을 살았고 평범한 일상을 그렸습니다. 다만 이 평범한 삶을 굉장히 진지하게 바라봤다는 점이 바로 다른 예술가들이 갖지 못한 미덕이었어요. 전쟁통에도 누구보다 치열하고 진지한 일상을 살았던 박수근의 작품들을 보면서 올댓아트 독자 여러분들도 일상의 중요성과 노력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11월 11일(목) ~ 2022년 3월 1일(화)
10:00 – 18:00
*월요일 휴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서울 중구 세종대로 99)
문의 : 02)2022-0600
올댓아트 구민경 인턴
권재현 전시팀장
allthat_art@naver.com
자료 및 사진 ㅣ국립현대미술관,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올댓아트 구민경,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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