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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타는 풍차…과열된 자본주의를 은유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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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에 탄 풍차가 소리 없이 계속 돌아간다. <과열된 풍차>라는 시뮬레이션 영상 작업이지만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상 설치 신작 <사건의 지평> 속 가상의 공간에서는 팔레스타인의 건물들이 입자가 되어 무너져 내리고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 탱크가 100년이 흘러도 여전히 끝도 없이 오염수를 흘려 보내고 있다. 최근 출범한 기시다 내각에서도 강행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는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이 떠오른다.

    박재훈 개인전_대안공간 루프_2021(왼쪽), 박재훈, 경계 위에서, 3D 애니메이션, 2560x1920px, 5분 52초, 2020(오른쪽) ㅣ대안공간 루프 제공

    풍차는 과거 증기기관으로 인한 산업혁명 이전의 산업구조와 17세기 대항해시대 식민지 건설을 위해 목선을 건조했던 네덜란드의 역사를 상징한다. 동인도 회사 설립,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식민 지배 등의 초석을 놓았던 본래의 기능과 역할은 사라지고 관광 산업의 상징으로 남은 지금도 풍차는 아름다운 문화 유산이라는 ‘가면’을 쓰고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박재훈(1986년生)은 이런 풍차에서 물질과 자본이 종교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거대 자본주의의 이면을 발견한다. 가려진 역사의 맥락과 과열된 자본주의의 모습을 불에 탄 채 끊임없이 돌아가는 풍차에 비유했다.



    박재훈, 과열된 풍차, 3D 애니메이션, 1920x1080px, 무한 루프, 2020 ㅣ대안공간 루프 제공

    작가는 심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이 세상을 ‘실시간 연옥’이라 부른다. 특정 종교의 세계관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의 중간 지점인 ‘연옥’은 천국에 가기 위해 불로 몸을 단련하고 정화 받기를 소망하는 이들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현실이 이런 연옥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게 작가의 상황인식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폭격으로 건물이 쓰러져도 같은 시간 유튜브의 신상 리뷰 채널은 3000만 명 이상의 구독자들로 북새통을 이루니까. 바이러스 확진자가 하루 2000명을 웃돌고 가난으로 인한 살인과 자살 사건이 연일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도심 한복판의 명품 매장 입구에는 오픈 런 대기자들의 행렬이 이어지니까. 듣다보면 섬뜩하지만 부인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박재훈, 사건의 지평, 3D 애니메이션, 5760x1080px, 10분 47초, 2021 ㅣ대안공간 루프 제공


    박재훈, 사건의 지평, 3D 애니메이션, 5760x1080px, 10분 47초, 2021 ㅣ대안공간 루프 제공

    천문학적 금액이 오가는 부동산 개발 비리 소식에 혀를 끌끌 차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들 ‘나도 더 늦기 전에 저 판에 뛰어들어야겠다’ 싶어 조바심을 내고 있는 건 아닐까. 인간의 이런 이중적 심리와 최근 지구촌을 강타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연결시킨 칼럼 ‘자넨 아직도 사람을 믿나’를 최근 읽었다. 박재훈의 문제의식과 상당히 일치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456억이라는 일확천금에 눈이 멀어 목숨을 건 도박 현장 속으로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가는 인간의 모습과 그들이 벌이는 아비규환의 생존 게임이야말로 자본주의의 환희와 절망이 오고 가는 ‘실시간 연옥’의 또 다른 모습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 칼럼 보러 가기

    박재훈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 재앙의 모습들을 지옥과 종말 이후의 풍경들로 묘사한다. 디지털 조각가, 애니메이터, 시뮬레이터인 박재훈은 스스로 조물주가 되어 3차원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가상의 세상을 창조한다. 그곳에 인간은 없다. 인간의 욕망을 투사한 사물만 등장할 뿐이다. 인간의 이데올로기로 얼룩진 사물들은 서로 엉키고 설켜 ‘인간이 없는 인간의 삶과 세상’을 기묘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박재훈, 대제단, 3D 애니메이션, 1920x1080px, 8분, 2020(왼쪽). 박재훈 개인전_대안공간 루프_2021(오른쪽) ㅣ대안공간 루프 제공

    대안공간 루프가 열고 있는 2021년 루프 작가 공모 선정전 <박재훈 개인전 : 실시간 연옥 Real-time Limbo>에서 박재훈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가상의 디지털 공간에서 조작된 현실을 재현하고 호화로운 자본주의의 사물들을 초자연적인 현상과 결합해 지옥처럼 황량한 공간으로 연출한 작품들이다.

    오늘날 인간은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종교로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오염시키고 있다. 대자연은 사라진 지 오래고, 단지 수량화된 천연자원과 사고파는 부동산이 있을 뿐이다. 매일 새롭고 고급스러운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낭비되고 쉽게 폐기된다. 셀 수 없이 많은 플라스틱 파편들이 태평양의 해류에 의해 쓰레기섬을 만들고 있다. 천국과 지옥의 테크놀로지가 실시간으로 공존하는 시대가 됐다. 3차원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서 하이퍼 자본주의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지구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을 드러내고자 했다. 기계 문명의 잔재들과 재앙의 모습들은 자연스레 지옥과 종말 이후의 풍경으로 펼쳐진다. 역설적이게도 가상공간에서 현실세계의 실체는 더 잘 드러난다. 마치 재난과 전쟁을 다룬 헐리웃 영화가 실제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지옥’은 죽음 이후에 오는 게 아니라 현실에 존재한다. 그걸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다.
    – 박재훈, 작가노트 中 일부 –

    대안공간 루프 이선미 큐레이터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과열된 자본주의는 비극을 희극으로, 절규를 환희로 포장할 뿐 연옥 이상의 현실을 만들었다”며 “인간의 허영심과 폭력성으로 얼룩진 하이퍼 자본주의가 불러온 현실의 민낯을 생생하게 고발하는 전시”라고 말했다.



    박재훈, 회전문, 3D 애니메이션, 1920x1080px, 4분 38초, 2019 ㅣ대안공간 루프 제공

    ■ 대안공간 루프 2021 작가 공모 선정 전시
    박재훈 개인전 <실시간 연옥 Real-time Limbo>

    2021년 10월 1일(금) ~ 2021년 10월 31일(일)
    10:00 AM – 7:00 PM
    대안공간 루프
    입장료 : 없음
    문의 : 02)3141-1377

    올댓아트 권재현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자료 및 사진 ㅣ대안공간 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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