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끌고 언니는 밀고…’
화창한 봄날씨를 보인 지난달 31일 성북동 고즈넉한 주택가에 자리한 ‘스페이스 캔’에 언니(김보희 작가)와 동생(김성희 캔 파운데이션 이사)이 나란히 마주앉았습니다. 스페이스 캔은 2008년 예술창작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돼 2011년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 기업으로 발돋움한 후 작가 발굴 및 지원, 해외교류 전시와 국내·외 미술 네트워크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캔 파운데이션’이 운영하는 전시공간입니다.
90년과 60년 된 가옥 두 채를 연결해 2010년 전시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오래된 집’도 캔 파운데이션이 운영 중인데요. 스페이스 캔에서 불과 30m 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캔 파운데이션은 두 공간에 김보희 작가의 풍경 연작들을 펼쳐 놓았습니다.
2008년 출범 후 언론간담회는 처음이라고 운을 뗀 김성희 캔 파운데이션 이사는 “지난 10여 년간 작가 창작 활동 지원과 예술 교육활동 지원 사업 등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와 미술을 연결하는 선순환 형성에 기여했지만 이제는 작품 판매 등 프로모션에도 적극 나서달라는 작가들의 요청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간담회는 향후 캔 파운데이션의 적극적인 행보를 예고하는 일종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캔 파운데이션은 국내외 레지던시 입주 작가 선발, 전시 지원 등의 사업을 꾸준히 벌여오면서 미술계와 신진, 중견 작가들 사이에선 꽤 입소문이 나 있지만 대중적 인지도는 아직 많이 부족한 편입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생의 순환을 환상적인 색으로 풀어낸 풍경 연작으로 유명한 김보희 작가가 지원 사격에 나섰습니다. 동생(김성희 이사)의 ‘간곡한’ 요청으로 이번 전시를 열게 됐다는 김 작가는 “10년 전 베이징의 ‘따산즈 798예술구’에 캔 파운데이션의 창작 전시 공간이 문을 열었을 때는 전시 좀 하게 해 달라고 내가 부탁했는데 이번에는 동생이 부탁을 해 왔다”며 웃었습니다. 김보희는 지난해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서 국내 생존 작가 개인전 기준 최다 관람객을 동원할 정도로 요즘 가장 ‘핫한’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김성희는 “언니(김보희 작가)와 같은 대학(이화여대 77학번), 같은 전공(동양화)으로 미술을 시작했지만 언니가 그림 그리는 걸 보고 ‘나는 안 되겠다’ 싶어 재빨리 전공을 갈아탔다”며 언니를 추켜세웠습니다.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한 김성희는 갤러리 큐레이터를 거쳐 현재 홍익대 미술대학원 예술기획전공 교수이자 캔 파운데이션 기획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김보희 작가가 캔 파운데이션의 취지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후원 개념으로 여는 것으로, 작품 판매 수익금은 신진 작가의 활동 후원 및 교육 사업을 위해 쓸 예정이라고 합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어떤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지 함께 둘러볼까요?
지난해 금호미술관 전시와 마찬가지로 전시 제목은 <TOWARDS>입니다. 번역하면 ‘~을 향하여’가 되겠네요. 어디를 향하느냐가 핵심이 될 텐데 김 작가는 간담회에서 “관객들의 상상에 맡긴다”며 뚜렷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의 예술적 지향점은 뚜렷이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바로 자연입니다. 그는 “자연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캔버스와 한지, 분채 및 아크릴 등을 혼용해 색감의 대조와 조화를 꾀하는 작가는 조용하지만 강렬한 시선으로 풍경 연작을 화폭에 담아냅니다.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대상인 자연을 그리면서 자연의 생명력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층적 감성을 이끌어내는 거지요.
이번 전시 대표작 또한 <Towards>(2013)입니다. 200호에 달하는 대형작으로, 작가 특유의 섬세한 세필로 겹겹이 쌓아낸 식물의 초상에서 자연의 생동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금호미술관’ 전시를 다녀간 BTS의 리더 RM이 ‘인증샷’을 올려 SNS를 뜨겁게 달궜던 작품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스페이스 캔’ 전시에선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 벽에 걸어놓아 눈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야자수와 달의 감흥을 관람객들이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작업인 무채색 바다 풍경 연작 ‘In between’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때는 작가가 이화여대 교수직에서 정년 은퇴(2017년)한 후 제주도의 작업실로 입주하던 시점이었습니다. 작가 특유의 화법으로 알려진 다채로운 색채의 지금 화풍과는 사뭇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지요.
노을이 깔리는 제주도의 해질녘 풍경을 화려한 ‘주홍빛’으로 묘사한 작품들은 장엄하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했습니다.
작가의 나이(1952년生)를 전체 인생에 비유한다면 글쎄요, 황혼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살아보니 인생의 황혼녘이 어둡고 쓸쓸하지만은 않더라. 눈부시게 아름답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을 작품에 담았다고 합니다.
신작도 소개합니다. 관람객의 큰 호응을 얻고 있는 바다 풍경 시리즈 신작 5점을 포함해 16점 내외의 작품을 ‘스페이스 캔’과 ‘오래된 집’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언뜻 보면 서양화 같지만 동양화 전공 출신답게 동양화 붓이 주는 섬세한 터치가 중층을 이루면서 깊이감을 더합니다. 담백하면서 화려하고, 강렬하면서도 은은한 맛이 살아 있습니다.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특유의 기법과 시각으로 현대적 풍경 회화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김보희 작가의 개인전 <TOWARDS>는 오는 8월1일까지 계속됩니다. 김보희의 대표작으로 구성한 포스터, 엽서 그리고 에코백과 같은 다양한 전시연계 아트 상품도 판매합니다. 전시는 온라인 사전예약제로 운영합니다.
■ 김보희 개인전 <TOWARDS>
2021년 6월 1일(화) ~ 2021년 7월 3일(토)
스페이스 캔(서울시 성북구 선잠로 2길 14-4)
오래된 집(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18길 16)
월~목 10:00 – 18:00
금, 토 10:00 – 20:00
*일요일 휴관
*네이버 사전 예약제 운영
주최 : (사)캔 파운데이션
관람료 : 3,000원
문의 : 02)766-7606
올댓아트 권재현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콘텐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