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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요즘 미술계에 회자되는 말이다. 경매 가격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아트페어(미술장터)가 사상 최대 매출을 올리는 등 미술시장에 확실히 훈풍이 불고 있다. 웬만큼 이름 있는 작가를 앞세운 전시는 수십 만 명이 다녀가는 건 예사다. 신개념 미디어아트, 몰입형 전시, NFT(대체불가능토큰) 아트 등을 통해 최근 수집가 대열에 새로 합류하고 있는 MZ세대를 잡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미술품 공동투자’ 플랫폼도 이런 움직임 중 하나다.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로 상징되는 개인 투자 열기에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비대면 시대를 맞아 치유와 위로를 선사하는 예술의 매력을 체감한 소비자들이 미술 시장으로 몰리면서 성장세가 가파르다. 부동산은 이미 오를대로 올라버린 상황이고 잇단 호재와 악재에 출렁이는 주식은 상대적으로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도 아트테크(미술품 투자를 통한 재테크)를 향한 20~40대 투자자들의 관심이 뜨거운 배경이다. 여기에 ‘지분 쪼개기’를 통해 ‘억’ 소리나는 해외 유명 예술거장들의 작품을 저렴한 가격으로도 분할 소유할 수 있다는 ‘재무적 이익’과 ‘심리적 만족감’을 동시에 제공한다는 매력이 테사나 아트앤가이드, 아트투게더 등 미술품 공동투자 플랫폼들의 활성화를 이끌고 있다.
오는 20일 역대 최대 공모가(27억5000만원)인 샤갈의 작품을 내걸고 공동판매에 나서는 테사(TESSA)의 김형준 대표를 지난 11일 성수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테사(TESSA)는 어떤 곳인가. 아직 낯선 분들을 위해 간략한 설명을 부탁한다.
TESSA라는 이름은 ‘자산’을 뜻하는 ASSET을 거꾸로 뒤집어 만들었다. 일각에선 예술적 가치에 주목해 너무 고상하게만 바라보고, 다른 한편에선 천문학적 단위의 돈이 오가는 재테크 수단이라는 두 얼굴을 가진 미술품을 투자의 대상 즉, 자산으로 바라본다는 목표를 분명히 한 작명이라고 보면 된다. 문제는 이런 작품들이 너무 비싸서 아무나 쉽게 접근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공동투자’라는 개념을 가져왔다.
한 명이 사기에는 가격이 너무 높으니 여러 명이 돈을 합쳐 공동으로 구매한다는 개념인가.
그렇다. 테사는 크리스티, 소더비를 포함한 전 세계 경매시장의 연간 거래 성사 이력이 매년 100회 이상 되는, 검증된 작가들의 작품을 취급한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작가는 국내외를 통틀어 150명도 채 안 된다. 아트리서치팀이 자료 조사를 거쳐 작품소싱팀이 매입 후보 작품들을 브리핑하면 재무, 개발, 마케팅, 서비스 부서 등에서 ‘작품 리뷰’ 회의를 통해 매입 타당성 등을 검토한다. 최종 매입 결정이 내려지면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을 통해 마련해놓은 종잣돈을 가지고 외국 갤러리 등과의 가격 협상을 거쳐 구입에 나선다. 그런 다음, 국내 투자자들에게 공개한다. 작가의 이력, 비슷한 작품의 경매 낙찰가, 연간 수익률 등 데이터에 기반한 투자 정보를 ‘테사 앱’을 통해 투명하게 제공한다. 3~9% 정도의 지분을 뺀 나머지 90% 이상의 지분을 잘개 쪼개서 테사 회원들에게 판다. 각자 형편에 따라 1000원 어치 지분을 살 수도 있고 1만원 어치 지분을 살 수도 있다. 재정적 여력이 되고 가격 상승의 확신이 선다면 그 이상의 지분을 사들일 수도 물론 있다. 전적으로 판단은 투자자들의 몫이다.
‘탑 랭커’들의 작품만 취급하는 이유가 뭔가.
대학 시절 컴퓨터를 전공했다. 대기업의 개발, 마케팅, 사업기획 부서 등에서 일하다 독립해 이스라엘에서 스타트업을 차렸다. 이스라엘과 한국, 중국을 오가며 모바일 광고 서비스를 하는 벤처 기업이었다. ‘화끈하게’ 말아먹고 말았지만 창업 노하우나 사업체 운영 경험 등은 확실하게 배운 셈이었다. 상하이에서 알게 된 큐레이터와의 인연으로 ‘아트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신진 예술가들의 작품과 예술 애호가들을 연결하는 플랫폼 사업이었다. 5년 가까이 운영하며 꽤 규모를 키웠다. 취지도 좋고 보람도 있었지만 돈이 안 됐다.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오랫동안 고민을 거듭했다. 사람들이 예술, 예술 하지만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과 주머니를 여는 것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걸 느꼈다. 수중에 50만원이 있다고 치자. 가방을 사는데는 선뜻 지갑을 열면서도 같은 가격의 그림을 사는데는 주저하더라. 싸다고 그림을 구입하는 건 아니었다. 신진 작가를 응원해 달라고 하소연하는 것도 한계에 봉착했다. 소비자들은 냉정했다. 투자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설 때만 지갑을 열었다. 돈이 되는 그림을 취급해야겠다 마음을 먹게 된 계기였다.
테사의 탄생 배경이 궁금하다.
문제는 어떤 게 돈이 되는 그림인지 막연하다는 거다. 분명 투자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플랫폼에 내걸었는데 정작 소비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업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답보 상태를 거듭하고 있을 때 한 지인이 지나가듯 던진 말이 번개처럼 뇌리에 꽂혔다. “호크니 작품 한번 팔아봐”였다. “그 비싼 작품을 내가?”라는 말로 받아쳤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결국 팔리는 작품은 비싼 작품이었다. 사겠다는 사람들이 줄 서 있으니 그만큼 가격이 높게 형성된 것이었다. 당장 런던으로 날아갔다. 있는 돈, 없는 돈 더 털어 호크니의 판화를 샀다. 그게 2019년 8월 무렵이었다. 그걸 들고 들어와 강남의 한 공간을 빌려 취지를 설명하고 공동소유를 제안했다. 호크니 작품이라고 하니 사람들이 움직였다. 350명이 몰려왔고 그 자리에서 150명이 바로 결제를 했다. 공동소유 권리를 담은 전자계약서를 일일이 계약자들에게 메일로 발송했던 일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테사’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건가.
변호사 한 명과 디자이너 한 명 이렇게 셋이서 테사를 창업했다. 이듬해인 2020년 4월 테사 앱을 처음 내놓았다.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공동투자자를 모집했고 지금까지 모두 18차례에 걸쳐 뱅크시, 쿠사마 야요이, 줄리안 오피, 카우스, 페르난도 보테로 등 해외 거장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작품이 다 팔리면 그렇게 모은 가격으로 또 다시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을 찾아 구입한 다음, 공동소유자들을 모집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왔다. 작품을 먼저 구매한 다음 지분을 나눠 판다는 점에서 작품을 구입하려고 대중들의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딩 펀딩 방식 등과는 분명히 다르다. 테사가 펀드 같은 금융 상품을 취급하는 금융업체는 아니라는 얘기다. 공모가나 판매금액 모두 초창기엔 미미했지만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사용자나 결제자들이 늘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지난 9일 기준으로 테사 회원이 2만5000명까지 늘어났고 이중 한번이라도 결제를 한 이용자들의 숫자도 9,000명 규모에 이른다. 지난 4월 이후 거래금액은 매달 10억을 꾸준히 넘기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연말까지 150억 달성도 가능하리라 본다. 직원 숫자도 지금은 20명으로 늘었다. 작품이 쌓이면서 사무실 공간을 더 확장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금은 임대해서 쓰고 있는데 내년쯤 사옥을 매입해서 입주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공동소유니까 작품의 주인이 여러 명이다. 완판 이후에도 작품 보관은 테사가 계속 한다는 건가.
갤러리나 아트페어, 경매 등에서 작품을 구입하면 구매자의 집이나 개인공간에 보관하지만 테사는 다르다. 테사 회원들은 투자한 만큼의 지분을 소유하고 그림 보관은 테사가 한다. 그림 렌털이나 재판매 등 작품 처분도 혼자서 결정할 수 없다. 공동투자자들이 모두 함께 모여 결정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공모가 5억원에 투자자를 모아 ‘완판’한 작품이 있다고 치자. 1년쯤 지나 가격이 상승해 6억원에 이를 재구매하겠다는 컬렉터가 나타나면 투자자들의 의향을 묻는다. 51% 이상 지분을 가진 소유자들이 반대하면 매각 절차를 중단한다. 3개월이 지나 매입가 7억원을 제시한 컬렉터가 나타났다고 가정하자. 다시 투표에 부친다. 만약 반대 지분이 43%에 그친다면 어떨게 될까. 팔리는 것이다. 차익 2억은 지분에 맞게 나눠 투자자들에게 분배한다. 작품이 다시 팔리기까지 보통 2~3년 정도는 걸린다고 보는 것이 좋다.
작품 판매를 시작했는데 지분이 다 팔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팔리지 않은 지분은 원 소유자의 지분으로 남는다. 다른 투자자들과 마찬가지로 원 소유자도 그 작품의 공동 소유자 중 한 명이 되는 것이다. 완판 작품과 마찬가지로 지분만큼 렌털, 매각 등 향후 작품 처리 절차에 의사결정권을 행사한다. 이때도 ‘판매위탁’ 계약을 체결한 상태이기 때문에 작품 보관은 역시 테사가 한다.
3000만원어치 지분을 매입한 투자자가 있다고 치자. 6개월 만에 급전이 필요해 환매하고 싶은데 가능한가.
제대로 오른 가격에 작품을 되팔려면 아직 몇 년을 더 기다려야겠다고 대다수 공동소유자들이 판단하고 있는데 한 소유자의 재정적 형편이 급박해진 상황을 얘기하는 것 같다. 테사 앱 내에 ‘개인 간 거래 장터’가 있다. 이곳을 통해 3000만원 어치 지분 전체를 팔 수도 있고 일부를 팔 수도 있다. 물론, 더 올라간 가격에 팔 수도 있고 더 내려간 가격에 팔 수도 있다. 원하는 때에 되파느냐, 희망 가격에 팔 수 있느냐 여부는 전적으로 시장 여건과 수급 상황에 달려 있다고 보면 된다.
테사의 향후 계획을 들려달라.
가깝게는 오는 20일 공개를 앞둔 마르크 샤갈의 작품이 ‘완판’되기를 기대한다. 공모가를 역대 최고치인 27억5000만원으로 책정했는데 최근 샤갈의 비슷한 작품이 국내 한 경매 사이트에서 낙찰된 가격이나 테사 회원들의 ‘구매 예약’ 열기를 감안할 때 무난히 완판 대열에 올라설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한다. 올 가을에는 이탈리아 시장을 공략한다. 테사 앱을 매개로 한국 시장과 이탈리아 시장을 연결하는 개념인데 이렇게 되면 한국 구매자들과 이탈리아 구매자들이 같은 작품의 공동소유자로 함께 참여하는 길이 열린다. 현지 법률 검토도 다 마쳤다. 장기적으로는 지자체 등과 협력해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예술의 메카로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다. 한 달에 두세 작품씩 공개하고 있는데 이 속도대로라면 작품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팔릴 때까지 모아두고 있기보다 지자체 등과 협의해 적극적으로 대여할 방안을 찾고 있다. 지자체 입장에선 지역주민들에게 수준 높은 해외 예술 거장들의 명화를 선보일 수 있고 테사 입장에선 회원들에게 작품 재판매 수익 외에 렌털 수익까지 제공해줄 수 있어 ‘상호 윈윈’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해외 유명 예술거장들의 명화를 속속 국내에 들여와 한국이 대표적 예술문화 강국으로 세계 속에 자리매김하는데 일조하고 싶다.
주위를 둘러봤다. 해외 거장들의 명화들이 눈에 들어왔다. 3층의 인터뷰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평소엔 접견실로 쓰는 공간인데 2층의 ‘수장고’가 지금 리모델링 공사 중이어서 보관 중이던 작품을 모두 이곳에 옮겨놨다고 했다. 공사를 완료하면 작품들은 2층으로 다시 내려간다. 2층 수장고는 작품을 구입한 테사 회원들 누구나 들러 차를 마시고 담소도 나누며 자신이 지분을 보유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올댓아트 권재현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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