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 하반기 어린이 전시 <먼 길 이야기>

우주 법계의 온갖 덕을 망라한 진수를 그림으로 나타낸 불화의 하나인 ‘만다라 그리기’는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 심리 치료의 도구로 사용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작가인 이수경 현대미술가 역시 2004년부터 만다라 명상 작업을 해왔는데요. 

통상적으로 만다라에는 종교적 도상, 인물, 동물, 불규칙적 패턴 등이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30cm 정방형의 고정된 프레임 한편에 위치한 기묘한 형상들은 조각, 드로잉, 회화 등에 등장하며, 국적, 성별, 나이, 종의 구분을 넘나듭니다. 

이수경 작가의 전시 <먼 길 이야기>가 2021년 10월 5일부터 2022년 6월 19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어린이갤러리 1,2에서 개최됩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2021 하반기 어린이 전시로 기획된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작가가 1997년 딸을 위해 직접 지은 동화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동명의 동화는 주인공 소녀 ‘먼길’과 함께 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이 동화에는 늑대, 사자, 마녀, 사냥꾼, 거짓말쟁이 소년 등이 차례로 등장하며 우리가 잘 아는 대표 동화들이 오버랩되는데,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상투적인 결말이 아닌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이번 전시 역시 동화의 구조를 차용하여 우리를 제한하고 있는 신체, 정신, 규범, 가치관을 확장합니다. 타인을 이해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우회로를 제안하죠. 동화를 읽는 것보다 영화관에 가고 게임을 하는 것이 더 익숙해진 요즘 아이들이 미술로 상상력이 발현시키기를 바라면서요.

어렵고 난해할 수 있는 현대 미술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재구성한 전시인 만큼 어린이들에게 창의력과 시각 이미지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 프로그램 또한 제공됩니다. 어린이 갤러리1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서는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녀들이 조각과 AR로 변하고, 어린이갤러리2에서는 관람객들이 함께 드로잉을 구성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체험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엄마’ 에디터가 꼽은 대표작 3점입니다. 

전시장 벽 한편을 가득 채우는 핑크 뮬리 같은 작품입니다. 작가는 독창적인 회화의 주제를 탐구하다 그 방법 중 하나로 전생의 삶에 대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1년에 걸쳐 진행된 전생 체험으로 경험한 장면들과 이야기들은 현재까지 ‘전생역행그림’으로 지속되고 있는데요. 장미로 뒤덮인 꽃밭은 전생 체험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역할을 합니다. 이번 전생역행그림에는 이수경 작품의 주요 캐릭터인 루나와 난나, 두 소녀가 캔버스 밖으로 뛰어나와 동화 속 이야기 세상으로 안내합니다. 

쌍둥이와 같은 형태로 마치 거울을 마주 보듯이 대칭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 두 소녀의 형상은 2005년부터 시작된 매일 드로잉에 등장하는 소녀들입니다.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인물들이죠. 이들은 모두 각자의 내면의 세계에 몰입하고 있는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암석과 같은 기본 구조 위로, 향로, 왕관, 자수정과 같은 장식과 함께, 사자 머리, 다수의 젖가슴, 기도하는 손, 동물의 발 등이 뒤얽혀 마치 뜨거운 용암에 녹아내려 재로 덮인듯한 형상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에는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요. 전시장에 마련된 패드로 작품을 비추면 화려한 액세서리가 ‘짠’하고 등장합니다. 이 액세서리 역시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요. 

개인적으로는 이번 전시에서 아이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사로잡을 수 있는 작품은 어린이갤러리2에 마련된 인터랙티브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의 ‘매일 드로잉’에서 참조한 다양한 동식물 및 사물들을 디지털로 재현한 이 작품은 스크린 앞에 관람객이 다가가면 가상공간 속에서 춤추고 있던 유기체가 참여자의 몸짓에 맞춰 움직이는 방식으로 구현됩니다. 다양한 동작을 취할 때 인간의 몸과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 유기체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을 마주하며 참여자는 탈-신체적 행동을 경험하게 되죠.

한편 서울시립미술관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하여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 사이트를 통한 사전 예약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시 관람 일정을 포함한 자세한 정보는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