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손예진, 조윤희가 작품을 소장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우국원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어 어느 때보다 가족과 고향이 생각나는 요즘인데요. 전시 제목도 때마침 <I’m your father>입니다. 아버지 우재경 화백의 동양화를 오마주한 신작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오는 11월 말이면 아버지가 됩니다. 아내의 출산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서먹하기만 했던 아버지와 그의 작품도 달리 보인다는 우 작가를 최근 서면으로 만났습니다.
곧 ‘아빠’가 되신다니 미리 축하드립니다. ‘아버지’를 주제로 전시까지 열고 있어 여러모로 뜻깊은 추석이 될 것 같은데요. 연휴는 어떻게 보낼 계획입니까?
여느 해처럼 가족들과 함께 보낼 생각입니다. 남는 시간에는 늘 그렇듯이 작업실에 파묻혀서 음악 듣고 책 보고 그럴 겁니다.
요즘 인기를 실감하는지요. 지난달 잇달아 열린 서울옥션과 케이옥션 경매에서 작품이 높은 가격에 낙찰되면서 ‘역시 우국원이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배경이나 이유를 뭐라고 보는지요. 스스로 생각하는 ‘내 작품의 특성’이나 ‘내가 작업할 때 특히 강조하는 부분’ 등 작품세계와 작업철학이 궁금합니다.
누군가 제 작품을 좋아하고 컬렉팅까지 한다는 건 작가로서 엄청난 축복입니다. 첫 개인전에서부터 최근의 노블레스컬렉션 전시까지 저와 작품에 관심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서울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미술시장이 되고 있는 듯합니다. 한국 작가들에게 큰 기회가 열리기 시작한 거죠. 이런 때일수록 멘탈 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심호흡을 하고 향후의 플랜을 점검해 보게 됐습니다. 원래 매사에 크게 개의치 않고 무모한 도전도 즐기는 성격인데요. 파도가 저를 덮쳐버리지 않도록 서핑하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Over the sea’라는 작품과 연결되네요.
전시 얘기를 좀 해보죠. 개인전 제목이 <I’m your father>입니다. 부친인 백초(白楚) 우재경 화백의 동양화를 오마주한 신작 시리즈를 발표했고요. 아들의 눈에 비친 우 화백은 어떤 아버지였나요?
대부분의 아들들이 그렇듯이 저 또한 아버지와 대화를 길게 나눠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전형적인 한국 아버지 스타일이셨어요. 아주 엄하고 무뚝뚝한 분이죠. 매일 규칙적인 시간에 작업실로 나가서 종일 작업을 하고 귀가하셨습니다. 나름의 원칙에 충실했고 질서가 확고한 분이 바로 아버지였습니다. 천성이 놀기를 좋아하고 게으른 측면이 있는 저와는 많이 달랐죠.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덕에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작업을 해내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이번 전시의 주제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버지의 작품을 오마주해보겠다는 것은 오랜 꿈이었습니다. 다만,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 과연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는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박수전 큐레이터가 적극적으로 권해서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전시 타이틀을 ‘I’m your father’로 정한 직후에 아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런 게 바로 ‘운명이구나’ 싶었습니다.
한때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지 않으려고 디자이너로 활동했지요.
그렇습니다. 주변에 아는 분 중에 작가들도 있지요? 잘 아시겠지만 작가의 가족들은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어릴 때는 그런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작가가 아닌 일반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학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중도에 그만두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회사원으로 일했습니다. 결국 다시 작가로 돌아왔네요. 작가의 길을 가겠다고 하니 아버지가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아직도 그 말씀을 다 이해했다고는 못하겠지만 마흔이 넘고 보니 아주 조금씩 아버지의 모습에 저를 대입해 나가는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디자이너 경력이 지금 활동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나요?
디자이너라고 경력을 내세우기엔 많이 쑥스럽습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어요. 매거진 편집 작업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화면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에 예민합니다. 지금도 밑그림만 그려놓고는 작업을 이어가지 않고 한참 동안 계속 고민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십중팔구 이 부분이 해결이 나지 않아서 그러는 겁니다.
다시 화가의 길로 돌아오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주위에도 보면 발버둥치지만 작가의 길로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지요. 기질을 거부할 수 없었던 거 같습니다. 해소되지 않는 인생의 궁금증을 신학, 문학, 철학 등 여러 곳을 떠돌며 답을 찾고자 했는데요. 결국 지금 화가로서 작업을 하고 있네요. 제 안에서 해답을 찾아보려 합니다.
‘예비 아빠’로서 요즘 심경이 어떤가요.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경험이겠지요? 주변을 보면 신생아는 다들 처음엔 이상하게 생겼던데요. 주름진 얼굴의 신기한 존재를 품에 안으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요. 낯설면서도 저를 닮았겠지요? 스타워즈의 ‘요다’ 같을까요? 이 지점이 다음 전시의 주제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그런 감정을 이번 전시에는 어떻게 담았는지 궁금합니다. 우국원 작가 하면 떠오르는 동화적 도상, 발랄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캐릭터가 전하는 삶과 일상의 유쾌한 풍경 등을 이번 작품에선 어떻게 변주했는지 들려주세요.
이번 전시 작품은 기존의 제 작품에 익숙했던 분들께는 다소 생경할 수 있습니다. 캐릭터가 작아졌거든요. 전시를 기획한 박수전 큐레이터는 “우국원 작가가 디즈니랜드에서 스스로 걸어 나와 실제라는 세계의 광활한 자연 앞에 선 작은 자아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이것이 질문의 답이 될 수 있을까요.
광활한 자연 앞에 서서 바라본 아버지의 작품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던가요.
오마주로 표현할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 본가에 가서 아버지와 함께 작품들을 꺼내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단 둘이 긴 시간을 보낸 건 아주 오랜만이었는데 무척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전시를 준비하면서 자연스레 아버지의 작품을 깊이 연구하는 기회를 가졌는데요. 기술적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연습을 해야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니 아마 못할 것 같습니다. 저는 저만의 방식을 찾으려고요.
‘우국원’이라는 작가 개인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몇 시에 일어나서 어떻게 작업하고 몇 시에 잠자리에 드는지 등 시시콜콜한 일상부터 요즘 개인적 관심사는 무엇인지, 남는 시간에는 주로 뭘 하는지, 작품의 모티브는 주로 어디에서 얻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작업에 임하는지,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에 이르기까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네요.
아직도 제 작품을 바라보는 게 낯설어요. 전시 작품을 보내고 나면 전시장에 걸린 작품을 보러 잘 나가지 않는 편입니다. 작업은 주로 늦은 밤에 시작해 새벽까지 해요. 낮에는 작업실에 있어도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게 많지만 모두 잠든 밤에는 특별히 연락오는 사람도 없고 해서 작업에 몰두할 수 있으니까요. 오롯이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밤을 선호합니다.
작업의 영감은 여러 곳에서 옵니다. 팝송의 가사 한 구절이 뇌리에 꽂혀서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고, 친구와의 대화에서 테마를 찾기도 하죠. 작품 속에 아이러니를 숨겨두는 걸 좋아합니다. 대부분 그냥 모르고 지나치는데 그 지점을 발견하는 분들을 만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어요.
제 작품을 통해 누군가 인생의 특정한 시기를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런 경험 있지 않아요? 인생의 특정 시기를 떠올렸는데 그때 나와 함께해 주었던 ‘데미안’ 같은 존재가 함께 생각나는 그런 경험이요.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영화가 될 수도 있고 페인팅이나 사진, 포스터일 수도 있겠죠. 제 작품이 누군가의 공간을 함께하던 친구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면 더 없는 영광이겠습니다.
작년에 결혼해 곧 아버지가 되는 우국원 작가가 아버지 작품의 도상 속에 자신의 특색을 녹여낸 신작 시리즈를 공개합니다. 청담동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오는 30일까지 만나볼 수 있습니다. 부친 우재경 화백의 작품도 함께 전시 중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작품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자신의 것으로 어떻게 체화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 우국원은 누구
1976년 서울에서 동양화가 백초 우재경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양화를 전공하던 중 2001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약하던 그는 2009년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The Rainbow Connection>전을 비롯해 표갤러리, 갤러리비케이, 롯데잠실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선보였다. 또 스페이스K, LIG아트스페이스 등에서 기획한 그룹전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대학교미술관, 일신문화재단, 코오롱 등 다수의 기관과 기업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 우국원 개인전 <I’m your father>
2021년 9월 1일(수) ~ 9월 30일(목)
오전 11시 – 오후 7시(일·월요일, 공휴일 휴관)
* 추석 연휴(9.19~9.22) 휴관
노블레스 컬렉션(서울시 강남구 선릉로162길 13 노블레스빌딩 1F)
관람료 : 무료
문의 : 02)540-5588
올댓아트 권재현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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