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달려온 1년이었습니다. 그때, 그랬잖아,라고 말하고 보니 벌써 해를 넘긴 일이 된 기억들도 비일비재합니다. 코로나19를 탓하자니, 그럼에도 열심히 묵묵히 이 시간을 견뎌온 사람들에게 미안해집니다. 여러분의 지난 2021년은 어땠나요?
남은 한 해를 정리하며, 힘들었던 시간들을 토닥여볼 전시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전시에 참여한 다섯명의 아티스트들은 ‘예술의 힘’을 바탕으로, 예술이 가진 치유적 에너지를 명상 산업과 적극적으로 연계, 현대인이 경험하는 내적 갈등 및 대립을 스스로 목격하고 예술로 완화할 수 있도록 제안합니다.
그들의 이름은 문서진, 박관택, 서용선, 유승호, 조현선입니다. 이들은 11월 20일까지 서울 황학동 로얄빌딩 지하 1층에서 진행되는 전시 <마인드붐: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죠.
이번 전시를 총괄한 김신일 설치 미술가는 “수면을 뚫고 연못의 바닥을 비추는 달빛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듯, 불안함 역시 그저 일어나는 현상일 뿐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고의 높이가 코로나 시대에는 특히나 더 필요하다”며 “기존의 정의와 용도를 폐기하고 인식의 경계를 새롭게 정의해 나가려는 작가들을 초청하여 달빛처럼 느끼지만 흔적도 없는 무엇으로 불안함을 되돌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획 의도를 밝히기도 했는데요.
금강경 야부송의 “대나무 그림자가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고,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는 흔적이 없다(竹影掃階塵不動, 月穿潭底水無痕)”는 경구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된 이번 전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계에서 인식의 경계란 감각할 수 있으되, 그 흔적은 찾을 수 없는 달빛과 같다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5명의 작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식의 경계를 흐립니다. 특유의 묵직한 필선과 강렬한 색감으로 한국 화단을 이끌어온 서용선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형 자화상과 불상 조각, 역사화를 들고 나왔습니다.
액자처럼 걸려 있는 창문 밖을 향해 앉은 ‘시드니 자화상'(2020-2021)과 난간처럼 보이는 곳 자신 혹은 타자의 분열된 신체 속에 서 있는 작가의 모습이 담긴 ‘자화상NJ'(2021) 속 작가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시나요? 평소 자화상을 그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할 정도로 자화상을 즐겨 그리는 작가는 자신의 형상을 통해 외부 세계, 더 나아가 역사와 사회 현상에 대한 인식의 경계까지 ‘다시 쓰기를 거듭합니다.
언어가 가진 본래의 의미들을 변형-해체시키는 작업을 해온 유승호 작가는 하나의 커다란 이미지로 보이지만 사실은 작은 글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제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일련의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그의 화폭에서 글자들은 형상의 일부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될 뿐 본래 의미는 놓아버립니다. ‘뇌출혈’과 ‘natural’, ‘아이고’와 ‘I go’를 뒤섞는 유머는 글자와 의미, 내용과 이미지 사이에 축축한 균열을 일으키죠. 그 틈새에서 고정관념은 힘을 잃고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이 탄생합니다.
조현선 작가는 자신의 전작 ‘Camouflaged Orange'(2015)의 화면을 계속해서 재구성-재해석해나가는 ‘반달색인’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전작을 하나의 사전으로 상정하고 ‘다시 보기’를 반복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완결을 거부하는 일입니다.
작가는 ‘사전처럼 한 문장 안에 명료하게 정의 내리는 것’의 불가능성을 사유하기 위해 캔버스를 덮고 또 덮기보다는 새로운 화면을 생산하고 끊임없이 증식시키기로 함으로써 원본의 위계마저 흔듭니다. 원본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독자적으로 자생하는 ‘반달색인’들은 미완의 상태이자 그 자체로 완전한 작품이 됩니다. 명확한 정의 내림과 경계 짓기란 환상에 불과한 것임을 일깨우기 위함이죠.
선풍기 바람에 나부끼는 박관택 작가의 ‘연약한’ 드로잉들은 작품을 보는 방법에 질문을 던진다. 여러 레이어로 겹쳐지거나 잘려나간 종이의 표면들은 선풍기 바람에 의해 공간 속을 펄럭이며 관람자의 망막을 어지럽히는데요.
드로잉들은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명확하게 잘 보여주기 위해 얌전히 멈춰 있기보다는 2차원의 가상세계에서 3차원의 현실 세계로, 정지된 스틸 이미지에서 움직이는 무빙 이미지로, 어떻게든 한 발짝 나아가 보려 애쓰는 듯합니다.
문서진 작가는 얼어붙은 호수 위에 매일 눈을 쌓아 올리는 퍼포먼스 ‘살아있는 섬'(2020), 자신의 몸을 컴퍼스 삼아 커다란 원을 그리는 퍼포먼스 ‘내가 그린 가장 큰 원'(2016) 등 신체를 통해 세계와 교감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을 선보입니다.
‘삽으로 눈을 쌓는다’, ‘몸으로 원을 그린다’와 같이 최소한의 계획만을 가지고 시작하는 작가의 퍼포먼스는 불확실성 속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감각들로 채워지곤 하는데요. 언 호수 위를 오가며 작가가 느낀 여러 단상, -이를테면 지면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잠재된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연에 대한 경외,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과 누군가의 응원으로부터 받는 위안에 대한-들은, 전시장에 놓인 작품들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감각을 일깨웁니다.
한편, 명상과 예술을 적극적으로 연계하려는 행사의 취지에 맞게 부대 프로그램도 알차게 꾸며집니다. 오프닝 공연 펼쳐진 인도 고전 안무가 박은경의 ‘Rise from the Ashes’는 마인드그라운드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유되고 있습니다. 또 전시 중에는 작품들과 함께 어우러져 깊은 명상을 체험하는 클래스 프로그램도 진행됩니다. 전시 관람 예약은 마인드그라운드 예약 시스템을 통해 운영되며, 무료 관람입니다.
<마인드붐: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Mind Boom: Though Moonlight Penetrates the River2021.10.20.(수) ~ 11.20(토)
황학동 로얄빌딩 B1
(서울 중구 난계로11길 42)
회화, 조각, 영상, 설치 등 30여점
문서진, 박관택, 서용선, 유승호, 조현선 참여
올댓아트 김지윤 에디터
althhat_art@naver.com
자료 및 사진 |마인드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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