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콘텐츠가 힘인 시대다. 유튜브를 필두로 다양한 콘텐츠 플랫폼이 등장하고 끼가 넘치는 크리에이터들이 급증했고, 콘텐츠를 활용해 직접 수익을 창출하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시장이 커지고 있다.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은 물론 ‘부캐’로 ‘크리에이터(유튜버)’를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크리에이터가 창의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을 한다고 전제했을 때, 이들의 활약은 괄목할만 하다. 1년에 2차례 발행만으로 독립 매거진의 입지를 다지고, 전 세계적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TOILET PAPER’의 얘기다.
‘TOILET PAPER’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작가이자 베니스 비엔날레,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등 전세계 유수의 전시에서 숱한 화제를 모은 이슈메이커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광고 패션계의 사진작가로 활동한 피에르파올로 페라리가 2010년 만든 매거진이다.
현재는 출판을 넘어 이미지가 플레이되는 모든 영역을 다루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로 자리매김 중이다. 이들은 겐조, OK Cupid, SK-II, 나이키, 디젤, MAC과 같은 다양한 브랜드의 국제 광고 캠페인을 진행하고 산펠레그리노 등의 브랜드 제품을 디자인하는 등 전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시대를 앞서가고 유행을 선도해온 이들의 스튜디오가 이태원으로 옮겨왔다. <TOILETPAPER: The Studio>전이 2022년 2월 6일까지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Storage에서 진행된다. 거침없는 상상력과 독특한 미학으로 꾸며진 이들의 공간을 둘러봤다.
가장 먼저 마주한 전시장의 입구 풍경은 패션 디자이너의 갤러리를 떠올리게 한다. 붉은색 립스틱을 쥐고 있는 네개의 손, 붉은색과 흰색, 파란색으로 칠해진 이 집은 ‘TOILET PAPER’의 스튜디오 외관을 이미지화 한 것이다. 철통 보안으로 지금까지 외부인에게는 공개하지 않았던 사무실이라고 한다.
카텔란과 페라리는 주로 몸을 소재로, 심리적 긴장감으로 가득 찬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신체의 각 부분들, 눈과 입술, 코, 손가락, 다리 등은 처음부터 몸의 전체에서 독립되었던 것처럼 나타나며, 다른 요소들과 자유롭게 결합시킴으로써, 일상적인 우리의 몸은 새로운 풍경으로 재구성된다. 강렬한 색채와 더불어 신체의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동화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몸은 마치 꿈의 세계, 무의식의 비밀스러운 영역, 환상, 착란, 내면의 불안함을 투영한 스크린처럼 보인다. 상식과 관습을 뒤엎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토일렛페이퍼의 작업은 우리의 감각을 환기시키고, 새로운 상상력과 창의적 사고로의 열린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무실 외에도 거실과 주방, 정원 등의 공간을 만나볼 수 있다. 립스틱이 그려진 쇼파, 기이한 총, 활짝 핀 장미, 유쾌한 디자인의 접시와 스케이트 보드, 눈알을 물고 있는 남자, 살아있는 개구리를 넣은 햄버거 등 아이코닉한 아이템들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편으로는 기이하고 놀라운 이 애매모호함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실에 놓여있는 사람 키만한 선인장과 커다란 새알의 예상치 못한 결합은 ‘신(God)’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원래 1972년 이탈리아 디자이너 귀도 크로코(Guido Crocco)와 프랑코 멜로(Franco Mello)가 디자인한 ‘선인장(Cactus)’을 토일렛페이퍼가 패러디한 것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옷걸이 기능을 지닌 재미있는 가정용 디자인 제품이기도 하다.
마치 CCTV를 보듯 모니터에 등장하는 두 아티스트들의 엉뚱한 모습이나 초현실의 세계에 빠져있는 듯한 느낌을 배가 시키는 일상의 소리들은 흡사 백일몽 같은 상황을 만들어낸다. 이 모든 것들은 동시대 시각예술의 자유로운 생산성이 우리의 의식과 감각을 깨우고 꿈꾸게 하길 희망하는 의도로 기획된 연출이라고 한다.
이제 여러분은 편안해지고, 불손해지고, 마침내 자유로워 질 것입니다.
한 층 아래로 내려가면 ‘TOILET PAPER’ 매거진에서 보았던 다양한 작업들도 볼 수 잇다. 매거진이라는 2차원의 평면이 아닌 가구, 패브릭, 테이블 위의 접시, 벽지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어 물질적 삶의 공간 곳곳으로 확장된 것이 인상적이다. 미드 센추리 모던 가구와 러그, 거울, 조각상, 갖가지 장식소품 등에 콜라주 되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법한 화려한 만화경의 세계다. 마치 유럽의 편집샵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TOILET PAPER’ 매거진에 실리는 모든 이미지들은 카텔란과 페라리가 직접 기획, 편집해 왔다. 이들은 각각의 콘셉트와 상황에따라 세트 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비롯해 가구 및 골동품 전문가, 동물 조련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친 여러 사람들과 협업한다고.
작업의 출발은 사랑, 탐욕, 죽음과 같은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주제에서 시작하지만 캔버스를 자유자재로 누비는 화가처럼 현장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양한 실험들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지점에 이르는데, 이 결과물이 ‘TOILET PAPER’ 특유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카텔란과 페라리에게 <TOILET PAPER>는 자신들의 이미지를 새로운 방식으로 순환시키는 실험실이자 플랫폼이다. 이들은 예술적 접근 방식이 디자인을 향하고 디자인적 접근 방식이 삶을 향하는 가장 실험적이면서 유쾌한 접점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이 전시는 ‘텍스트’를 찾아보기 힘들다. 입구에 적혀있는 서문이 전부다. 일반적인 전시에 익숙한 관람객이라면 이와 같은 ‘불친절’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첫 공간을 마주하는 순간, 이들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TOILETPAPER: The Studio>
2021.10.8~2022.2.6
현대카드 스토리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48 B2)
평일 12:00 – 21:00
일요일 및 공휴일 12:00 – 18:00
매주 월요일 휴관
글·사진 올댓아트 김지윤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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