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데우스 로팍 서울이 지난 달 6일 용산구 독서당로에 문을 열었다. 사이건축 박주환 건축가의 설계로 201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및 서울특별시 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한 포트힐 건물 2층에 입주했다. 한남오거리에서 각국 대사관들이 즐비한 독서당로 방향으로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주한 가나 대사관’이 보이고 몇 걸음 더 가면 타데우스 로팍 서울을 만날 수 있다. 지난 달 22일 현장을 찾았다. 갤러리 내부는 양태오 디자이너의 감각적인 재해석을 더해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절제된 우아함이 돋보였다. 두 개의 전시공간 사이에 중정(中庭)을 배치해 포인트를 줬다.
런던, 파리, 잘츠부르크 등 세 도시에 5개의 갤러리 공간을 운영 중인 유럽 명문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이 첫 아시아 지점 개설지로 서울을 선택했다. 홍콩에 이어 새롭게 아시아 문화 예술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서울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에너지에 일조하고자 한남동에 새 전시 공간을 개관하게 됐다고 ‘타데우스 로팍 서울’은 밝혔다. 국내외 주요 현대미술가들의 개인전을 매년 약 여덟 차례씩 개최할 계획이다.
1960년대 이후 국제 미술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동시대 가장 중요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게오르그 바젤리츠가 스타트를 끊었다. 바젤리츠는 2019년 파리 아카데미 데 보자르의 회원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으며, 베니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가진 최초의 생존 예술가이기도 하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파리 퐁피두센터, 베를린 국립미술관,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영국 테이트 갤러리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1938년 작센주의 도이치바젤리츠에서 한스 게오르그 케른(Hans-Georg Kern)이라는 본명으로 태어난 바젤리츠는 동독에서 조형예술대학을 다니다가 ‘정치사회적 미성숙’을 이유로 제명 당했다. 이후 1957년부터 1963년까지 서독에서 학업을 마쳤다. 이 시기에 자신의 성을 고향의 지명인 바젤리츠로 바꿨다. 형식적인 묘사에 불과했던 사회주의 동독의 미술에 반대한 바젤리츠는 당시 서독의 주류였던 추상미술 형식에도 저항했다. 오히려 구상으로 회귀했다. 어느 쪽의 미술 양식이나 이데올로기에도 온전히 발을 담그지 않은 채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60여 년에 걸친 그의 예술 인생 자체가 그랬다. 정형화된 단일 양식에 한정되길 거부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적 가치를 실험하고 창조했다. 삶의 실존과 투쟁성, 불안과 왜곡의 신체적, 감정적 상태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회화, 조각, 판화, 드로잉 등 작업 매체도 다양하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도 파격적이다. ‘엘케’라는 다분할된 인물을 비정형적 공간 속에 고립되어 거꾸로 매달린 형상으로 연출했다. 캔버스에 그린 다음 이미지를 찍어내 물감의 흔적을 남긴다. 전통적인 회화의 원칙을 탈피한 새로운 표현 방식이다. 작품 구도를 거꾸로 뒤집는 시도는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용의 전달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이 같은 설정을 통해 형식에서 내용을 비워낸 새로운 양식은 이후 바젤리츠 작품의 주된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거꾸로 매달린 듯한 엘케의 형상들이 전시장 전체에 낯설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드리운다.
엘케는 그의 부인이다. 50년이 넘도록 모델이자 뮤즈로 바젤리츠의 예술 성취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초상화에 흔히 있을 법한 구도나 조화, 아름다움의 묘사는 배제하고 너무도 친숙한 부인을 대상의 핵심만 남기고 추상화함으로써 추상과 구상 사이 어디쯤에 자신의 작업을 가져다 놓았다.
개별적 존재로서의 아내인 동시에 보편적 인간을 형상화한 ‘중의적인’ 존재를 마치 엑스 레이(X-ray) 사진과 같은 이미지로 표현했다. 연극으로 치면 독일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 기법이다.
나는 항상 작품 안에서 무언가가 나를 방해한다는 사실과 싸워왔다. 나를 항상 방해했던 그것은(이제는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소위 ‘실존적’이라 불리는 것들이었다. 내 안에 나를 점령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시, 그리고 그것을 작품에서 제거하지 못한다는 사실 말이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 사실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이 노력을 근 60년간 지속해 왔는데, 지난 20년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다 잘 해결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 게오르그 바젤리츠 –
이번 전시의 제목인 ‘가르니 호텔'(Hotel Garni)은 프랑스어로 저가 호텔을 의미한다.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에서 착안한 발상이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한 연상 과정과 만나 제목으로 탄생했다.
타데우스 로팍 서울을 위해 바젤리츠가 특별히 제작한 12점의 회화와 12점의 드로잉 등 신작을 선보인다.
서울 전시와 맞물려 지난달 20일 파리 퐁피두센터에서도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이 개막했다.
작가는 자주 바닥에 캔버스를 펼쳐 놓고 작업을 한다. 이와 같은 제작 방식은 위와 아래의 관념 자체를 벗어난 것이다. 그림이 벽에 걸리는 순간, 위와 아래의 개념이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보는 이에게는 거꾸로 된 이미지가 작품의 강한 인상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거꾸로 됨으로 말미암아 그려진 대상과 회화의 내용을 파악하고자 하는 의도는 거부된다. 회화의 색채와 붓 터치, 매체의 효과는 회화 자체로서의 회화를 바라보게 만든다. 보는 이는 형상을 의도적으로 전달 받기보다는 공간상의 요소 간 관계를 조성하고 탐색한 작가의 흔적을 목격하게 된다. 화가의 주관성과 내면의 충동, 삶의 표출로서의 화면은 감성과 직관으로 다가가게 되는 모호함으로 이어진다.” – 김남인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 타데우스 로팍 서울 개관전
게오르그 바젤리츠 <가르니 호텔>2021년 10월 7일 ~ 11월 27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독서당로 122-1(포트힐 빌딩) 2층
문의 : 02)6949-1760
올댓아트 권재현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자료 및 사진 ㅣ타데우스 로팍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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