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국내외 관광객들이 사랑하는 명소입니다.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박형근 작가가 최근 <차가운 꿈 Bleak Island>이라는 제목의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시의 메시지가 다소 뜻밖입니다. 제주도를 아름다운 ‘환상의 섬’으로 여기는 외지인들에게 “낭만적인 제주의 풍경은 허구”라고 말하고 있거든요. 제주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제주 출신 작가가 이렇게 주장하는 데는 틀림없이 이유가 있겠지요?
작가는 제주 4.3 사건 등 제주도가 겪은 한국 현대사의 흔적이 아직 제주도에 남아있다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2005년부터 오름, 바다, 계곡, 동굴 등을 찾아다니며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제주도’라는 땅이 가진 무게가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엄중하게 느껴졌다는데요. 제주도가 겪은 시간들을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면에서 솟구쳐 올랐다고 합니다. 17여 년간 작업을 이어왔지만 제주도를 촬영한 사진들을 공개한 것은 이번 전시가 처음이었습니다.
지난 9월 26일 전시는 막을 내렸지만 박형근 작가가 포착한 제주의 흔적은 지금도 진행형이기에 사진전의 감동을 다시 가져왔습니다.
일출봉
‘일출봉(2010)’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제주도민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해 만든 진지동굴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일본은 해군의 소형 함정과 어뢰를 숨길 곳을 마련하기 위해 제주도 내 곳곳에 이런 진지동굴을 100개 이상 만들었습니다. 지난 8월에는 진지동굴이 당초 알려진 100여 개보다 훨씬 많은 400개가 넘는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발간돼 언론이 이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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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동굴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강제 노역의 흔적이 남아 있는 가슴 아픈 역사의 장소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해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사진 촬영 명소이기도 합니다. 박형근 작가의 어린 시절 놀이터이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어릴 적 친구들과 뛰어놀던 해안가 동굴이 자연 동굴이 아니라 일본군이 만든 곳이라는 사실을 조금 커서 알고는 크게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제주도 여행의 필수 코스인 성산일출봉 근처에 있는 진지동굴을 촬영한 ‘일출봉’ 또한 여전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관광 명소이지만 잊어선 안 될 제주도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새별 오름
매년 3월 열리는 제주 들불축제를 촬영한 사진 ‘새별 오름(2012)’입니다.
과거 제주에서는 말 같은 가축들의 방목을 위해 정월대보름 즈음 오름에 들불을 놓았습니다. 병해충 방제가 목적이었지요. 제주 고유의 민속 행사로 자리 잡아 1997년부터 제주시가 주관하는 관광 축제로 발전했는데요. 새별 오름은 고려시대 공민왕의 반원자주정책에 맞서 ‘목호(牧胡)의 난’이 일어났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목호의 난’은 최영 장군이 이끄는 대규모 토벌군이 한 달 동안 고전했을 정도로 강하게 저항했습니다.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제주도 땅을 되찾기 위한 정당한 진압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나 최근에는 다양한 시각에서 목호의 난을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말을 기르기 위해 원나라에서 제주도로 온 ‘목호’들은 약 100년이라는 시간을 머물면서 제주도민들과 혼인, 친분 등 다양한 관계로 얽혀 있었기 때문에 토벌 과정에서 주민들까지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거든요.
사진 ‘새별 오름’은 관광 축제의 무대가 된 새별 오름의 그림자 속에 소방차 몇 대가 소박하게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사진의 오른쪽 중간 위치를 보면 작게 찍힌 소방차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박형근 작가는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장소를 사진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담았습니다.
이처럼 작가가 촬영한 공간들은 대부분 현재 외지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이거나 관광지와 매우 가까운 곳들입니다. 방문객들이 경치만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주도라는 땅이 가진 역사성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이끄는 장치들입니다.
올댓아트 구민경 인턴
권재현 전시팀장
allthat_art@naver.com
자료 및 사진 ㅣ플랫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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