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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딩 입고 걷는 ‘줄리안 오피’의 사람들, 요즘 날씨랑 딱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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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안 오피(Julian Opie, 1958년生)의 작품들이 왔습니다. 그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걷는 사람들’은 여전히 역동적으로 걷고 있지만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를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작품 속 등장 인물들은 모두 방한복 차림입니다.



    줄리안 오피(b.1958) <Winter night 2.> 2021 Aluminium, nylon and lights 291.8 x 291.8 x 9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목도리를 두르고 모자를 쓰고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를 들고 있습니다. 레깅스 차림에 질끈 동여맨 머리가 찰랑찰랑 흔들리는 여성, 거북목 증후군의 모델인가 싶을 정도로 잔뜩 웅크린 채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는 중년 남성,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경쾌한 걸음을 내딛는 청년, 외투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무표정한 얼굴로 어디론가 터벅터벅 걸어가는 노인, 한 손에는 업무용 가방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응시한 채 일터로 향하는 직장인, 이 정도 추위쯤은 우습다는 듯 반바지 차림으로 거리에 나선 젊은이…. 오피의 눈에 비친 현대 도시인들의 모습입니다. 대상을 극도로 단순화했지만 걸음걸이며 신체의 윤곽 등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움직임과 곡선의 각도 등이 놀라우리만치 실제 사람과 똑같습니다. 심지어 눈, 코, 입을 다 생략한 얼굴에서 생생한 표정이 읽히는 듯합니다.



    국제갤러리 2관(K2) 줄리안 오피 개인전 《Julian Opie》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가 줄리안 오피의 개인전을 열고 있습니다. 2014년 이후 7년 만의 국제갤러리 전시로,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가장 대규모의 전시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라는 시의성과 한국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반영한 맞춤형 작품들에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시도한 실험작들까지 골고루 섞여 있어 줄리안 오피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줄리안 오피 작가 프로필 이미지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작가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오피는 그간 수원시립미술관(2017), F1963(2018)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서울, 부산, 대구, 전남, 김포에서 영구 설치 프로젝트를 벌이는 등 꾸준한 작업으로 한국에서도 꽤나 친숙한 작가입니다. 사람, 동물, 건물, 풍경과 같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를 다양한 매체와 기술을 조합한 독자적인 시스템에 기반한 조형언어를 통해 예술로 거듭 태어나게 하지요. 고대 초상화, 이집트의 상형문자, 일본의 목판화뿐 아니라 공공 및 교통 표지판, 각종 안내판, 공항 LED 전광판 등에서 두루 받은 영감을 현대 도시에서 따온 시각언어와 결합해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그의 작업세계를 묘사하고 서술합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끔 최대한 단순화된 현대적인 이미지로 그려내 동시대인들이 쉽게 접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업으로도 유명합니다.



    국제갤러리 3관(K3) 줄리안 오피 개인전 《Julian Opie》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호기심이 내 작업의 원천이다. 나는 눈으로 직접 보고 관찰한 것만 작품으로 옮긴다.
    – 줄리안 오피 –

    그의 작품 철학입니다. 그의 관찰로 재해석된 세상의 이미지들은 고대와 최첨단을 넘나들며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통해 현실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신체 비율이며 보폭, 윤곽의 묘사, 옷의 색상, 소지품의 종류와 크기 등이 흡사 실제 인물을 보는 듯 생생하고도 역동적입니다. 서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 행인들 각각의 크고 작은 특징을 포착해 조합하는 작가 특유의 예리한 관찰력이 이번 전시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K2, K3와 정원을 아우르는 다양한 전시공간에 30여 점의 건물, 사람 그리고 동물 형태의 평면 및 조각 작품들을 펼쳐 놓았습니다.

    국제갤러리 2관(K2) 줄리안 오피 개인전 《Julian Opie》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왼쪽), 국제갤러리 2관(K2) 줄리안 오피 개인전 《Julian Opie》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오른쪽)

    K3 공간에서 관람을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가상 도시가 등장했습니다. 뾰족하게 솟은 건물들이 보입니다. 뼈대만 남기고 대상의 형태를 단순화했지만 이국적이면서도 고풍스런 느낌이 ‘한국은 아니다’ 싶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작가가 거주하는 런던 동쪽의 풍경이랍니다. 팬데막 상황으로 런던에 머물면서 도시의 현대적이고 역사적인 건물을 새삼 눈여겨보게 된 작가는 이들을 입체적인 금속 조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런던 중앙부 구시가지의 건물들을 재현한 설치물 2점의 크기는 각각 4미터 규모로, 실물 크기의 인물 조각과 조화를 이룹니다.



    국제갤러리 3관(K3) 줄리안 오피 개인전 《Julian Opie》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K2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정원이 하나 나옵니다. 마천루 형태의 타워 조각 작품이 서 있습니다. 좀 전에 봤던 첨탑 건물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건물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싶습니다. 세계 주요 도시들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는 마천루는 이제 한국에서도 전혀 생소하지 않은 건축 형태이지요. 서울 한강 주변의 고급 아파트 단지, 부산 해운대 바닷가의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들,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늘어선 고층 빌딩 숲 등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중에서도 이곳은 어디를 배경으로 하는 마천루 건물일까요. 인천이라는 설명이 따라왔습니다.



    국제갤러리 정원 줄리안 오피 개인전 《Julian Opie》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오피는 상상으로 그리는 작가가 아니라고 앞서 말씀드렸죠. 그는 자신의 전시가 열리는 해당 도시에서 직접 포착한 이미지를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방식을 즐깁니다. 그렇다면 인천도 당연히 작가가 직접 둘러본 뒤 이번 작품을 만들었을까요? 아닙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변수가 있었습니다. 이동의 제약으로 인천 방문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철칙을 깨뜨리고 상상에 의존해 작업을 이어갈 수는 없었겠죠. 다행히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는 물리적 이동의 제약을 보완해줄 수 있는 첨단 기술이라는 ‘요술 방망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기간 지속되는 코로나19 상황은 예술가들의 작업 방식조차 바꾸어 놓았습니다. 오피도 예외는 아닙니다. 작가는 물리적인 여행 대신 3D 구글 지도를 통해 가상으로 인천을 둘러봤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인천, 타워 2208’을 K2 옆 정원으로 옮겼습니다. 수백 개의 창문, 특유의 직선적이며 기하학적인 선 등으로 이뤄진 작품입니다.

    정원을 지나 K2의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현대의 도시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작가의 런던 작업실 근처에서 겨울 옷으로 무장한 채 길을 헤쳐 나가던 낯선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들의 존재를 LED를 사용한 영상, 라이트 박스, 알루미늄 조각 작품 등으로 표현했습니다. 작품 속 개인의 옷, 머리카락, 피부 톤 등에서 따온 자연스럽고 차분한 색감은 작품의 바탕이 되는 흰색 및 검은색과 어우러져 겨울 런던의 스산한 정취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합니다. 지난 겨울,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작업실에 틀어박혀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뿐이었다는 작가의 일상을 예술 작품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런던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이라는데 보면 볼수록 인류 공통의 보편성이 눈에 들어옵니다. 건축물은 도시마다, 지역마다 다른 저마다의 특징이 있지만 사람은 피부색, 언어 등 외양을 벗겨내고 걸음걸이와 골격 등 본질만 남겨놓으니 런던과 서울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의 모습이 전혀 이질적이지 않습니다.

    줄리안 오피(b.1958) <Two bags fur hood.> 2021 Auto paint on aluminium 202.1 x 80.7 x 3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왼쪽), 줄리안 오피(b.1958) <Nighttime 3.> 2021 Continuous computer animation on LED screen 175 x 200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오른쪽)

    K2의 2층 전시장에선 사람 대신 동물들이 걸어갑니다. 사슴, 수탉, 소, 강아지 등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평범한 동물에 강렬하고 선명한 색상을 사용해 흥미와 생동감을 부여했습니다. 산업적 환경을 연상시키는 인공적인 원색을 적용함으로써 독창성까지 담보했습니다. 전시장 벽을 장식하는 밝은 라이트 박스에 새긴 동물 작품들은 마치 요즘의 도시를 구성하는 표지판이나 브랜드 로고 혹은 광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국제갤러리 2관(K2) 줄리안 오피 개인전 《Julian Opie》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좌대 위에 설치한 알루미늄 조각들은 동물들이 관람객의 눈높이에서 마치 하늘을 날아다니듯 부유하는 느낌을 연출합니다.



    국제갤러리 2관(K2) 줄리안 오피 개인전 《Julian Opie》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작가 특유의 독특한 상상력과 독창성 덕분에 평소 너무나 친숙한 나머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던 일상 속 풍경이 새롭게 다가오는 전시입니다.

    ■ 줄리안 오피 개인전 <Julian Opie>

    2021년 10월 7일(목) ~ 11월 28일(일)
    국제갤러리 K2, K3
    문의 : 02)735-8449

    올댓아트 권재현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자료 및 사진 ㅣ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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