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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즈는 그저 거들 뿐, 나는 ‘인싸 댕댕이’다…윌리엄 웨그만 ‘비잉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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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즈는 그저 거들 뿐…



    키(Qey), 2017 피그먼트 프린트, 44 x 34 inches © William Wegman


    슬로우 기타(Slow Guitar), 1987 칼라 폴라로이드, 24 x 20 inches © William Wegman

    때는 바야흐로 에어컨을 켰다 껐다 반복하며 열대야에 잠 못 들던 8월의 어느 밤. 한 인플루언서의 피드에서 ‘개멋짐’ 사진을 발견했다. 트레이닝 바지에 무심한 듯 양손을 찔러 넣고 스웨그 넘치는 포즈로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지디병 원조는 악동뮤지션의 찬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밈’으로 떠돌던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의 문구를 눈빛 하나로 담아낸 저 표정은 또 어떤가(무려 1987년의 작품이다!). 

    이 작품들의 ‘출처’는 <비잉 휴먼(Being Human)> 전시였다. 지난 7월 6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오픈한 <비잉 휴먼>은 2018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네덜란드,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등 6개국을 순회 중인 사진전이다. 위대한 예술가에게는 뮤즈가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말을 ‘반려견’으로 증명해 보인 이 전시에 ‘Y에디터 설레발’ 도장을 찍어봤다.

    어머님이 누구니?

    앞서 소개한 ‘시크릿 가든의 현빈의 것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새빨간 트레이닝복은 명품 브랜드인 마크 제이콥스의 것이다. 이를 소화하고 있는 바이마라너는 ‘키’라는 활동명으로 무대에 오른 모델이다. 사냥개로 알려진 바이마라너에게 이토록 놀라온 끼가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독특한 모델을 카메라 앞에 세운 이는 사진작가 윌리엄 웨그만이다. 그는 1970년, 자신의 반려견  만 레이(Man Ray)’를 모델로 한 촬영을 시작했다. 우연히 작업실에 풀어두었던 만 레이가 의도치 않게 비디오에 촬영되었는데, 이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후 그는 대형 폴라로이드(61 x 51cm) 사진으로 매체를 확장하며 반려견을 의인화한 사진으로 자신만의 트레이드마크를 만들었다. 

    ▒ 첫 번째 설레발  
    반려견의 사진으로 유명하지만 모든 작품에 반려견이 등장하진 않는다. 윌리엄 웨그만은 
    서부 개념미술을 이끈 주요 인물이며, 초창기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서 독창성을 인정받은 예술계 거장이다. 사실 그는 매사추세츠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일리노이 예술대학 예술사 석사과정을 마친 ‘정통파 미술학도’였다. 그럼에도 회화가 자신의 예술세계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많은 고민을 했고, 돌파구로 선택한 것이 바로 카메라였다고. 이후 회화, 드로잉, 사진, 영화, 비디오, 서적,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영역에서 명성을 축적한 다재다능한 그의 작품들은 프랑스 파리 퐁피두 센터, 뉴욕 휘트니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 스미소 소니언 미술관 등 전 세계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소개됐다. 여전히 그는 디오르, 입생로랑, 막스마라, 아크네, 마크 제이콥스, 보그 잡지와의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는 등 힙한 아티스트다. 



    좌우흑백(Left Right Black White), 2015, 피그먼트 프린트, 44 x 34 inches © William Wegman

    이거 합성 아냐?

    세월의 흐름에도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유머러스함까지 겸비한 모델들. 비슷한 듯 보이지만 사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바이마라너들은 총 15마리로, 3대에 걸친 반려견들이다. 특히 만 레이는 웨그만이 존경하는 동명의 사진작가 이름을 따 왔을 정도로 애정을 준 첫 ‘뮤즈’였다. 



    베이스(On Base), 2007, 칼라 폴라로이드, 24 x 20 inches © William Wegman

    이색적인 ‘모델’ 반려견과 함께 그의 작품들을 설명할 때 등장하는 또 다른 단어는 ‘폴라로이드’다. 1970년대 후반 웨그만은 완벽한 크기, 강렬한 색상, 즉시성이라는 특성을 지닌 대형 폴라로이드 사진을 이상적인 표현의 수단으로 삼아 즉흥적이고 우연한 순간의 포착을 작품에 담았다. 폴라로이드 시대가 저물었을 때에도 웨그만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는 디지털 사진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새로운 매체에서도 사진 크기, 뚜렷한 색상, 스튜디오 촬영 등 폴라로이드 작업의 필수 요소를 재탐구했다. 

     두 번째 설레발  
    여기저기 쉴 새 없이 뛰어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이 개의 본성일 텐데 이런 정자세의 포즈를 취했다? 그것도 한 장으로 출력되는 폴라로이드 카메라 앞에서? 비단 에디터만의 의문은 아닐 것이다. 합리적 의심이 들기에 충분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모든 작업들은, ‘직접’ 촬영되었다. 일례로 기린코끼리’에는 기린 얼룩 모양의 가운을 두른 페이(Fay)가 등장한다. 이는 지하 세계로 건너가기 위해 다른 동물로 변장한 선조들의 전통적인 영적 수행법을 묘사 한 작품이다. 심오한 주제인 데다 페이와 렌즈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꽤나 힘들었다고. 그러나 웨그만은 매 순간 페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강력한 조명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고자 가운을 입히는 등 ‘찐’ 배려를 통해 이 사진을 완성했다. 여담으로 페이는 만 레이의 뒤를 이어 웨그만의 모델이 된 반려견이다. 웨그만은 만 레이가 세상을 떠난 4년 뒤, 새 바이마라너인 페이를 입양했다. 웨그만을 다시 현장으로 복직시켜준 막중한 임무를 한 친구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인싸 댕댕이다

    “작가적인 상상력과 정교하고 섬세한 연출력이 어우러져 작품의 완성도를 뒷받침했으며, 작가는 문학 혹은 연극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 특정한 현실을 풍자하는 장면을 재현했는데 시각적으로는 감각적인 컬러를 선택해서 모델의 복장이나 무대를 구성했다.” -성연우 큐레이터 



    전시장 풍경 |이엔에이파트너스

    웨그만의 장르는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풍경, 누드, 초상, 르포르타주, 패션 포토그래피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엄선된 세트장, 의상, 소품을 통해 입체주의, 색면회화, 추상표현주의, 구성주의, 개념주의를 포함한 예술 사조에 정면으로 대항한다. 현대인들이 경험하는 젠더, 가족관계, 페미니즘, 일상의 아이러니 같은 다양한 사회 현상들을 작품에 담고자 끝없이 고민하는 아티스트다.



    캐주얼(Casual), 2002, 칼라 폴라로이드, 24 x 20 inches © William Wegman


    도그 워커(Dog Walker), 1990 , 칼라 폴라로이드, 24 x 20 inches © William Wegman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이번 전시의 첫 번째 섹션인 ‘우리 같은 사람들 (People like us)’들이다. 이 섹션에서 웨그만은 용접공에서부터 농장 소년, 보안관, 성직자에 이르기까지 사회 여러 계층의 모습으로 변신한 바이마라너를 통해 숨겨진 인간을 풍자한다. 이중 ‘캐주얼(Casual)’은 여유롭고 세련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부자의 삶이 지루해 보이는 이중성을 표현했다고. 



    구성주의(Constructivism), 2014, 피그먼트 프린트, 44 x 57 1/3 inches © William Wegman

    범상치 않은 웨그만의 생각을 읽는 것도 이 전시의 관전 포인트다. 세 번째 섹션 ‘입체파(Cubism)’에서 발견한 이 작품의 제목은 ‘구성주의’다. 는 러시아 혁명을 전후하여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일어나, 서유럽으로 발전해 나간 전위적()인 추상예술 운동이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반려견 토퍼(Topper)가 조정하고 있는 ‘검은 사각형’은 러시아의 구성주의 화가 말레비치의 상징이다. 웨그만은 토퍼를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는 구성주의자를 표현하고자 했다. 

     세 번째 설레발   
    웨그만의 성공 배경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미키마우스와 도널드 덕이 있다. 미국인들은 오랜 기간 미키마우스와 도널드 덕이 사람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애니메이션을 통해 봐 왔는데, 이 때문에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만 레이의 해학적인 모습에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크게 호응할 수 있었던 것. 독특한 유머 세계를 반영한 그의 비디오 작업은 NBC 방송국의 생방송 토요일 밤(Saturday Night Live)’ PBS 방송국의 세서미 스트리스(Sesame Street)’를 통해 전파를 탔고, 만 레이는 유명 스타가 됐다. 또 웨그만과 반려견은 당시 ‘미술관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고. 



    타미노 왕자와 마술피리(Tamino with Magic Flute), 1996, 칼라 폴라로이드 24 x 20 inches © William Wegman

    에디터가 가장 흥미롭게 봤던 섹션은 ‘이야기(Tales)’다. 이 섹션은 인간의 이야기(tale)와 사용하지 않아 퇴화한 동물의 꼬리(tail)를 대비한 언어유희로 재미를 준다. 여기에 더해진 ‘사진 유희’까지 반드시 즐겨보길 바란다. 다행히 아직 웨그만과 그의 반려견들의 매력을 볼 시간이 남았다. 전시는 926일까지. 

    글 올댓아트 김지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자료 및 사진|㈜이엔에이파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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