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랑협회 주최로 지난 10월 13일부터 닷새간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이하 ‘키아프’)가 역대 최다 방문객(8만8,000여명), 역대 최고 매출액(650억원)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성황리에 끝났다. 한국화랑협회의 집계를 보면 방문자의 과반(53.6%)이 키아프를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었고 전체 방문자 중에서 MZ세대(20대~40대 중반)가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51%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미술시장의 약진과 ‘MZ세대 컬렉터들의 돌풍’이라는 현상의 실체를 또렷이 확인한 행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한국화랑협회 윤여선 홍보이사(갤러리 가이아 대표)는 한국 미술시장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라는 위상에서 오는 국내 미술시장의 성장 잠재력, 코엑스 등 빼어난 전시공간 인프라,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세계 최고 수준의 인천공항 등 환경 측면을 근거로 들었다. 여기에다 새로운 외국 작품을 받아들이는데 전혀 거부감이 없는 한국인들의 ‘오픈 마인드’와 분신과도 같은 스마트폰이 상징하는 ‘기술 친화력’,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신진 작가를 발굴해내고야 마는 ‘열정과 호기심’ 등으로 무장한 진취적인 MZ세대 컬렉터들이 올해 키아프를 통해 본격적인 실체를 드러낸 만큼 어느 때보다 전망이 밝다고 했다. 미술계 내에서도 실력과 전문성으로 무장한 유학파 출신 2, 3세대들이 잇따라 갤러리를 열고 있고 한국 미술시장의 잠재력과 역동성을 감지한 페로탱, VSF, 쾨닉, 타데우스 로팍 등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속속 서울에 지점이나 분점을 열며 화답하는 모양새다.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로 불리는 런던 프리즈와의 공동 개최(내년 9월 초로 예정)를 앞두고 벌써부터 준비에 한창인 윤여선 이사를 지난 10일 인사동 갤러리 가이아에서 만났다.
키아프를 마친 소회, 성공 요인, 보완점, 키아프·프리즈 공동 개최 결정의 막전막후 비하인드 스토리, 갤러리스트들이 눈여겨보는 유망 작가, 한국 미술시장의 성장 가능성, K아트의 글로벌 진출을 위한 선결 과제 등을 주제로 장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내부적으로 이번 키아프의 흥행 요인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나.
코로나로 여행길이 막히고 생활반경에 제약이 가해지면서 집 꾸미는데 관심이 커졌다. 이건희 컬렉션까지 공개되면서 미술시장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겼다.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에 따라 늘어난 유동자금이 잇단 규제와 등락으로 요동치는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등을 떠나 미술품 시장으로 흘러든 요인도 있다. 슈퍼 컬렉터라 부르는 부호들부터 회사원, 학생 등에 이르기까지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생존작가의 작품은 물론이고 작고한 작가라도 6,000만원 이하의 작품이라면 팔 때 양도세를 내지 않는 세제상의 잇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자랑하고 과시하는 문화에 익숙한 MZ세대들이 미술품 투자에 가세하면서 열기가 한층 증폭된 면이 있다. 여기에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로 군림해온 홍콩이 정세 불안 등 여파로 매력을 잃으면서 그 대안으로 서울이 유력하게 떠올랐다. 세계 각지의 유명 화랑들이 속속 한국으로 몰려오고 있다. 해외 컬렉터들도 한국 작가와 작품을 눈여겨보는 추세다.
한국 미술시장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MZ세대의 부상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는데 실제로 이번 키아프 현장의 열기는 어느 정도였나.
갤러리스트들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작품을 직접 보지 않고도 온라인 뷰잉 룸(Online Viewing Room) 등을 통해 점찍은 작품을 바로 구매하는 컬렉터부터 해외 유명 미술평론 사이트나 SNS 등을 통해 파악한 정보를 토대로 해외 신진 작가의 작품을 구해달라고 요청하는 컬렉터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이고 과감하다. 미술계를 강타한 NFT(Non Fungible Token, 대체불가능토큰) 열풍도 결국 이들이 선도해나갈 걸로 본다. 이들에게 스마트폰은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거실 벽에 걸어두는 작품보다 스마트폰 IT 기기의 모니터와 연결해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NFT 작품들이 더 큰 가치로 다가갈지도 모른다. 이들을 보며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올해 처음 도입한 ‘VVIP데이’가 눈길을 끌었다. 어떤 생각에서 신설을 추진했는지 궁금하다. 결과적으로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동안 말만 VIP데이였지 방문객 숫자면에서 일반 관람일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한국 정서상 오랜 단골 고객들을 외면하기 어려운데다 누구는 부르고 누구는 말고 하기도 어려워 갤러리들이 초대권을 남발한 측면이 있었다. 스위스의 아트바젤처럼 외국의 유명 아트페어를 보면 다르다. 진짜 소수의 VIP들만 불러 쾌적한 환경에서 작품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한다. 그걸 벤치마킹해서 VVIP데이를 신설했다. 30만원의 가격을 매겨 VVIP 관람 티켓 100장을 팔았는데 금방 매진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대부분 MZ세대들이 구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VVIP데이라 해서 기대하고 갔는데 작품이 이미 팔리고 없더라”, “쾌적한 관람을 기대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실망했다” 등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작품을 보지도 않고 온라인으로 구매한 고객들이 있어서 현장에 아무리 일찍 도착해도 헛걸음한 경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경쟁이 치열해 ‘큰손’들의 항의가 나올 정도였으니까. 예상보다 구매 열기가 뜨거워 갤러리들 사이에 “좀 더 많은 작품을 들고올 걸”이라는 아쉬움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VVIP데이’인데도 사람이 너무 붐볐다는 지적은 달게 받아들인다. 코로나 상황으로 동시 관람 인원을 제한하다 보니 대기줄이 길어지는 현상이 나타났고 VVIP데이 신설에도 단골 고객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갤러리들의 관행이 이어졌다. 한국화랑협회가 참가 갤러리에 수십 장씩 배포한 VVIP티켓 외에도 갤러리들이 추가로 VVIP티켓을 구매해서 단골 고객들에 제공하는 바람에 전체 방문객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갤러리 관계자들과 현장 스태프, 작가 등까지 포함해 모두 5,000여명이 VVIP데이에 전시장을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폭발적인 관심의 배경에는 내년부터 5년 동안 키아프가 프리즈와 손 잡고 공동으로 여는 아트페어의 전초 행사라는 점도 있었다. 누구의 아이디어로 시작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 최종 도장을 찍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는지 막전막후의 스토리가 궁금하다.
지난 2월 황달성 회장의 취임과 함께 (사)한국화랑협회 집행부를 꾸렸다. 부회장을 맡은 갤러리현대 도형태 대표의 공이 컸다. 꾸준히 런던 프리즈에 참가하면서 그쪽 사람들이랑 인맥을 쌓았는데 이들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공동개최 아이디어가 나왔던 듯하다. 이사회 의결은 거쳤는데 문제는 한국화랑협회 전체 160여 회원사들의 동의를 얻는 일이었다. 외국의 유명 아트페어가 한국에 들어온다는 건 키아프의 위상과 인지도를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호재이긴 하지만 국내 미술시장을 외국에 뺏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니까. 특히 중소 화랑 처지에선 위기감이 더 크게 다가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고민 끝에 올봄 총회를 열어 ‘키아프와 프리즈의 아트페어 공동 개최’ 안건을 무기명 투표에 부쳤고 회원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국내 대형 갤러리는 물론이고 중소 규모의 화랑들까지 “더 이상 우물 안 개구리에 안주할 게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놓고 덩치를 키워 해외 갤러리들과 한번 맞붙어 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아직 10개월이 남아있긴 하지만 워낙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행사여서 한국화랑협회 차원에서 사실상 행사 준비에 착수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아닐 듯하다.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어떤 행사를 만들 계획인가.
맞다. 키아프는 매해 열리는 미술계 행사 중 가장 큰 행사이다. 갤러리들이 자존심을 걸고 한판 승부를 벌이는 격전의 장이자 교류의 장이다. 갤러리들이 작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1년 동안 사활을 걸고 준비한 회심의 역작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미술 애호가들이 미술계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거대한 견본시장이기도 하다. 내년에는 프리즈랑 손잡고 열리니 더 많은 외국 유명 갤러리들과 ‘큰손’ 컬렉터들이 가세할 게 분명하다. 국내 갤러리들의 발걸음이 더 분주하리라 예상한다. 세부 내용까지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큰 틀에서 올해 행사에서 확인된 젊은 컬렉터들의 취향과 관심사를 반영하는 쪽으로 행사를 기획할 예정이다. 갤러리들이 가격 접근성을 높인 다양한 작품들과 향후 트렌드를 선도하는 현대적인 감각의 작품들을 많이 선보이지 않을까 싶다.
※이번 키아프를 거치며 갤러리와 컬렉터들 사이에서 급부상한 신진 작가들과 앞으로 눈여겨볼 만한 유망 작가들의 면면은 다음 콘텐츠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올댓아트 권재현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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