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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레로 표현한 ‘보석’…국립발레단 공연한 ‘주얼스’는 어떤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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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의 뉴욕 5번가, 검은 드레스 차림의 오드리 헵번이 유리창 너머로 보석을 구경하는 장면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대표하는 장면이죠. 헵번이 보석을 구경하던 티파니 매장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또 다른 하이엔드 주얼리 브랜드 반 클리프 아펠의 매장이 있는데요. 반 클리프 아펠의 보석도 매장 앞을 지나가던 한 예술가의 발길을 멈춰 세웠습니다. 바로 미국 발레를 대표하는 무용가 조지 발란신입니다. 그는 보석에서 얻은 영감으로, 1967년 신고전주의 전막 발레 <주얼스> 발표했습니다.



    (왼쪽부터) 피에르 아펠, 수잔 퍼렐, 조지 발란신 ⓒVan Cleef & Arpels

    <주얼스>는 뉴욕시티발레단에서 초연을 가진 이후 파리오페라발레단, 영국 로열발레단, 마린스키 발레단 등 주요 발레단에서 공연되며 인기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는데요. 지난 10월 20일, 국립발레단이 54년 만에 발란신의 <주얼스>를 국내 무대에 올렸습니다. 현재 조지 발란신의 작품을 공연하기 위해서는 ‘조지 발란신 트러스트’에서 파견한 레피티터(repititeur:연습코치)의 지도가 필수입니다. 한국에는 1974년부터 9년간 조지 발란신과 함께 작업한 산드라 제닝스가 파견되어 국립발레단을 지도했습니다. 

    (왼쪽부터) 국립발레단을 지도하고 있는 산드라 제닝스와 <주얼스> 리허설 장면 | 국립발레단

    만나기 어려운 신고전주의 전막 발레 작품의 국내 초연인 만큼, 티켓 오픈과 동시에 빠르게 모든 회차가 매진되며 발레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지난 금요일 베일을 벗은 국립발레단 <주얼스> 탄생 배경부터 눈여겨볼 만한 포인트까지, 생생한 현장을 아래에 모두 담았습니다.


    신고전주의 발레의 창시자!
    조지 발란신





    20대의 조지 발란신 | Wikipedia

    <주얼스>를 안무한 조지 발란신은 발레의 역사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데요. 그는 1904년 오페라 가수이자 작곡가인 아버지, 예술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발란신은 발레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예술 교육에 열정적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발레와 음악을 접하게 됐죠. 발란신은 이후 러시아 황실 발레 학교에 입학해 10살에 마린스키 발레단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큐피드’로 데뷔하는 등 두각을 나타냅니다.

    이후 발란신은 파리로 거처를 옮겨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발레 뤼스’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안무가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러시아 발레’를 뜻하는 ‘발레 뤼스’는 그리스, 러시아, 동양 등 이국적인 내용과 동작의 발레를 선보여 유럽을 열광시킨 발레단인데요. 니진스키, 포킨 등 어마어마한 발레 스타들을 배출해 내기도 했습니다. 발란신은 이곳에서 안무작 <아폴로>를 발표하며 ‘신고전주의’로 명명되는 그의 작품세계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신고전주의 발레는 서사가 있는 기존 발레 작품들과는 달리, 특별한 줄거리 없이 오직 무용수들의 몸짓과 음악으로만 표현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발란신은 인터뷰를 통해 “‘춤’이 쇼의 주인공이 되게 하라”는 자신의 소신을 밝힌 바 있습니다.

    발란신은 1948년부터 뉴욕시티발레단의 수석 안무가이자 발레 마스터로 재직하면서, <몽유병의 여인>, <라 발스>, <보석> 등 다양한 신고전주의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러시아에 춤의 뿌리를 둔 발란신의 작품에는 고전주의 발레와 신고전주의 발레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요. 그의 작품에서는 수많은 스텝과 기교, 부드러운 폴 드 브라(발레의 팔 동작)와 더불어 음악의 리듬과 강약, 멜로디가 아주 섬세하게 표현됩니다.

    춤이 된 보석!
    발레 <주얼스>

    발란신의 유일한 전막 신고전주의 발레인 <주얼스>는 특별한 줄거리 없이 세 개의 보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3막은 각각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를 표현하고 있는데요. 그가 느낀 보석의 분위기와 색, 질감을 음악과 춤으로 표현했습니다.



    국립발레단 <주얼스> 중 에메랄드 | 국립발레단

    1막 에메랄드

    막이 오르면 별이 쏟아져내릴 것 같은 무대에 무대에 10명의 발레리나와 한 쌍의 커플이 그림처럼 서있습니다. 발란신은 에메랄드에서 19세기 프랑스 낭만 발레의 이미지를 발견했는데요. 프랑스 낭만주의 작곡가인 가브리엘 포레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 ‘샤일록’이 쓰였습니다.



    국립발레단 <주얼스> 중 에메랄드 솔로를 맡은 수석무용수 신승원 | 국립발레단

    음악만큼 동작들도 부드럽고 우아합니다. 1막 에메랄드에서는 부드러운 폴 드 브라가 돋보이는 동작이 주를 이뤘는데요. 에메랄드 중 두 번째 솔로를 맡은 곽화경 드미 솔리스트의 우아함이 돋보였습니다. 신체적 접촉이 많은 발란신 특유의 대형도 눈에 띕니다.




    국립발레단 <주얼스> 중 루비 | 국립발레단

    2막 루비

    스트라빈스키의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기상곡’에 진행되는 ‘루비’는 경쾌하고 재지(jazzy)한 미국 발레의 진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막의 로맨틱 튀튀와는 대비되는 짧은 모던 발레 의상처럼, 동작도 매우 다른데요. 세 개의 막 중 가장 현대적입니다. 빠른 음악에 맞춰 화려하고 유쾌한 동작들이 계속됩니다.



    국립발레단 <주얼스> 중 루비 파드되 | 국립발레단

    <주얼스>를 관람하신 분들이라면 잔박자 하나하나에 스텝이 들어가는 발란신의 기교적인 안무를 쉽게 찾을 수 있으셨을 텐데요. 무용수들은 왼발은 플렉스를, 오른발은 포인을 하며 늘리는 동작, 턴과 점프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동작 등 난도 높은 테크닉들이 연달아 소화하며 폭발적인 에너지를 전달했습니다. 이날 ‘루비’의 솔로를 맡은 박예은 수석 무용수와 하지석 솔리스트는 끊임없이 접촉이 이뤄지는 시퀀스를 소화하며 ‘찰떡 호흡’을 선보였습니다. 막힘없이 기술을 소화해 내는 동시에, 다양한 표정연기와 표현으로 마치 뮤지컬 무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했죠.




    국립발레단 <주얼스> 중 다이아몬드 | 국립발레단

    3막 다이아몬드

    발란신은 <주얼스>의 피날레인 다이아몬드를 러시아 황실 발레의 이미지로 표현했습니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발란신은 러시아 고전 발레의 황금기를 눈으로 보고 자란 인물이기도 하죠. 이쯤 되면 독자 여러분도 발란신이 세 보석과 연관 지은 나라가 그가 거쳐온 곳들이라는 걸 알아차리셨을 겁니다.



    국립발레단 <주얼스> 중 다이아몬드 파드되 | 국립발레단

    다이아몬드의 순수함과 화려함은 러시아 황실 발레의 화려함과 위용으로 치환됩니다. 하얀 다이아몬드는 러시아의 겨울을 연상케 하죠. 대칭적인 대형과 큰 스케일, 솔로를 맡은 무용수들의 파드되에서 고전 발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음악에는 러시아의 거장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3번이 쓰였는데요. 5악장에 이르러 다양한 장면 구성과 대형 변화로 확실히 극의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화려한 의상이 돋보이는 국립발레단 <주얼스>의 한 장면 | 국립발레단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주얼스>의 공신은 바로 의상입니다. ‘보석’을 주제로 한 만큼 조명을 받아 무대 위에서 반짝거리는 의상이 정말 아름다웠는데요. 낭만발레-모던발레-고전발레로 이어지는 작품의 흐름에 맞춰, 로맨틱 튜튜, 현대적인 의상, 클래식 튜튜 등 다양한 발레 의상을 한눈에 보는 재미도 있죠.

    <주얼스>는 발란신과 오래 함께 일한 의상 디자이너 바바라 카린스카가 의상을 디자인했는데요. 초연 당시, 반 클리프 아펠의 클라우드 아펠도 실제 보석의 반짝임을 구현해 낸 의상에 매우 만족을 표했다고 해요. 각 발레단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주얼스>의 의상은 카린스카의 의상을 기본으로 합니다. 이번 국립발레단의 의상은 파리 출신의 디자이너 제롬 카플랑이 맡아 연출했습니다. 영국 로열 발레단의 영상을 통해 디테일한 의상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세요.

    영국 로얄발레단의 <주얼스> 의상 소개 영상. 의상 제작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겼다 | YouTube

    <주얼스>의 영감이 된 반 클리프 아펠은 무용 분야를 후원해오고 있는 브랜드로도 유명한데요. 이 브랜드의 ‘무용 사랑’은 창립자 루이스 아펠로부터 시작됩니다. 열정적인 발레 애호가였던 그는 어린 조카 클라우드 아펠의 손을 잡고 파리에 위치한 오페라 가르니에를 자주 찾았다고 해요. 실제로 반 클리프 아펠은 전 세계 어디서 개최되든 <주얼스>의 공연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24일 막을 내린 국립발레단의 <주얼스>는 국내에 새로운 발레 레퍼토리를 성공적으로 소개한 사례가 됐습니다. 줄거리 없이도 발레의 매력을 뽐내는 <주얼스>는 오는 29일과 30일, 서울을 떠나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다시 한번 관객과 만납니다.

    국립발레단 <주얼스>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2021. 10. 20~24
    평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3시, 오후 7시

    일요일 오후 3시

    대전 예술의전당
    아트홀

    2021. 10. 29~30

    평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3시

    국립발레단

    올댓아트 변혜령 인턴
    송지인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자료|국립발레단, YouTube
    참고|반클리프아펠 공식 홈페이지
               The George Balanchine Trust
              “
    ABOUT GEORGE BALANCHINE’S JEWELS“, 샌프란시스코 발레단
              “발레 뤼스는 어떻게 무용의 역사를 바꿨나“, 올댓아트 칼럼, 2019.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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