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75)가 드디어 내한했다. 3개 도시에서 지난해 코로나19로 무산됐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 앙코르> 공연(19일 서울, 21일 대전)과 <디아벨리 프로젝트>(20일 서울, 24일 대구)를 펼친다. 이번 내한은 지난 2019년 이후 2년 만이다. 해외 연주자 내한 공연의 경우 아시아 투어를 겸해 한국에 방문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부흐빈더는 이번 일정 중 아시아 국가 가운데에서는 한국에만 방문한다.
19일과 21일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공연은 2019년 열린 리사이틀의 앙코르 공연이다. 당시에도 매진은 물론 세계 최고의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다운 깊이 있는 연주로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 냈던 부흐빈더는 올해 공연에서 8번 ‘비창’, 14번 ‘월광’, 21번 ‘발트슈타인’ 등 그가 직접 선택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5곡을 연주한다.
20일과 24일에는 부흐빈더가 도이치 그라모폰(DG)과의 전속계약 후 처음 시도한 <디아벨리 프로젝트> 공연이 열린다. 현존하는 모든 디아벨리 변주곡의 주제가 된 안톤 디아벨리의 ‘왈츠 C장조’를 비롯해 체르니, 리스트, 슈베르트 등에 의한 1824년의 ‘디아벨리 변주곡’과 막스 리히터, 탄둔 등에 의한 2020년의 ‘디아벨리 변주곡’, 그리고 베토벤의 ‘디아벨리 주제에 의한 33개의 변주곡’ 연주를 선보인다.
부흐빈더의 레퍼토리는 바흐부터 현대음악까지 광범위하다. 지금까지 발매한 음반만 100장이 넘는다. 그런 부흐빈더가 특별히 ‘전문가(Specialist)’로 통하는 작곡가는 베토벤이다. 부흐빈더는 60년 넘게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을 수차례 녹음한 현존 최고의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베를린, 베이징, 부에노스아이레스, 드레스덴, 이스탄불, 밀라노, 뮌헨, 상하이, 상트페테르부르크, 빈, 취리히 등 전세계 각국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50회 이상 연주한 대기록을 가지고 있다.
베토벤 음악에 대한 부흐빈더의 해석은 철저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다. 열정적인 악보 수집가인 부흐빈더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에디션을 무려 39판 소장하고 있으며, 그의 서재에는 악보의 초판과 원판 등 방대한 양의 악보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18일 언론과 만난 루돌프 부흐빈더는 기자간담회에 앞서 베토벤과 디아벨리의 곡을 연주했다. 10여 분 간의 짧은 시간 동안 베토벤의 곡에서는 ‘거장’다운 무게감과 연륜 돋보이는 소리, 슈베르트 편곡의 디아벨리 변주곡에서는 음악이 공중에 떠있는 것 같은 완벽한 페달링을 보여준 그는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도 자세한 설명을 위해 다시 피아노 앞에 앉기도 했다. “한국은 특별한 나라”라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그는 “나는 베토벤의 작품에서 항상 즐거움을 찾는다”며 베토벤에 대한 여전한 사랑과 함께 그의 음악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이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오간 이야기를 재구성
2년 만에 다시 내한한 소감은 어떤가. 2년 전 내한 당시의 기억도 궁금하다.
반가운 마음이다. 지난 방문을 통해서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국 관객은 열정적이다. 이런 특별한 관객을 만나기는 전 세계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다르게 문화적으로 아주 발전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콘서트홀은 좋은 음향을 가지고 있고, 젊은이들은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으며, 교육도 훌륭하다. 한국에는 이 모든 걸 아우를 수 있는 문화 시스템이 있다. 내가 문화강국인 오스트리아에서 왔지만, 창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아주 특별한 나라다. 특히 음식도 마음에 든다. ‘김치’를 가장 좋아하고, 한국의 맥주도 맛있다.
입국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백신을 벌써 세 번째 접종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 세계는 지금 한국이 준비하는 것처럼 ‘위드 코로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는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 사태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최고의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꼽힌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다른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는 누가 있나.
많은 베토벤 스페셜리스트가 있다. 첫 번째는 커트너 솔로몬이다. 그리고 프리드리히 굴다, 빌헬름 켐프…
젊었을 때, 베토벤과 어떻게 처음 사랑에 빠지게 되었나.
나는 전쟁 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전쟁 후 우리는 많은 고난을 겪어서 나는 처음부터 음악에 관심을 가질 수는 없었다. 아주 작은 집에서 할머니, 어머니, 형제와 함께 살았다. 그러다 삼촌이 나의 형제에게 음악을 가르쳐주었는데, 집에 둔 조그만 피아노, 그 옆에 있던 라디오와 베토벤의 작품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베토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 이후다. 빈 국립 대학에는 6살 때 입학했는데, 그 당시 내가 가장 젊은 학생이었다. (*부흐빈더 이후 최연소 입학생의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잠시 피아노를 연주한 후) 이 곡이 내가 6살 때 악보를 보지 않고 칠 수 있었던 곡이다.
베토벤이라는 음악가의 작품을 오랜 시간 연주하면서 질리거나 지치는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나.
(통역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고개를 저으며) 절대 그런 적 없다. 베토벤은 로맨틱하면서도 대단한 혁명가다. 그 당시 속도를 자유자재로 변경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작곡가는 베토벤이 유일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베토벤의 작품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그리고 나는 베토벤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바흐, 차이콥스키, 현대 음악도 연주한다. 11살 때 처음 베토벤을 연주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의미 없이 연습을 시작했던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건 기본기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베리에이션을 해야 하고. 그렇게 되기까지 40년이 걸렸고, 수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피아노를 연주한지 30년 정도가 지났을 때 카이저(*독일의 저명한 평론가)가 내게 “이제 너는 베리에이션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에게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런 내게 카이저가 말한 것은, “너는 이제야 자유로워졌다. 그러니 베리에이션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연주자로서 ‘자유로움’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20-30년 전 베토벤에 대해 느꼈던 것과 지금 느끼는 것이 다른가.
어렸을 때 나는 생각의 폭이 좁았고 참을성이 없었다. 그때는 학교에서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인 혹은 학생처럼 모든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만 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모든 피아노 연주자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음악가다. 베토벤을 연주하는 모든 연주가는 이 점을 배워야 한다. 나는 베토벤을 연주하면서 체르니의 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 체르니가 베토벤의 모든 작품, 실내악이든 피아노든, 모든 곡에 관련된 해석을 작성했기 때문이다.
19일 서울, 21일 대전 공연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5곡을 연주한다. 연주곡은 어떻게 골랐나. 지금의 부흐빈더에게 가장 깊은 감동이나 영감을 주는 곡은 어느 곡인가.
가장 난해한 질문이다. 한 곡을 선택하면 다른 곡은 연주하고 싶지 않아져서, 특별히 사랑하는 곡을 정해두지 않는다.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연주를 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모차르트의 곡을 연주해도 같을 것이다. 특정한 작품보다는 모든 작품을 사랑하는 게 연주자로서의 성향이다.
20일 서울, 24일 대구에서는 <디아벨리 프로젝트> 공연을 연다.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계약한 후 첫 프로젝트로 <디아벨리 프로젝트>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곡가 선정 배경이 궁금하다.
13살 때 50명의 연주자들과 연주하면서 50명의 연주 스타일을 배울 수 있었다. 그때부터 디아벨리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디아벨리를 처음 연주한 때는 1973년이다. (*부흐빈더는 1976년에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을 녹음했다.) 지난해가 베토벤의 탄생 250주년이었는데, 나는 작곡의 세상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오늘날에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를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나는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과거의 디아벨리 프로젝트와 똑같이 현대의 작곡가 12명을 섭외하려고 했는데, 1명이 죽어서 11명을 섭외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유명 작곡가도 섭외하고자 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았다.
2007년 그라페네크 페스티벌이 처음 개최된 이후 지금까지 이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그라페네크 페스티벌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오랜 기간 동안 페스티벌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던 이유는 모든 페스티벌에 특정한 임무가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라페네크만은 나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페스티벌은 엄청나게 큰 공원에서 열리는데, 출연했던 모든 성악가들이 이곳을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오픈 에어(Open Air) 무대”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레드 카펫 위로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잔디 위로 걸어오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이 페스티벌에 왔던 방문객과 연주가는 다시 오게 된다. 가장 좋은 마케팅 방법은 입소문이다.
열정적인 악보 수집가로 유명한데. 최근에도 악보 수집과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나.
나는 베토벤이 만든 ‘오리지널 버전’과 첫 번째(*출판) 버전을 수집한다. 보통 사람들은 오리지널 버전이 곧 첫 번째 버전이라고 생각하지만, 베토벤의 경우는 다르다. 베토벤은 첫 번째 버전을 항상 관리(Control) 했기 때문에 원곡에 가깝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첫 번째 버전과 오리지널 버전에는 조금의 차이가 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 중 12.5개의 악보만 베토벤이 직접 사인한 오리지널 버전의 악보다. (최근 베토벤의 음악을 연구하며 발견한 것은) 그가 사랑한 여러 명의 ‘잘못된 여성’ 중, 그가 누구를 가장 사랑했는지에 대한 것, (피아노를 연주하며) 베토벤의 작품 31번의 이런 변주는 베토벤이 부유한 사람에게 특권을 주는 방법이었다는 것 등이다.
많은 악보 중 어떤 악보를 가장 좋아하나.
리스트가 편집(Editing)한 판을 제일 좋아한다. 리스트는 베토벤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는 베토벤의 피아노 작품뿐만 아니라 관현악 작품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서, 모든 악보를 오리지널 버전으로 가지고 싶어 했다. 리스트는 곡의 핑거링을 본인 스타일로 만들지 않고 베토벤이 작성한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수하려고 했던 유일한 사람이다. 그게 내가 그의 버전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다.
부흐빈더의 연주 인생에서 ‘베토벤’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베토벤은 ‘혁명’이라는 단어로 축약할 수 있다. 그의 소나타에는 모든 감정이 녹아 있으며, 베토벤은 자신의 희로애락을 노래했다. (베토벤의 작품으로) 그 당시의 베토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루돌프 부흐빈더 &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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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
서울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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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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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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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20번, 8번 ‘비창’, 10번, 21번 ‘발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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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대전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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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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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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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벨리
프로젝트 |
서울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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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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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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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디아벨리 – 왈츠 C장조
안톤 디아벨리 – 새로운 디아벨리 변주곡(2020) 中 도시오 호소카와, 탄 둔, 외르크 비트만의 베리에이션 안톤 디아벨리 – 디아벨리 변주곡 (1824) 中 프란츠 리스트, 프란츠 슈베르트, 카를 체르니의 베리에이션 베토벤 – 디아벨리 주제에 의한 33개의 변주곡, Op.120 |
대구 대구콘서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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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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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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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댓아트 송지인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자료|빈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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