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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국외소재문화재] 사라진 그날의 깃발, 유일한 현존 ‘수자기’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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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배가 빤히 보이는 상황에서 단 한 명의 탈영병도 없다. 아군이 압도적인 전력으로 몰아붙임에도 불구하고 적군은 장군의 깃발 ‘수자기’ 아래 일어서고 또 일어선다. 창과 칼이 부러진 자는 돌을 던지거나 흙을 뿌려 저항한다. 이토록 처참하고, 무섭도록 구슬픈 전투는 처음이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중 –

    수자기(帥字旗). 대장의 군기(軍旗)를 뜻하는 말입니다. 과거 군기는 징, 북과 함께 전장에서 명료하고 빠르게 명령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동시에 지위와 계급을 상징하기도 했죠. 특히 지휘관을 의미하는 장수 ()’ 자가 강렬하게 쓰여 있는 수자기는 총대장이 있는 본진에 꽂는 깃발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유일한 수자기는 어재연 장군기뿐입니다. 그러나 이 깃발의 소유권은 미국이 갖고 있습니다. 가로 413cm, 세로 430cm의 이 거대한 깃발은 어떤 사연을 품고 있을까요. <안녕, 국외소재문화재> 다섯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지금 만나러 갑니다. 

    그날, 낯선 함대가 강화도에 나타났다



    150년간의 수자기 여정을 담은 영상 ‘귀향’ 갈무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1871(고종 8) 61, 강화도와 내륙 사이 손돌목에 낯선 함대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조선군은 갑자기 나타난 함선에 경고성 대포를 쏘았죠. 그들 또한 배를 멈추고 함포로 대항했습니다. ‘손돌목 측량이 목적이었다는 이들의 정체는 무력을 과시해서라도 조선과 통상 조약을 맺는 것이 목적이었던 미군이었습니다.

    앞서 1866년 발생한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미국은 조선과의 통상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아시아 함대를 대대적으로 개편한 미국은 군함 5, 함재 대포 85, ·해병 1,230명의 군대를 이끌고, 조선 원정에 나섰습니다. 조선의 수도인 한양으로 들어가는 수로를 통제하는 길목이자 요충지인 강화도가 목적지였죠.

    조선 정부는 신속하게 손돌목에서의 포격은 정당방위라는 입장과 미국과의 외교 교섭을 거부한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미군 함대에 보냈습니다. 그러나 미군 측의 책임자인 주청 미국 공사 프레더릭 로우와 존 로저스 제독은 무단 공격의 책임이 조선에 있으며 사나흘 안에 협상하러 나오지 않으면 자유행동을 취할 것이라는 내용의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곧바로 조선은 반박의 편지를 보냈지만 미군은 이를 무시하며 불시에 초지진을 공격했습니다. 이어 이곳에서 2.2떨어진 덕진진까지 점령했죠.



    신미양요 당시 미 해군 작전지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다음은 광성보였습니다. 이곳은 어재연 장군이 이끌고 있는 진무영 본진이기도 했습니다. 조선군은 초대형 수자기를 내걸고 결사항전의 뜻을 내비쳤지만 미군의 전력과 화력을 넘어설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미 해군 소령이었던 윈필드 슐리는 자신의 회고록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조선군은 근대적인 무기를 한 자루도 보유하지 못한 채 노후한 전근대적인 무기를 가지고서 근대적인 화기로 무장한 미군에 대항하여 용감히 싸웠다. 조선군은 그들의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용맹스럽게 싸우다가 모두 전사했다. 아마도 우리는 가족과 국가를 위해 그토록 용감히 싸우다가 죽은 국민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 「기함에서의 45년」 중



    1871년 6월 10일 초지진을 점령한 미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수자기, 전리품으로 빼앗기다

    조선-미국 간 소규모 전쟁은 미국의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 이 사건은 열강인 미국의 국제적 체면을 손상시켰다. 조선의 개항을 더욱 희박하게 만들었다. -뉴욕데일리 트리뷴

    그러나 조선군의 야간 기습과 계속된 저항에 미군은 얼마 지나지 않아 퇴각하게 됩니다. 협상단을 보내라는 겁박에도 항전 의지를 불태운 조선군에 미 국무부는 결국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없거든 철수하라는 지시를 내렸죠. 



    콜로라도호 함상의 수자기(맨 오른쪽 매클레인 틸튼 대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군은 광성보 내 군사시설을 모두 파괴하고 대포 등을 탈취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수자기까지 말입니다. 또 승전의 의미로 수자기의 자리에 성조기를 게양했는데, 끌어내려지는 과정에서 일부가 찢어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현재 수자기오른쪽 아래 천을 덧댄 부분이 그 흔적입니다.

    한편, 퇴각 후 매클레인 틸튼 대위 등 미군 세 명은 아시아 함대의 기함인 콜로라도 호 선상에서 기념사진을 남겼습니다. 이 사진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수자기가 바로 어재연 장군의 깃발입니다. 

    현존하는 유일한 수자기,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다



    150년간의 수자기 여정을 담은 영상 ‘귀향’ 갈무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으로 건너간 수자기는 이후 아나폴리스에 위치한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진열장 속에 자리 잡게 됩니다. 그리고 2007, 우리 정부는 현존하는 유일한 수자기를 되찾기 위해 조심스럽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장 앞으로 편지를 보내 수자기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구했죠. 돌아온 답변은 이러했습니다.

    대통령의 명령과 의회의 입법으로 지난 200여 년 동안 치른 전쟁에서 승리하여 세계 각지에서 노획한 깃발 약 250점을 보관하고 있으며 수자기도 그중 하나입니다. 미국 법 때문에 반환은 불가능하지만 연구를 위해 수자기를 조사하는 것을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여지를 남긴 답변에 우리 정부는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을 찾아 수자기를 확인한 뒤 장기 대여를 제안했습니다. 이에 박물관 측은 10년 동안 한국에 대여해 주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20071019, 마침내 수자기는 136년 만에 고국으로 귀환했습니다. 수자기의 귀환 여정, 함께 보실까요.

    여기서 잠깐. ‘장기 대여라는 방법에 차마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구히가져와야 한다고요? 문화재 환수 과정은 해당 국가 간의 외교 문제 및 신뢰 형성 등을 고려하여 오랜 시간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수자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1814미 해군 전리품 깃발 수집과 관련한 의회법을 제정했습니다. 1849년 제임스 포크 대통령이 미 해군장관에게 전쟁 중 적의 군기, 색상기 등을 몰수할 것을 명령하고 보관·보존·전시를 위해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관리기관으로 정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렸죠.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은 지난 200년간 전리품으로 획득한 다른 나라의 깃발 250여 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즉 미국은 수자기를 문화유물이 아닌 승전 기념으로 노획한 전리품으로 보고 있고, 이와 관련된 법적인 문제로 영구 반환이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수자기’는 2008년 4월 고궁박물관에서 특별 전시된 후 인천시립박물관을 거쳐 2010년 10월 강화역사박물관이 개관하면서 139년 만에 원래 수자기가 있었던 고향인 강화로 돌아왔습니다.  임대 기간이 끝난 2017년부터 2년 단위로 재계약을 거듭하며 202210월까지 대여가 연장된 상태입니다

    강화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모든 유물은 박물관이 여섯 자리 고유 식별 번호를 부여한다. 하지만 수자기는 강화역사박물관이 개관했을 때부터 보관 관리해 온 유물임에도 여섯 자리 고유 소장번호가 없다. 이는 수자기가 대여 유물로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 신미란, 강화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월간 문화재 사랑」중)

    202174일까지 강화역사박물관 1층 로비에서는 <신미양요 150주년 기념 수자기(帥字旗) 특별전>이 진행된다고 합니다아픈 과거로만 담아둘 것이 아니라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역사를 애틋하게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끝으로 신미양요 150주년을 기념하여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공개한 특별영상을 소개합니다.

    올댓아트 김지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자료 및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다음 편 예고 소리없이 사라진 조선의 ‘인장’, 미국 국토안보수사국이 떴다?!

    참고  
    신미양요 때 빼앗긴 수자기반환 불가능한 미군의 전리품 (경향신문, 2021.6.1.)
    미국에 빼앗긴 어재연 장군기…또 타향살이 하나(인천일보, 2021.5.9)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 우리의 용기와 투쟁 정신을 보여준 어재연 장군 수자기(문화재청 월간 문화재사랑, 2021.5.28)
    우리 품에 돌아온 문화재 (국외소재문화재 엮음, 눌와)
    문화재를 지킨 사람들 잊힌 역사의 조각들을 되찾다 (안영미, 책과 함께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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