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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정의 아이콘’ 발레리노 리앙 시후아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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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발레리나 프로젝트> 중 발레리노 리앙 시후아이 | 유니버설발레단

    어떠한 일에 애정을 가지고 집중해 정신을 쏟는 마음을 우리는 열정이라 부른다. 열정은 어디에 숨어있든 금세 눈에 띄게 마련이다. 그 이름처럼 뜨거워 주위를 덥히기 때문일 것이다. 날이 아직 더운 늦여름, 연습실에서 유니버설발레단 솔리스트 리앙 시후아이를 만났다. 그가 가진 열정은 앞에 앉은 사람의 마음도 뜨겁게 달구는 힘이 있었다.
     
    발레에 대한 그의 애정과 진심은 무대에서도 눈에 띈다. 그는 연수 단원부터 차근차근 연륜과 실력을 쌓아 <지젤>힐라리온‘, <라바야데르> 북춤‘,’ 황금 신상’, <잠자는 숲속의 미녀> 중 파랑새 파드되, 모던 발레 <마이너스7>, <멀티플리시티> 눈에 띄는 솔로를 선보였다.



    유니버설발레단 솔리스트 리앙 시후아이 | 유니버설발레단

    리앙 시후아이는 대만에서 무용을 전공했다. 전문적인 발레 교육이 부족한 환경에서 막연히 무용수의 꿈을 꾸었다. 무턱대고 참가한 로잔 콩쿠르는 17살의 소년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주위의 만류를 뒤로하고 발레를 제대로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 이후 워싱턴 DC의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해 10년 넘게 프로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 질문에 신중하고 정확하게 답변하는 그의 말에서 깊은 고민과 오랜 노력에서 오는 힘이 느껴졌다.




    발레리노 리앙 시후아이 | 올댓아트 변혜령

    무용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요. 발레를 전공하기 이전 대만에서 여러 무용을 접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집은 예술 집안이에요. 아버지는 미술을 하시고, 어머니는 음악을 하셨어요.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작업을 이어가고 계시고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유화 작업이나, 어머니의 피아노 연주를 많이 접했어요. 그 영향이 컸죠. 어머니는 음악을 전공하셨지만 춤을 굉장히 좋아하셔서, 누나에게 무용을 시키고 싶어 하셨어요. 누나가 무용 학원에 다니게 되면서 수업을 듣는 누나 옆에서 놀곤 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즈음 어머니께서 학원에 새로운 반이 생기니 너도 다녀보면 어떻겠냐고 물으셨어요. 지나가는 말로 하시는 줄 알았는데 그다음 주에 타이즈를 사 오셨더라고요.(웃음) 그때부터 무용을 하게 됐어요. 대만에서는 전문적인 발레 교육 체계가 아직 부족해, 깊이 있는 발레를 배우기보다는 이것저것 여러 무용을 배우는 시간이었죠.
     
    접해본 많은 장르의 무용 중 발레를 선택하게 된 사건이 있나요.
    두 개의 중요한 계기가 있는데요. 무용을 처음 시작했을 땐 무용이 정말 싫었어요. 무용보다는 축구 같은 운동을 더 좋아했죠. 2000년에 ABT(아메리칸 발레 씨어터) 처음 대만에서 공연했는데, 누나가 공연을 너무 보러 가고 싶어 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가게 됐어요. 그때 처음으로 무용이 조금 재미있을 수 있겠구나생각했어요. 제가 알던 발레와는 다른 모습이었거든요. 전에 봤던 <지젤>,<백조의 호수>는 어린 저에게는 너무 지겹고 졸렸는데, 공연한 <돈키호테>는 음악도 밝고, 발레리노의 테크닉도 화려한 거예요. “남자 무용수도 발레를 하면 이렇게 멋있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발레에 관심이 생기고 춤에 집중하게 됐어요.
     
    다른 하나의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발레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이에요.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던 선배가 있었어요. 둘 다 무용을 하고 붙어 다니다 보니 항상 비교되기 일쑤였죠. 그 선배가 하루는 발레 콩쿠르를 나갈 거라면서 너는 안 해볼래?” 하는 거예요. “얘가 한다니까, 나도 가야겠다“(웃음) 그런데 저희는 발레 콩쿠르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들어본 콩쿠르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로잔 콩쿠르였어요. 학생 콩쿠르 중에 가장 어렵고 제일 유명한 콩쿠르죠. 그런 줄 모르고 로잔에 가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전 세계에서 모인 최고의 학생들을 보면서 나도 이들처럼 되고 싶다생각했어요.
     
    정말 충격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때는 선생님도 없이 저희 둘이서 영상을 틀어놓고 보면서 연습했어요. 가자마자 준비한 솔로도 못 해보고 클래스만 하고 바로 떨어졌죠. 저희는 저랑 선배, 선배의 어머니까지 셋이서만 로잔에 갔는데, 다른 학생들은 티칭 해주는 선생님들도 있고, 분장도, 의상도 제대로 챙겨오는 걸 보고 이런 거구나생각했어요. 발레를 진짜 하고 싶으면 외국으로 나가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유학을 떠나게 됐어요.



    <잠자는 숲속의 미녀> 중 리앙 시후아이 | 유니버설발레단

    유학을 결정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전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부모님도 모두 예술을 하셨으니까 무조건 가라고 격려해 주셨어요. 사실 저희 누나도 발레를 했는데, 14살 때 러시아 선생님이 누나를 책임지고 비엔나 오페라 학교로 데리고 가겠다고 한 적이 있었어요. 너무 어린 나이라 어머니가 막으셨죠. 어머니가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으셔서 제가 유학을 선언했을 때 그동안 모은 돈을 제 첫 학기 등록금으로 모두 내주셨어요.
     
    키로프 아카데미는 어떻게 선택하게 됐나요.
    외국에 있는 발레 학교를 잘 모르다 보니, 선생님을 수소문해서 레슨을 받게 됐어요. 인터넷에 발레 스튜디오를 검색해서 나오는 학원을 찾아갔죠. 미국에서 활동하신 선생님을 만나 지원할 학교를 여러 개 정했어요. 다른 학교에도 합격했지만, 러시아 스타일 발레에 친숙해서 키로프 아카데미로 결정하게 됐습니다.



    발레리노 리앙 시후아이 | 올댓아트 변혜령

    17세에 본격적으로 발레를 시작했는데, 꽤 출발이 늦은 셈이에요. 당시 리앙 시후아이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학교생활이 궁금합니다.
    굉장히 악바리 같았어요. 입학하고 나서 첫 클래스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요. 바를 하려고 5번 발 포지션을 하고 있었어요. 선생님이 넓은 홀 저 끝에서 저를 향해 타이완! 5번 발!(Taiwan! Fifth position!)”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발레의 5번 발 포지션은 뒤꿈치와 발가락을 꼭 붙여야 하는데,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편하게 발을 쓰고 있었죠. 그때는 그걸 몰라서 ‘5번 발을 하고 있는데 왜 계속 5번을 하라고 하나생각했어요. 그때 내가 발레 무용수가 되고 싶다면 아파도, 무릎이 펴지지 않아도 힘을 기르고 골반을 열어서 5번 포지션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당시 저랑 같은 나이의 친구들은 이미 원하는 발레단에 가기 위해서 콩쿠르든, 오디션이든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상황이었는데, 저는 스트레칭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상태였어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아주 새롭게 발레를 시작한 거죠.
     
    정말 잊을 수 없는 시간이겠네요. 이름 대신 타이완이라고 불리는 건 정말 모욕적일 것 같아요.
    황당한 순간들도 정말 많았어요. 둘째 주에는 그 선생님이 저에게 대만어로 멍청이는 어떻게 말하냐고 물어보더군요. 대답했더니 그 후 몇 달 동안 저를 대만어로 멍청이라고 불렀어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에게 그런 식으로 대하는 선생님이었죠. 뭔가 보여주고 싶어서 나를 인정하게 만들어야겠다라는 목표 하나로 학교를 다녔던 것 같아요.
     
    그 시간을 견디게 해준 것은 무엇이었나요.
    학교에 적응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지만 멈출 수 없었던 이유가 몇 개 있는데요. 하나는 바로 군대 문제였어요. 대만도 한국처럼 군대를 가야 하는데, 대만에서 키로프 아카데미를 정식 학교로 인정해 주지 않았거든요. 방학 때 대만에 가면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군대에 가야 하는 가능성도 큰 상황이었어요. 계산해보니 프로 생활을 포함해 7년 정도가 필요하더라고요. 비행기를 편도로 끊고, “이제 이 비행기를 타면 7년 동안은 대만에 절대 안 온다마음을 먹었죠.
    또 저는 굉장히 고집이 센 성격이에요. 하겠다고 한 것은 밀고 나가는 편이죠. 당시 주위에는 유학을 반대하는 선생님들이 매우 많았어요. 동양인은 발레를 할 수 없다는 말도 들었어요. 17살은 이제 프로 발레단 입단을 준비하는 나이인데 너무 늦었다는 의견도 많았고요. 지금은 그게 저를 생각해서 해준 말들이라는 걸 알아요. 제 미래를 걱정해 준 거죠. 하지만 그때는 그 말이 너무 듣기 싫었어요. 그래서 힘들 때마다 나는 다시 돌아갈 수가 없다. 돌아가면 (할 수 없다고 한 사람들에게) 진다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든 미국에서 버티기 위해 방학 때면 뉴욕에서 시티 센터, 스텝스, 페리 댄스 등 유명한 스튜디오를 찾아다니며 클래스를 듣고 밤까지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했죠.

    키로프 아카데미 졸업 이후 참가했던 뉴욕 콩쿠르에서 유니버설발레단과 연을 맺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상황이 궁금합니다.
    당시 참가했던 콩쿠르는 4주 동안 참가자들이 합숙하는 시스템이었어요. 자연스럽게 참가자들과 친해질 수 있었고요. 그때 한국에서 온 정영재, 신승원, 이영도, 박귀섭, 하은지, 김나은 무용수와 아주 친해졌어요. 저는 발레단 입단의 기회를 위해 콩쿠르에 계속 참가하고 있던 상황이라 그들도 제가 구직 중이라는 걸 알게 됐죠. 마침 유니버설발레단의 문훈숙 단장님이 뉴욕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어 콩쿠르에 참가한 단원들 인사차 경연장을 찾으셨어요. 유니버설발레단에 있던 하은지 누나가 저를 끌고 가서 소개해 주었죠. 경연장에는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어 춤은 보지 못하고 인사만 하고 끝이 났는데, 콩쿠르 마지막 주에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메일을 받았어요.
    알고 보니 단장님께서 키로프 아카데미의 실기시험 비디오에서 저를 보신 적이 있었나 봐요. 학교 동기인 강민우 씨에게 저에 관해 물어보셨고, 민우 씨가 추천해 연수 단원으로 입단하게 됐어요.



    2018 <라바야데르> 중 황금 신상 역의 리앙 시후아이 | 유니버설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에서 활동하며 <라바야데르> 황금 신상, , <Minus 7> 등 캐릭터와 에너지가 돋보이는 역할을 많이 소화했는데요.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맡은 역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역할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라바야데르> 황금 신상이에요. 제가 처음으로 따낸 솔로거든요. 아직도 황금 신상은 정말 어려운 역할 같아요. 테크닉뿐만 아니라 등장 시점이 줄거리 상 까다롭기도 하고, 전신에 분장을 하니 몸을 풀 수가 없거든요. 항상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할 수 있나?’인 채로 무대에 나가야 해요. 애증의 역할이에요. <멀티플리시티>에서 했던 역할도 기억에 남아요. <멀티플리시티> 하면서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하는 기분을 느꼈어요. 제 춤과 생각이 모두 한층 성숙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램 머피의 <지젤>에서 맡았던 힐라리온도 소중한데요. 그램 머피와 함께 작업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어요. 역할을 맡기 전에는 그냥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지만, 악역을 맡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캐릭터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정말 많이 배웠어요. 세 역할 다 모두 다른 의미가 있어 기억에 남네요.
     
    모던 발레 작품에서도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대만에서 여러 장르의 무용을 배운 것이 영향을 주었나요.
    대만에서는 춤뿐 아니라 무술, 머스 커닝햄, 마사 그레이엄의 현대무용 테크닉, 중국, 티베트, 몽고 전통 무용 등 정말 다양한 춤을 가르쳐요. 가장 크게 느끼는 건, 새로운 춤을 만날 때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는 거예요. 모든 무용수들에게는 자기만의 안전지대(comfort zone) 있어요. 발레 무용수들에게 안전지대란 몸의 박스와 공식을 지키면서 춤을 추는 거죠. 발레는 완벽함을 추구하는데, 완벽한 라인이 아닌 것을 잘 견디지 못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여러 춤을 추면서 모든 춤에서 다 저마다의 매력을 찾을 수 있게 됐어요.
     
    클래식 발레와 모던 발레 공연은 여러 부분이 다를 것 같아요. 과정부터 공연에 이르기까지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일단 몸을 쓰는 방식이 아주 달라요. 클래식 발레는 최고의 몸 상태를 요구하고, 몸의 중심도 항상 높게 두죠. 현대무용은 몸의 힘도 많이 풀어야 하고, 몸의 중심을 더 낮게 두어야 해요. 그래야 움직임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어요. 발레에서 요구하는 범위 밖까지 몸을 쓰면서 탐험하는 게 필요해요.
    심리적으로도 차이점이 있는데요. 저는 좋은 무용수는 도구(tool) 같은 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클래식 작품은 로맨틱 발레, 고전 발레 등 시대마다 작품의 특징이 있고 요구하는 배경과 인물이 있어요. 박스 안에서 이미 주어진 것들을 이어붙이면서 자유를 찾는 거죠. 그런데 현대무용의 경우에는 박스 자체가 없으니 오히려 더 멍해질 때도 있어요. 안무가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안무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읽어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현대무용에서) 심적으로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10년 넘게 프로무용수로서 생활해왔습니다.
    지금의 저는 무용수로서 아주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다치든지 말든지 뛰고 싶은 만큼 뛰고 돌고 싶은 만큼 돌았어요. 그런데 그때의 정신(mind)은 지금처럼 분명하지 않았어요. 점점 경험이 많아지면서 연륜도 쌓이는데, 저는 지금 딱 정신과 신체가 중간에 있는 것 같아요. 체력은 아직 한계를 만나지 않았고, 정신도 거장의 수준에 있지는 않지만, 딱 가운데서 드디어 만나고 있는 거죠. 지금은 오히려 영리하고 효율적으로 뛰고, 음악과 함께 춤출 수 있어요. 최대한 늦게 오면 좋겠지만 정신과 신체의 차이가 또 느껴지는 순간이 오겠죠. 그래서 이 시간이 더 소중한 것 같아요.



    2021 유니버설발레단 <돈키호테> 중 리앙 시후아이 | 유니버설발레단

    무용수뿐 아니라 학생들도 가르치고, 대만안무프로젝트 참여 등 자신의 영역을 꾸준히 확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춤 말고도 하고 싶은 것이 굉장히 많은데,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건 춤이 유일하더라고요. 무용수를 평생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래서 가르치는 것도, 안무도 조금씩 도전하고 있어요.
    2017년부터 대만에서 발레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어요. ‘동양인은 발레에 적합하지 않다 고정관념이 대만에서도 점점 깨지고 있긴 하지만, 학생들이 실제로 느끼고 배우게 하고 싶었어요. 제가 대만에서 발레를 배울 때도 이런 기회가 있었다면 5번 발 포지션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을 테니까요.(웃음) ABT의 수석 무용수 서희 씨를 처음으로 초대했어요. 이후 재용 형이나 혜민 누나도 초대해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공연과 무용수들을 보면서 영감을 받았어요. 이제는 제가 가진 자원과 한국 발레의 풍부한 경험을 통해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어요.
     
    안무도 꾸준히 시도하고 있습니다.
    왜 예술을 하는가 생각해 보면, 결국 저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전달하고 싶은 거죠. 전달하려면 자기의 말이 있어야 하고요. 자기의 말을 만드는 창작(creation)의 과정이 안무라고 한다면, 저는 안무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모방(replication), 구성(fabrication), 창작(creation)이에요. 저는 이제 안무를 막 시작했는데,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지금까지 한 것은 모방과 구성의 단계예요. 원래 있는 경험과 몸과 동작을 조합하면서 제 언어를 찾는 중이죠. 제가 창작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제가 안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관련해 앞으로 계획하는 바가 있나요.
    제 주위에는 대단한 능력을 갖춘 좋은 무용수들이 정말 많아요. 그들이 가진 좋은 재능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크죠. 그래서 언젠가는 그들을 대만과 한국에 소개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어요. 코로나가 아니면 해마다 계속 일을 벌이고 싶은 마음이에요.
    안무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도전하고 싶고요.
    에 활동했던 뉴질랜드 왕립 발레단의 감독님( Sydney Choreographic Centre 단장)과도 연락하고 있어서 좋은 기회가 있으면 한국에도 초청하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모든 게 정지되어 있어요.



    2019 <Minus 7> 중 리앙 시후아이 | 유니버설발레단

    춤에 대한 큰 열정이 느껴져요. 계속 춤을 추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기억에 남는 영화 중 지구 종말을 다룬 영화가 있는데요. 디스토피아에 사는 사람들이 삶을 버티는 힘은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들이었어요. 옛날의 음악, 옛날의 그림, 옛날의 춤결국 예술이 아닐까 싶어요. 과거를 알게 해주는 유물들도 결국 예술품들이잖아요. 돈이나 정치가 아니라 예술이 그 시대를 알게 해주죠. 백 년 후에 제가 했던 작품들이 남아 삶이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주면 좋겠어요. 인생을 살면서 뭔가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예술을 지속하는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리앙 시후아이에게 발레란?
    인생인데요. 너무 평범한 답인 것 같지만 더 좋은 답을 찾을 수가 없어요. 더 정확히는 거꾸로 제 인생이 발레라고 말하고 싶어요. 발레 때문에 저는 지금 가장 친한 친구들을 만났고, 발레 때문에 대만을 떠났고, 발레 때문에 영어를 배우고 수많은 경험을 했고, 발레 때문에 한국에 왔고 배우자를 만났어요. 결국 제 인생은 발레 때문에 만들어진 거예요. 지금의 제가 발레 때문에 있는 거죠

    유니버설발레단 <지젤>

    2021. 10. 29 ~ 31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주말 오후 2시, 6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유니버설발레단

    올댓아트 변혜령 인턴
    송지인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자료|유니버설발레단, 올댓아트 변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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