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이 3년 만에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셰익스피어가 쓴 동명의 희극을 원작으로, 존 크랑코가 안무해 1969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통해 초연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수석 무용수로 활동했던 강수진 예술감독이 2014년 국립발레단에 취임 후 아시아 최초로 판권을 구입해 2015년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공연했습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역사를 흝어보기 위해서는, 500년을 훌쩍 뛰어넘어 16세기로 가야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초기 희극 작품인 원작은 말괄량이로 소문난 카트리나와 그의 남편이 된 페트루키오, 주변 인물들을 둘러싼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발레 <말괄량이 길들이기>도 원작의 줄거리를 무대로 가져왔습니다.
비극적인 작품이 주를 이루는 전막 발레의 특성상, 희극적인 줄거리를 가진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관객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국립발레단의 이번 <말괄량이 길들이기>도 공연 2주 전 98%의 높은 티켓 판매율을 기록했죠. 한자리 띄어앉기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오페라극장을 꽉 채웠던 국립발레단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그 현장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줄거리
1막 1장
호르텐시오, 루첸시오, 그레미오 세 남자가 발코니에서 비앙카를 향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습니다. 비앙카의 언니인 카타리나가 현장에 등장해 난동을 부리며 그들의 구애를 방해합니다. 이에 카타리나와 비앙카의 아버지 밥티스타는 세 명의 구혼자에게 카타리나가 먼저 결혼을 할 때까지 비앙카를 결혼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하죠. 상심한 구혼자들은 카타리나의 난동으로 잠에서 깬 마을 주민들에게 쫓겨납니다.
2장
쫓겨난 구혼자들은 도착한 술집에서 만취한 페트루키오를 발견합니다. 술에 취한 페트루키오는 작부들에게 넘어가 빈털터리가 되었죠. 호르텐시오, 루첸시오, 그레미오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립니다. 돈을 잃은 페트루키오에게 ‘카트리나와 결혼하면 큰 상속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흘리는 거죠. 페트루키오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3장
말괄량이 카타리나가 비앙카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때 호르텐시오, 루첸시오, 그레미오가 가정교사로 변장해 자매의 저택을 방문하고, 함께 페트루키오가 등장해 카타리나에게 청혼을 합니다. 카타리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제멋대로 굴지만, 그의 알 수 없는 매력에 끌려 청혼을 승낙합니다. 동생 비앙카는 가정교사로 분한 구혼자들 중 루첸시오와 사랑에 빠집니다.
4장
카타리나의 결혼식으로 향하는 주민들의 행렬이 이어집니다. 카타리나의 결혼 소식을 믿을 수 없는 주민들은 결혼식이 장난일 거라고 생각하죠. 세 명의 구혼자, 호르텐시오, 루첸시오, 그레미오는 각자 이제 비앙카와 결혼할 수 있다는 단꿈에 빠져 있습니다.
5장
카타리나는 신랑 페트루키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식이 시작될 때까지 신랑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요. 뒤늦게 페트루키오가 나타나 카타리나를 둘러메고 식장을 떠납니다.
2막 1장
신혼부부는 폭우를 뚫고 페트루키오의 집으로 향합니다. 배가 고프고 피곤한 채로 부부는 집에 도착하지만, 페트루키오는 갖은 핑계를 대며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합니다. 불에 젖은 몸을 말리던 카타리나 몰래 불을 꺼버리기도 하죠. 화가 난 카타리나는 주방 바닥에서 잠을 청합니다.
2장
1막의 그 술집으로 돌아갑니다. 루첸시오는 연적 호르텐시오와 그레미오를 처치하기 위해 작부들에게 비앙카로 변장하고 그들을 유혹할 것을 제안하죠. 호르텐시오와 그레미오는 비앙카처럼 보이는 여인에게 반해 ‘옳다구나’ 결혼을 약속합니다.
3장
페트루키오가 계속 음식을 주지 않자 카타리나도 지지 않고 맞서죠. 그러나 결국 카타리나는 페트루키오에게 항복합니다.
4장
페트루키오와 카타리나는 비앙카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페트루키오는 카타리나에게 마음껏 변덕을 부리지만, 카타리나는 즐거워합니다.
5장
세 커플의 결혼식이 진행되는 현장입니다. 얼떨결에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된 호르첸시오와 그레미오는 기쁜지, 두려운지 알 수 없는 모습이죠. 와중 행복한 모습의 루첸시오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게 웬걸, 결혼식에서 비앙카는 그동안 숨겨왔던 말괄량이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반면 오랜만에 등장한 카타리나의 얌전한 모습에 모두가 놀라고, 한술 더 떠 아내들에게 아내의 역할에 대해 훈계까지 합니다. 모두가 떠난 뒤 카타리나와 페트루키오는 사랑의 춤을 춥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관람 포인트
발뒤꿈치로 터벅터벅 걷는 발레 캐릭터가 있다?
발레 작품에서 무용수들은 무대 위를 이동할 때 모두 발끝으로 사뿐사뿐 걸어 다니죠. <말괄량이 길들이기>에는 발뒤꿈치로 무대 위를 활보하며 쾅쾅 소리를 내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바로 주인공 카타리나입니다. 카타리나는 뒤꿈치로 터벅터벅 걸어 다니고, 무대 바닥을 쾅쾅 구르며 제멋대로 행동하는 인물인데요. 1막 막바지에 이르러, 페트루키오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티저 | YouTube
(1분 30초 이후) <말괄량이 길들이기> 1막 3장 중 가정교사로 분한 구혼자들 | YouTube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드라마 발레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안무한 존 크랑코는 드라마 발레의 대가로 유명합니다. 그의 작품 중에는 <오네긴>, <로미오와 줄리엣>, <말괄량이 길들이기>과 같이 스토리텔링이 뚜렷한 작품이 많습니다.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묘사가 눈에 띄고, 대중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발레를 만들었다는 평을 듣지요. <말괄량이 길들이기>도 원작을 모르고 보아도, 무용수들이 대사를 하지 않아도, 줄거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요. 현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동작들이 눈에 띕니다. 익살맞은 군무와 개성있는 솔리스트들의 춤은 덤입니다.
그러나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매력이 많은 만큼 논란도 많은 작품입니다. 공연이 올려지기 전,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하인들이 페트루키오의 집에 도착한 카타리나를 겁주는 장면이 장애인 희화화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있었죠. 국립발레단은 이에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존 크랑코 재단의 허가를 받아 해당 장면을 수정했습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원작이 500년 전임을 감안해 볼 때, 우리는 줄거리에 만연한 차별과 폭력을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16세기는 ‘말괄량이’라는 죄목으로 재판이 이루어지기도 했던 시대니까요. 하지만 500년 후 관객에게, 남편이 아내의 밥을 굶기고, 잠을 재우지 않으며 ‘길들이는’ 서사는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예술작품의 자유와 검열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지만, 예술이 주는 ‘자유’가 면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국립발레단의 ‘말괄량이’가 될지, 오래도록 사랑받는 레퍼토리가 될지는 관객의 판단에 달려 있지 않을까요.
올댓아트 변혜령 인턴
송지인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사진·자료 | 국립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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