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바리톤 김기훈이 영국 카디프에 개최된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2021′(이하 BBC 콩쿠르)에서 한국인 성악가 최초로 아리아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BBC 콩쿠르는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오페랄리아 국제성악콩쿠르 등과 함께 권위 있는 성악 콩쿠르로 꼽히는 대회다. 올해 20회째를 맞이한 이 콩쿠르는 영국 공영방송 BBC가 개최하는 성악 콩쿠르로 2년마다 개최되며, BBC를 통해 결승전이 유럽 전역으로 생중계된다. 카리타 마틸라,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 브린 터펠, 안야 하르테로스 등이 수상한 바 있다.
김기훈은 연세대학교 음악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독일 하노버 음대 석사 과정을 만장일치 만점으로 졸업했다. 동대학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 중에 있다. 2019년 이미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 2등 상을 수상하며 청중과 평단에게 실력을 인정받았다.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와 브린 터펠의 경연 영상을 보며 성악가의 꿈을 키웠다는 김기훈이 꿈의 무대에서 선보인 곡들 중 하나는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다. 경연 당시 심사위원 로베르타 알렉산더와 닐 데이비스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송출되기도 했다. 로베르타 알렉산더는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할 말을 잃을 정도로 황홀한 무대였다”고 평했다.
BBC 콩쿠르 우승 이후 김기훈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기념 리사이틀을 갖는다. 그동안 콩쿠르에서 선보인 곡들을 위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심사위원들을 감동시킨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를 포함해 <세비야의 이발사>중 ‘나는 이 거리의 만능일꾼’, <코지 판 투테>의 ‘당신의 시선을 나에게 돌려주세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분노에 떨고 있네’ 등 다양한 아리아를 선보인다. 소프라노 서선영과 테너 강요셉이 스페셜 게스트로 함께 한다.
*이하 내용은 <바리톤 김기훈 리사이틀> 기자간담회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
BBC 콩쿠르 아리아 부문 우승 소감이 궁금합니다.
제가 성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 봤던 영상이 브린 터펠과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가 (BBC 콩쿠르에서) 경연하던 영상이었습니다. 그 무대에 서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루게 되어 감회가 남다릅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었고, ‘한국인 최초’라는 타이틀도 따고 싶었어요.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콩쿠르였던 것 같습니다.
이전에도 차이콥스키 콩쿠르,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도 수상했는데요. 당시 소감이 궁금합니다.
1등을 노리고 출전했기 때문에 2등 상을 수상했을 때 기분이 좋지는 않았죠. 차이콥스키 콩쿠르 당시에는 대회 후 극장 관계자들이 왜 “기훈 김이 1등이 아니냐”고 항의하는 상황도 있었고요. 오페랄리아 콩쿠르 당시, “이번엔 1등 하겠지” 생각했는데 2등상과 청중상을 수상했어요. 청중들이 저를 1등으로 기억해 주었기 때문에 만족했습니다.
당시 연주 기회 등 많은 부상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 이후 게르기예프 지휘자가 저를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안나 네트렙코처럼 키워주겠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마린스키 극장에서 몇 년 간 전속가수로 활동하는 조건이었어요. 해외 일정이 많은 상황이라 “죄송합니다, 마에스트로.”라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워싱턴 오페라 하우스 등 좋은 기회들이 많았는데, 팬데믹 상황으로 다 취소가 되었어요. 이번 콩쿠르 우승을 통해 다시 무대에 설 좋은 기회들을 많이 얻게 되어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떤 극장에서 어떤 역할로 만나볼 수 있나요.
청년 바리톤이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역할들이 몇 개 있는데요. <라 보엠>의 마르첼로 역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워싱턴 오페라 하우스, 뮌헨 오페라 하우스에 서게 되고요. 또 이번 콩쿠르를 통해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 데뷔하게 됐습니다. 가깝게는 내년 1월에 샌디에이고에서 <코지 판 투테>의 굴리엘모 역으로 무대에 서게 됩니다.
메이저 콩쿠르에서 수상하고 유럽 극장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BBC 콩쿠르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성악가들 중에는 콩쿠르 연령 제한에 걸리지 않는 이상 (콩쿠르에) 도전하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저의 경우 메이저 콩쿠르에서 입상했기 때문에 “더 이상 콩쿠르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우승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꿈의 대회인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에서 우승해보자는 마음으로 도전하게 됐습니다.
BBC 콩쿠르 당시 심사위원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송출되었습니다. 당시 심사위원의 반응을 알고 있었나요.
콩쿠르 현장에서는 솔직한 심정으로 심사위원이 미웠어요. 정말 어두운 표정으로 턱을 괴고 듣고 계셨거든요.(웃음) “내가 노래를 못하고 있구나. 평생 한 번 있는 무대를 망쳐놓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하필 제 다음 순서였던 친구가 너무 노래를 잘해서 “저 친구가 되겠구나” 싶었죠. 제 이름이 불려서 많이 놀랐습니다. 평소 콩쿠르 영상을 잘 보지 않고 늦게 모니터링을 하는 편인데요. 함께 참가했던 바리톤 박주성이 찾아와서 심사위원이 울었다고 알려주더라고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믿지 않았는데,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BBC 콩쿠르 당시 기억에 남는 평이 있다면요.
BBC 콩쿠르는 매 라운드마다 비평가들이 평을 하는데요. 비평에서 ‘경이로운(phenomenal)’이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콩쿠르에서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였는데, “이것저것 모두 할 수 있고, 그 나이에 스카르피아의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 가수다. 이미 월드클래스다”라는 말을 해주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BBC 콩쿠르 우승 이후 9월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기념 리사이틀을 갖습니다.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BBC 콩쿠르 우승 기념으로 하는 리사이틀이라 프로그램 구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여태까지 대회에서 했던 곡들 위주로 하는 게 좋지 않겠나,는 생각에 (콩쿠르 곡들 위주로) 구성하게 됐습니다.
스페셜 게스트로 리사이틀에 소프라노 서선영과 테너 강요셉이 출연한다고 들었습니다.
국립오페라단 <라보엠> 공연을 계기로 만나게 되었는데요. 저를 정말 많이 아껴주세요. 정말 순수하게 제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기꺼이 도와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아직 실감이 안 나고,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성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곡성 촌놈인데요.(웃음) ‘골짝 나라’ 곡성으로 불릴 만큼 시골이에요. 공기도 좋고 행복한 동네입니다. 시골에서 성가대를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교회에서 세미나를 듣게 됐습니다. 강사분이 노래를 시켜보시고 “무조건 성악을 시켜야 된다”고 목사님과 부모님을 설득하셨습니다. 성악을 고3이 되는 방학 1월에 시작했는데, 집에서 반대가 크셨어요. 테스트를 받을 기회가 생겼을 때, 아버지께 테스트에서 “노래 좀 하네”라는 소리를 들으면 노래를 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세계적인 성악가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다”고 하면 시작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행히 후자로 이야기해 주셔서 성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극찬을 받고 성악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선생님이 ‘레슨비 받아먹으려는 사기꾼’인 줄 아셨어요.(웃음) 지금은 성악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신 은사님이시죠.
오페라 가수로서 본인의 강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음악은 영웅적이고 강인한 노래와 역할인데요. 이번 콩쿠르에서 심사위원들은 섬세한 음악을 잘한다고 말해주시더라고요. 거대한 소리를 가지고 있는데, 코른골트의 오페라나 <탄호이저> 아리아를 부를 때에는 굉장히 작게 부를 수 있어서, 음악적으로 넓은 규모를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하며 슬럼프가 온 적이 있었나요. 음악을 하지 않았더라면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은가요.
군대에서 성대결절을 얻어서 군 전역 이후 10여개월 동안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진지하게 음악을 그만두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학교에서 기대치가 높았는데, 성대결절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정말 무기력해지더라고요. 복싱 체육관을 다니고 있었는데, 관장님께서 자질이 있다고 선수를 추천하셔서 복싱 선수나 격투기 선수를 생각해 보기도 했죠. 그때 이외에는 진지하게 다른 직업을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음악이 제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음악을 지속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직업이 너무 좋아요. 진로를 정할 때 가장 잘하는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하필 가장 좋아하는 것이 노래이기도 했고요. 직업만족도가 최상입니다.
또 저에겐 관객들이 매우 중요한데요. 제가 노래로 에너지를 전달해드린다면, 관객들이 저에게 에너지를 주실 때는 박수를 보내주실 때예요. 그때 엄청난 힘을 얻어요. 감동을 받기도 하고요. 음악하는 데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어떤 바리톤이 되고 싶나요.
소프라노 하면 조수미 선생님이 생각나듯이, 바리톤 하면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타이틀을 하나 얻었다고 해서 자만하거나 현상 유지를 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고요. 큰 꿈을 그리되, 현실적인 목표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려고 합니다.
만족하는 예술가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는 불만족에서 좋은 예술이 탄생한다고 보거든요. 만족하는 순간 제 예술인생은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미래를 향해 노력하는 바리톤이고 싶습니다.
■ 공연 프로그램
<1부>
로시니 – <세비야의 이발사> 중 서곡
로시니 – <세비야의 이발사> 중 ‘나는 이 거리의 만능일꾼’
모차르트 – <코지 판 투테> 중 ‘당신의 시선을 나에게 돌려주세요’
도니체티 –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분노에 떨고 있네’
바그너 – <로엔그린> 중 3막 전주곡
바그너 – <탄호이저> 중 ‘저녁별의 노래’
코른골트 –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
<2부>
레온카발로 – <팔리아치> 중 ‘신사 숙녀 여러분’
베르디 – <가면무도회> 중 ‘당신과 함께 있겠소’
베르디 – <가면무도회> 중 ‘여기는 무슨 일로?’
베르디 – <가면무도회> 중 ‘그대는 내 명예를 더럽혔다’
차이콥스키 – <예브게니 오네긴> 중 폴로네즈
차이콥스키 – <예브게니 오네긴> 중 ‘나에게 편지를 쓰셨더군요’
차이콥스키 – <예브게니 오네긴> 중 파이널 듀엣
시마노프스키 – <로제르 왕> 중 ‘에드리지, 이미 새벽이다…. 태양이여! 태양이여!’
<바리톤 김기훈 리사이틀>
2021. 9. 4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바리톤 김기훈
소프라노 서선영
테너 강요셉
지휘 김덕기
코리아쿱오케스트라
올댓아트 변혜령 인턴
송지인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자료|아트앤아티스트
콘텐츠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