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무더위도 잠시 쉬었다 가는 곳,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전시를 소개합니다.
삼국시대 문화재부터 근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미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이 열리고 있습니다.
덕수궁 안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요즘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입니다. 덕수궁 입구에서 미술관까지 걸어가는 내내 그림자를 만드는 오래된 나무와 여름에만 만날 수 있는 능소화가 관람객들을 맞이합니다. 전시관 입구에서 바라보는 석조전도 작은 분수와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합니다. 등나무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석조전을 바라보다가 한참 만에 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문화재는 박물관에 가서 보고 미술품은 미술관에서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은 이 둘을 마주하게 함으로써 시공간을 초월한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습니다. 작품을 둘러보며 ‘한국의 미란 무엇인가’의 답을 구해가는 과정도 흥미롭지만 문화재와 미술품을 같은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이번 전시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전시는 동아시아 미학의 중심이었던 네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기획했습니다. ‘성(聖, Sacred and Ideal)’, ‘아(雅, Elegant and Simple)’, ‘속(俗, Decorative and Worldly)’, ‘화(和, Dynamic and Hybrid)’인데요.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성(聖, Sacred and Ideal)
1부 성(聖, Sacred and Ideal)은 종교적 성스러움과 숭고함의 가치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미(美)’가 근대 이후 우리 미술에 끼친 영향을 살펴봅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담긴 사후 세계의 염원과 통일신라 시대 석굴암에 투영된 부처의 사상을 보면서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1부의 이름인 ‘성(聖, Sacred and Ideal)’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예술의 지극히 높은 경지를 ‘성(聖)스러움’으로 인식했지요. 이에 가장 잘 맞는 문화재가 고려청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옛날에도 세계를 매료시켰던 고려청자의 완벽한 구조와 아름다운 색상은 훗날 이중섭의 작품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고려 시대 ‘청자상감 포도동자무늬 주전자’의 동자와 이중섭의 ‘봄의 아동’ 속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많이 닮지 않았나요? 이중섭은 청자의 상감기법(금속, 도자기, 목재 등의 표면에 무늬를 파고 그 속에 금이나 은을 넣어 채우는 기술)과 비슷한 방법으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청자 자체의 매력과 발전 양상뿐만 아니라 파격적이고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겸비한 이중섭의 작품을 함께 감상함으로서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과 근현대 미술에 끼친 영향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아(雅, Elegant and Simple)
2부 아(雅, Elegant and Simple)는 맑고 바르며 우아하다는 의미입니다. 세속적인 것을 지양하고 보다 높은 것을 추구하는 심미적 취향인데요. 한국적인 모더니즘과 한국미술의 정체성 찾기에 몰두한 해방 이후의 화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겸재와 추사 김정희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조선시대의 작가들과 해방 이후의 작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요. 겸재의 진경산수화와 추사 김정희의 문인화는 한국미술이 추구한 아(雅) 미학을 잘 드러내는 대표적 작품들입니다. 추사 김정희는 생각과 마음을 보다 지적(知的)으로 그리려 했고 겸재 정선은 자연에 온전히 몰입하고 동화된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본질에 천착한 겸재와 추사의 전통은 1970~80년대 한국 화단을 풍미한 ‘단색조 회화’로 이어집니다. 순백의 달 항아리 작품들이 2부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속(俗, Decorative and Worldly)
3부는 속(俗, Decorative and Worldly)입니다. 직전에 살펴봤던 ‘아(雅)’와는 사뭇 상반된 분위기입니다. ‘속(俗)‘은 대중적이고 통속적이라는 의미로,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취향을 뜻합니다. 표현주의적이고 강렬한 아름다움을 추구한 작품들을 모았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은 김홍도의 풍속화와 신윤복의 미인도입니다. 이 두 작품을 통해 당대에는 낮은 취급을 받았던 풍속화가 어떻게 한국미술을 대표하게 되었고, 근대 이후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를 탐구합니다. ‘속(俗)‘은 대중불교를 추구했던 조선시대 불교회화의 정신과도 통합니다. 조선시대 민중의 하루를 잘 표현한 불화도 3부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위 세 작품들의 공통된 특징은 당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시대상을 묘사했다는 점입니다. 결국 후대에까지 널리 이어지며 한국미술의 대표성을 얻는 작품들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는 작품들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1980년대의 민중미술도 이런 전통을 계승했습니다.
화(和, Dynamic and Hybrid)
마지막 공간인 4부 화(和, Dynamic and Hybrid)는 대립적인 두 극단의 융합을 이야기합니다. 상호 간의 차이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것을 뜻하는데요. 다른 시간대에 만들어져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껴졌던 문화재와 미술품이 한데 모아놓고 보니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신라 금관(보물 339호)에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들은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전통이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녹아들어 재탄생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다양한 가치와 미감이 공존했던 1990년대 이후의 포스트모너니즘 시기 작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미술이 지나온 시간들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맥락 속에서 더 빛나고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전시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이었습니다.
■ <DNA :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2021년 7월 8일(수) ~ 10월 10일(일)
10:00 – 18:00
*월요일 휴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관(서울 중구 세종대로 99)
문의 : 02)2022-0600
올댓아트 구민경 인턴
권재현 전시팀장
allthat_art@naver.com
자료 및 사진 ㅣ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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