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던 MZ세대의 선입견을 깬 영상이 있다. 지난해 한국관광공사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을 홍보하는 광고 영상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다.
국악과 현대음악이 뒤섞인 독특한 리듬에 맞춰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일곱 명의 춤꾼이 몸을 흔들고, 언뜻 보기에는 난해한 한국무용처럼 느껴지는 이들의 몸짓 뒤로 한국의 관광 명소들이 스쳐간다. 사물놀이나 탈춤과 같은 공식코스에 “놀러오세요!”를 외치는 뻔한 스토리가 아닌 B급 감성을 노린 획기적인 기획은 소위 말하는 ‘대박’이었다.
2021년 9월, <범 내려온다> 열풍에 이어갈 ‘Feel the rhythm of Korea’ 두 번째 시리즈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에도 ‘힙’하다. 총 8개 영상으로 구성된 시리즈는 서울, 부산·통영, 대구, 서산, 순천, 강릉·양양, 경주·안동을 각각 90∼120초 내외로 소개한다.
특히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머드맥스’ 서산편이다. 영화 ‘매드맥스’를 패러디한 이 영상은 경운기 시동을 거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이어 수십 대의 경운기들이 무리를 지어 드넓은 갯벌을 가로지르고, 마침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바지락 채취 현장.
박진감 넘치는 질주는 카레이싱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경운기 머리에 달린 ‘바지락 도깨비’나 ‘키맨’ 글자가 적힌 모자엔 박수가 절로 나온다. 그러면서도 본래의 목적을 잊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해미읍성과 간월암 등 서산의 주요 명소들이 화면을 채운다. 원주민의 목소리로 녹음된 민요 ‘옹헤야’는 앞선 날렵함을 뒤짚는 반전이다. 이 영상은 서해안 바지락 조업 현장을 취재한 뉴스 영상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비장미 넘치는 주민들의 열연이 더해진 이 영상은 업로드 2주 만에 평균 조회수 900만 회를 기록했다.
경주와 안동편은 힙합으로 ‘강강술래’ 를 재해석했다. 정월대보름에 부녀자들이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원형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뛰놀때 부르던 ‘강강술래’는 유한한 인생에서 즐겁게 노닐며 살기을 염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영상은 애초의 의도대로, 즐겁게 노닐며, 유명 래퍼 우원재가 랩을 한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강강술래로 이어지는 후렴구를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되는 묘한 마법에 빠질지도 모른다.
대구 공구시장, 약령시장 배경 영상으로 시작하는 ‘쾌지나칭칭나네’를 듣고 있으니, 2000년대 초반 음악방송을 뜨겁게 달궜던 그룹 원타임이 연상되는 것은 기분 탓일까. 발가락을 까딱거리며 어깨를 들썩이게 되는 리듬과 대비되는 할아버지의 부채질에 해학이라는 두 글자가 떠오른다. 힙합 아티스트 여러 명이 약령시장 도로를 춤추며 횡단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한국의 비틀즈다.
서울1편 ‘사랑가’는 패션쇼를 떠올리게 한다. 공주 복색을 한 여성 아티스트가 한복을 입은 채 마곡식물원을 거닐고 갓 쓴 정장 차림의 힙합 아티스트가 지하철과 도심 곳곳을 누빈다. 서울2편 ‘아리랑’은 있는 그대로의 서울을 보여주지만 ‘레트로’한 감성이 느껴져 마치 한편의 영화처럼 포장됐다. 특히 세대를 넘나드는 구성이 인상적이다.
나이 드신 분들이 정중앙에 자리 잡아 세월의 무게로 영상을 지탱해주니, 주제는 더 단단해 보이고 한국이 더 깊이 있어 보인다.
영상을 만든 이들은 아마도 젊은 사람들일 텐데 그들이 찾아낸 어르신들의 멋진 구석, 그분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 좋다.
시즌 2는 로컬 브랜딩(Local Branding)을 키워드로 삼았다. ‘양양=서핑’, ‘서산=갯벌’ 등 관광명소는 물론 현지 주민들의 생활 방식을 보여주며 한국의 매력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힙, 흥을 세련되게 전면 배치했다. 가난으로 허덕이는 순간에도 반대 뺨을 내밀던 흥부의 해학도, 표리부동 양반의 허세에 맞선 말뚝이의 풍자도 모두 우리의 ‘흥’에서 나오지 않았던가.
순천을 배경으로 한 ‘새타령’에는 미주 지역에서 ‘잇’ 아이템인 호미와 진돗개가 등장한다. 개인적으로는 깨알같이 등장하는 ‘K소품’들이 숨은 재미였다. 이번 연휴엔 가족들과 함께 영상 속 커피믹스, 팔 토시, 포대기 등을 찾아내며 그 시절의 추억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올댓아트 김지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참고
“힙하다, 열 번째 본다”…’머드맥스’ 현지 주민들 미친 존재감, The Joongang, 202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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