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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이 흐르는 타슈켄트 지하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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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도시를 찾아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대부분 국립 박물관과 사립 미술관의 유명 작품들을 보기 위해 상당한 돈을 지불합니다. ‘토박이’들은 다르죠. 굳이 돈 들여 방문하지 않더라도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주변에 훌륭한 예술 작품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지하철 역사가 대표적입니다. 뉴욕의 지하철 통근족들은 A구간에서 B구간으로 가는 요금만 내고선 윌리엄 웨그만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감상합니다. ‘파리지앵’들은 유명 건축가 엑토르 기마르(Hector Guimard)가 디자인한 구불구불 물결치는 열대 식물 문양의 문을 통과해 지하철을 탑니다. 지하철(런던 튜브)로 출퇴근하는 런던의 직장인들은 스코틀랜드 출신 아티스트 루시 멕켄지(Lucy McKenzie)의 <기쁨의 오류>(Pleasure’s Inaccuracies)와 같은 예술 작품들을 수시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미술 전문 웹진 ‘하이퍼알러직’ 기사의 도입부입니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장광설을 풀어놓았을까요? 바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얘기입니다. 
    타슈켄트의 지하철 역사들 또한 출퇴근 통근족들조차 무심코 지나치기 어려울 정도로 예술이 철철 흘러넘친다는데요. 무도회장의 샹들리에, 대형 모자이크, 목판 조각 형태의 예술품들로 가득한 타슈켄트로 지금부터 지하철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 사이를 운행하는 고속열차 ㅣ픽사베이


    하이퍼알러직’은 모스크바의 지하철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옛 소비에트연방 국가들 중에선 타슈켄트의 지하철이 예술품의 종류와 규모 면에서 가장 빼어나다고 언급합니다. 타슈켄트는 대형 지진이 휩쓸고 가는 바람에 도시가 초토화된 지 6년 만인 1972년 지하철 1호선 공사에 착수했는데요. 옛 소비에트연방 기술자들과 굴삭공들이 1호선을 완공했습니다. 중앙 아시아의 9개 역을 잇는 2호선 공사는 1977년 시작했고요. 이 과정에서 역사 곳곳에 예술품을 설치했습니다. ‘노동 착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면화 생산량, 유인 우주선 첫 발사, 타슈켄트의 이슬람교 예배당인 ‘모스크’와 이슬람 신학 교육기관인 마드라스(madrassas) 등 우즈베키스탄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타슈켄트의 모스크 ㅣ픽사베이


    소비엔트연방이 해체되면서 ’10월 혁명’역으로 불리던 지하철 역사의 이름도 변화를 겪었습니다. 지금은 14세기 중앙 아시아 군대를 이끌며 대제국을 건설했던 지도자의 이름을 따 ‘아미르 티무르’ 역으로 불리고 있지요. 러시아 대문호의 이름을 따서 지은 ‘막심 고리키’ 역도 지금은 ‘큰비단길(the Great Silk Road)’ 역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까지 우즈베키스탄의 ‘민족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아미르 티무르’의 동상 ㅣ픽사베이


    2016년 사망과 함께 27년 장기집권의 종지부를 찍은 우즈베키스탄 초대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Islam Karimov)의 재임 기간 동안 타슈켄트의 지하철은 군사 시설로 분류돼 역사 내부 사진을 찍는 행위조차 엄격히 금지됐습니다. 발각되면 상주 보안요원들이 가차없이 카메라를 뺏았습니다. 지금은 많이 변했습니다. 현재 대통령은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Shavkat M. Mirziyoyev)인데요. 2018년 출입금지 조치를 해제했습니다. 두 달마다 한 번씩 철길을 개방합니다. 15센트의 통행세만 내면 누구나 37마일의 철길을 따라 43개 역사를 자유로이 탐험할 수 있습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진광들에겐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지요.



    우즈베키스탄 수도인 타슈켄트 시가지 전경 ㅣ픽사베이


    미술전문 온라인 매체 ‘하이퍼알러직'(https://hyperallergic.com)이 최근 기사에서 꼽은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역사(驛舍)들을 소개합니다.

    칠란자르 역(Chilonzor Station)
    수십 개의 세라믹 벽화들이 논 위의 농부부터 차밭을 갈고 있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생활 모습을 묘사합니다. 오목한 모양의 천장을 따라 금제 왕관 모양의 샹들리에와 대형 호텔 무도회장을 연상시키는 수정 조명들이 어둠을 밝히고 있습니다.

    알리셰르 나보이 역(Alisher Navoi)
    ‘우즈베키스탄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리셰르 나보이의 이름을 딴 이 역사에는 15세기 우즈베키스탄의 문화적 르네상스를 이끈 시인, 작가, 정치인, 언어학자, 화가, 성직자들을 터키석에 입체적으로 새긴 청록색의 부조 작품(the turquoise blue bas-reliefs)이 있습니다. 유명 조각가인 아메트 샤이무라도프(Ahmet Shaymuradov)가 4년에 걸쳐 제작했습니다. 복잡한 돔 모양의 역을 보면 우즈베키스탄의 황금기인 실크로드 시대에 지은 모스크와 마드라스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타슈켄트의 이슬람교 예배당인 ‘모스크’ ㅣ픽사베이


    타슈켄트 역(Tashkent Station)
    타슈켄트 역은 외관을 놓고 관람객들 사이에 호평과 악평이 엇갈리지만 웅장함만큼은 후한 점수를 받고 있습니다. 여러 개의 역사 입구는 모두 타슈켄트의 2200년 역사를 상징하는 엠블럼이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나머지 부분은 그리스 문화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우즈베키스탄의 일상 생활을 묘사하는 조각품들을 진열해 놓았습니다. 



    타슈켄트의 한 지하철 역사의 모습 ㅣ픽사베이


    코스모나브틀라르 역(Kosmonavtlar Station)
    타슈켄트의 지하철 역사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 역입니다. 이 역사를 디자인한 조각가 세르고 수트야긴(Sergo Sutyagin)은 파랑색에서 검정색까지 강렬한 색상을 점차 희미하게 사라지듯 색칠한 이유로 우주 탐험의 모든 단계를 작품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는데요. 벽을 따라 푸른색으로 칠한 메달 모양의 세라믹 보석들은 세계 첫 우주비행에 성공한 유리 가가린과 세계 첫 여성 우주 비행사인 발렌티나 테레슈코바를 포함한 소련 우주비행 프로그램의 선구자들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예술 명장들의 손길이 더해진 지하철 역사의 천장은 은하수를 떠올리게 합니다.

    2016년 9월, 타슈켄트 지하철 공사는 도시를 링 모양으로 도는 순환선과 모든 역을 연결하는 남쪽 노선 확장 공사 건설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접근성이 갈수록 좋아지는 거지요. 타슈켄트 지하철 역사를 다니다 보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요. 타슈켄트 사람들의 자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하다고 이 매체는 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에다 우즈베키스탄과 인접한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갈 길이 더욱 요원해진 시기여서 예술이 흐르는 타슈켄트의 지하철 역사를 조명한 기사가 새삼 눈길을 끕니다.

    올댓아트 권재현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원문 출처 ㅣA Tour Through Tashkent’s Art-Filled Sub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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