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아는 백현진은 어떤 모습인가요?
음악에 관심 많으신 분들은 ‘어어부 프로젝트’로, 드라마에 관심 많으신 분들은 ‘모범택시의 갑질 대표’로 백현진을 알고 계실 텐데요. 싱어송라이터, 배우, 화가, 행위예술가 등 알고 계신 것보다 더 많은 직업을 갖고 있는 백현진이 이번에는 작가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그의 개인전 <말보다는>이 열리고 있는데요.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는 만큼 전시에도 이 부분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회화, 조각, 설치, 음악, 비디오, 공연, 대본, 퍼포먼스, 연기로 구성했고, 모두 60개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텍스트 없는 전시
전시의 제목 ‘말보다는’처럼 관람객들이 직접 보고 느끼게끔 유도하는 전시입니다. 그래서 말이 없습니다. 보통 전시를 보러 가면 작가노트 등을 담은 유인물을 비치하거나 작품 옆에 설명을 붙여놓는 게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작가는 전시작 관련 설명을 모두 없앴습니다. 무려 3년 동안 준비한 개인전인데 말이죠.
이번 전시에 텍스트가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전시를 보러 다니면서 받은 유인물이나 관련 글이 인상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느낀 적이 많아요. 작품을 하나하나 ‘이건 어떤 의미입니다’라고 설명하는게 제겐 맞지 않아요.
– 백현진 –
대신 작품 제목이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요절’, ‘멋진 뒷골목’, ‘무엇도 아닌 그만의 것’ 등 작품의 제목이 뭔가를 말하려는 듯했습니다. ‘전시 기획 취지와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니야?’ 생각도 잠시 했는데요. 알고 보니 이 또한 ‘설정’이었습니다. 작품에 가벼운 별명이나 애칭을 붙임으로써 아예 제목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를 바란 거지요. 관람객들이 다른 이름을 붙인다 해도 개의치 않겠답니다. “현대미술에서 ‘무제'(無題, Untitled) 또한 그 자체로 강력한 신호가 있다고 느꼈다”는 백현진. 가히 ‘자유인’다운 발상입니다. 자신의 작품을 보고 관람객들이 전혀 느끼는 바가 없을지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며 ‘쿨한’ 면모도 과시했습니다.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일까요? 작품을 한번 보시죠.
즐길거리가 많은 전시
작가는 개인전을 위해 음악을 특별 제작했습니다. 전시장마다 제공하는 QR 코드를 통해 휴대폰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어폰으로 혼자 조용히 듣는 것도 좋지만, 전시장에 크게 울려도 괜찮습니다. 여느 전시라면 다른 사람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동이라며 눈총을 받겠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환영을 받습니다. 이렇게 즐기라고 꾸민 전시이니까요.
오는 19일(토)에는 퍼포먼스를, 7월 3일(토)에는 라이브 음악 공연을 앞두고 있어 백현진의 다양한 모습이 궁금했던 관람객들로선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생분해 가능한 것
별관의 모든 작품들은 ‘생분해 가능한 것’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는 유화를 즐겨 그렸는데, 어느 날 이런 것들이 부담스럽게 다가와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음악도, 연기도, 행위예술도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지는데 그림은 계속 남아 있으니 마음에 걸렸다고 합니다.
유화는 유럽에서 귀족들이 영원함을 욕망하며 만들어낸 재료로 알고 있습니다. 재료 자체가 가진 목표가 부담스러웠고, 고민 끝에 ‘조수’를 고용해 생분해가 가능한 재료를 찾았습니다.” – 백현진
1년에 가까운 긴 시간이 지나 결국 자연 소멸하는 재료를 찾는데 성공했고,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뒷동산에 버려도 분해되는 소재’로 작품을 만드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 없었다는 작가는 “쿨한 부자가 작품을 사서 보다가 자연으로 돌려보내면 진짜 멋있을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그래서 미술은 언제부터 한 거야?
백현진의 작가적인 모습을 잘 몰랐던 분이라면 기발하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한 그의 면모를 보며 아마 많이 놀라셨을 텐데요. 다재다능한 예술가 백현진은 일찌감치 배우보다 작가로 먼저 주목받은 인물입니다. 2005년 아라리오갤러리의 소속 작가가 됐고 두산갤러리, PKM갤러리, 삼성미술관 플라토,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거나 단체전에 참여했습니다. 2017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후원 작가로 선정됐지요. 흔히 ‘괴짜’ ‘천재’는 게으르려니 생각하기 쉬운데요. “창피한 건 싫다. 성실하게 일하려고 한다”는 백현진의 말을 들으니 세간의 이런 통념조차 그의 작품 앞에선 들어설 자리가 없구나 싶었습니다.
■ 백현진 개인전 <말보다는>
2021년 6월 4일(금)~ 7월 3일(토)
PKM갤러리(서울 종로구 삼청로7길 40)
문의 : 02)734- 9467
올댓아트 구민경 인턴
권재현 전시팀장
allthat_art@naver.com
자료 및 사진 ㅣPKM갤러리, 올댓아트 구민경
콘텐츠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