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대명절, 추석이 찾아왔습니다. 이번 연휴는 평일과 겹쳐있어 유독 길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긴 명절이 찾아왔음에도 고향 집을 방문하거나 가족들끼리 멀리 여행을 떠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아쉬운 마음만 삼키며 집콕 하고 계실 여러분을 위해 추석 연휴에 볼만한 전시와 함께할 수 있는 나들이 코스를 준비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전시 나들이를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요? 전시장이 멀어 부담스러운 분들도 아쉬워 마세요.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으니까요.
삼청동
첫 번째로 추천할 나들이 장소는 삼청동입니다. 삼청동은 많은 갤러리들이 위치해 있는 동네인데다 덕수궁, 경복궁, 서촌과도 가까워 폭넓은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가족 간의 정을 나누고 사랑을 다지는 추석 연휴인 만큼, 수많은 하트(♥)를 만날 수 있는 전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삼청동 초입에 위치한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이건용 작가(1942년生)의 개인전 <Bodyscape(바디스케이프)>가 바로 수많은 하트의 주인공입니다.
전시와 동명의 연작인 ‘Bodyscape(바디스케이프)’는 작가가 신체를 제한한 상황에서 간단한 선 긋기 동작을 수행하며 캔버스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으로 제작합니다. 팔에 부목을 대기도 합니다.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하기 위해서죠. 가능한 만큼 이동하면서 수행하듯 천천히 하나하나 선을 그어 작품을 완성합니다. 큰 작품보다 섬세하게 계산하고 움직여야 하는 작은 작품의 제작 과정이 오히려 더 어렵다고 합니다. 작가의 팔 길이, 신장에 맞춰 캔버스의 크기를 따로 제작하기도 한다네요.
화가는 모름지기 자기 앞에 현전해 있는 평면에 무언가를 그리지만, 저는 화면을 제 앞에다 놓고 제 신체가 허용하는 것만큼만, 화면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선을 그리는 겁니다.
그것은 제가 평면을 보고 그 위에 무언가를 의식이 지시하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제 팔이 움직여서 그어진 선을 통해서, 내 신체가 평면을 지각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지요.-이건용 작가-
“캔버스 뒤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작업 과정에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는데요. 그동안 작가의 작품은 제작 과정이 절제된 흑백 기록 사진으로 보이거나 전시장의 관람객 앞에서 공연하는 등의 특징 때문에 ‘이벤트로서의 드로잉’ 혹은 ‘행위예술’로 평가되어 왔습니다.
물론 이벤트로서의 드로잉이나 행위예술도 훌륭한 예술의 한 갈래이지만 작가의 의도와는 다른 평가였습니다. 그래서 이 전시는 철저하게 ‘Bodyscape(바디스케이프)’ 연작이 회화로서 가진 매력에 집중합니다. 작품 자체에 작업 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납니다.
‘에이, 이런 거라면 나도 그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셨나요? 그렇다면 작가의 의도가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진 거네요. 그는 “작금의 현대미술이 지나치게 자기 사유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대중과의 소통에서 멀어졌다”고 지적합니다. ‘Bodyscape(바디스케이프)’ 연작은 누구나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이 관람객의 친구가 되어 대화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전시장에는 하트 모양을 한 ‘Bodyscape(바디스케이프)’ 연작이 많습니다. 작가도 개인적으로 이 작품들을 좋아해 마음 같아서는 전시장 전체를 ‘하트 작품’들로만 채우고픈 꿈이 있다고 합니다. 어렵기만 한 현대미술 전시가 아니라 사랑과 즐거움이 넘쳐 평소 미술을 즐기지 않으셨던 분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입니다. 아쉽게도 추석 연휴에 전시 <Bodyscape(바디스케이프)>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은 18일(토)과 19일(일) 등 이틀뿐입니다.
☞ 전시 사전예약 페이지 바로가기
■ 이건용 개인전 <Bodyscape(바디스케이프)>
9월 8일(수) ~ 10월 31일(일)
10:00 – 18:00
월요일 휴무
* 추석 연휴 20, 21, 22일 휴무
갤러리현대(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14 갤러리현대)
문의 : 02)2287-3500
온라인
피카프로젝트가 아카이빙 전시회 <이건용과 화상 김수열: 작품과 기록들>을 온·오프라인으로 9월 7일(화)부터 11월 27일(토)까지 동시 개최하고 있습니다.
전시 <Bodyscape(바디스케이프)>가 이건용 작가의 현재와 작품세계에 집중했다면 <이건용과 화상 김수열 : 작품과 기록들>은 이건용 작가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그의 역사를 함께한 화상(畫商) 김수열의 존재와 의의에 주목했습니다.
화상은 작가와 컬렉터를 이어주는 중개자 역할을 담당하며 작가를 후원하여 키워내고, 미술시장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합니다. <이건용과 화상 김수열 : 작품과 기록들>은 작가뿐만 아니라 작가를 후원하며 동행하는 후원자까지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건용의 드로잉과 퍼포먼스 등 실험적인 작품세계를 총제적으로 재조명하고 대표작인 <달팽이 걸음>과 초기 작품을 중심적으로 선보입니다. 작품 외에 사진, 작업할 때 사용했던 도구나 작업복, 소품, 재료 등의 자료를 함께 전시해 작가가 걸어온 길에 보다 몰입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전시 기간 중 화상 김수열과 아트 디렉터 김순응이 참여한 연계 프로그램을 열어 관객들이 작가의 작품세계와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피카프로젝트는 메타버스를 활용해 이번 전시를 온·오프라인 공간에 동시에 열었습니다. 이건용 작가가 궁금하지만 전시장을 직접 찾기 어려운 관람객들은 온라인을 이용하면 됩니다. 비록 오프라인 전시는 쉬지만 온라인 전시를 통해 추석 연휴 기간에도 충분히 전시를 즐길 수 있습니다.
☞ <이건용과 화상 김수열: 작품과 기록들> 온라인 전시 바로가기
■ <이건용과 화상 김수열: 작품과 기록들>
9월 7일(화) ~ 11월 27일(토)
10:00 – 19:00(화~ 금)
10:00 – 18:00(토)
일요일, 월요일, 공휴일 휴무
온·오프라인 동시 진행
* 추석 연휴 휴무
피카프로젝트(서울 강남구 도산대로101길 22 B1, 피카갤러리)
문의 : 02)543-6001
정동
삼청동에서 전시를 관람한 후 근처의 맛있는 식당과 카페를 여유롭게 즐겼다면 소화를 위해서라도 걸음을 옮겨야 할 곳이 바로 정동입니다. 삼청동에서 광화문 광장을 거쳐 30분 정도 걸어 내려오면 정동이 나오는데요. 지하철 시청 역 부근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정동에는 덕수궁이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지금 야외전시 <덕수궁 프로젝트 2021>가 열리고 있는데요. 추석 연휴에도 휴관없이 개관하고 수요일, 토요일에는 9시까지 야간 개장을 실시하고 있어 선선한 날씨에 가볍게 산책하며 둘러보기에 좋습니다.
오는 11월 28일까지 열리는 이번 야외전시는 2012년 시작해 올해 네 번째로 개최하는 <덕수궁 프로젝트>입니다. <덕수궁 프로젝트 2021>에는 현대미술가(권혜원, 김명범, 윤석남, 이예승, 지니서), 조경가(김아연, 성종상), 애니메이터(이용배), 식물학자·식물세밀화가(신혜우), 무형문화재(황수로) 등 다양한 분야와 세대의 작가 9팀이 참여해 ‘정원’을 매개로 덕수궁의 역사를 돌아보고 정원의 의미와 가치를 살핍니다.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 중 하나는 중요 무형문화재 제124호(궁중채화) 황수로가 참여해 일제의 강점으로 맥이 끊긴 채화 문화를 되살렸다는 것입니다. ‘채화(彩華)’는 조선시대 궁중공예의 정수이자 정원문화의 하나로서 일반 관람객들이 잘 알지 못했던 우리 문화인데요. 비단, 모시, 밀랍, 송화 등으로 만든 꽃인 채화는 왕조의 불멸을 염원해 만든 ‘시들지 않는 꽃’으로 생명존중 사상을 담았을 뿐만 아니라 고종 즉위 40주년을 경축한 진연(進宴)을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추석 연휴 가족과 함께 덕수궁 야외 전시를 방문해 잊혀졌던 우리 문화를 함께 감상하고 향유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 알찬 추석 연휴가 되지 않을까요?
■ 덕수궁 프로젝트 2021 : 상상의 정원
9월 10일(금) ~ 11월 28일(일)
10:00 – 18:00
10:00 – 21:00(수, 토요일)
월요일 휴무
* 추석 연휴에는 휴무 없이 개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서울시 중구 세종대로99)
문의 : 02)2022-0600
삼성동
추석 나들이 소개의 마지막은 삼성동입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장소들과 다소 거리가 멀어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강남 고속버스터미널과 가까워 고향을 찾는 길에도,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입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발걸음은 조급해지기 마련입니다. 고향을 찾느라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셔야 할 분들을 위해 옥외 전광판에서 상영하는 작품을 소개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MMCA VR 미술한류 영상시리즈 제1편 이수경의 <달빛 왕관_신라 금관 그림자>를 지난 15일부터 연말까지 서울 코엑스 대형전광판 케이팝스퀘어에서 상영하고 있습니다.
한국미술의 진면목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로 담아낸 3분 영상 시리즈입니다. 첫 작품으로 등장한 이수경 작가의 신작 <달빛 왕관_신라 금관 그림자> 영상은 업로드 20일 만에 19만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조회수의 대부분이 해외 접속자로 해외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추석 연휴 기간에는 전광판에 보름달이 함께 뜰 예정입니다. 하늘에 뜬 실제 보름달과 함께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진풍경이 삼성동 옥외 전광판에서 펼쳐집니다. 직접 관람하기 어려운 분들은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에서 관람 가능합니다.
☞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바로가기
■ <MMCA VR 미술한류 영상시리즈 제1편>
9월 15일(수) ~ 12월 31일(금)
삼성동 코엑스 케이팝스퀘어
올댓아트 구민경 인턴
권재현 전시팀장
allthat_art@naver.com
자료 및 사진 ㅣ갤러리현대, 피카프로젝트, 국립현대미술관, 올댓아트 구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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