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역사에서 소외돼 온 이탈리아의 17세기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가 수년 전부터 미술 시장에서 크게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젠틸레스키는 남성 화가들이 주류를 장악하고 있던 당시 미술계에서 여성 예술가로선 드물게 사회 통념에 당당히 도전했던 예술가였습니다. 그의 그림 속 여성은 더 이상 기존 질서의 단순한 희생자가 아닙니다. 억울한 피해자에 머무는 게 아니라 억압에 저항하고 금기를 깨는 ‘영웅’으로 캔버스 전면에 등장합니다.
화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딸로 태어난 그는 20세까지 예술가로서 탄탄한 경력을 쌓았습니다. 극적인 조명을 사용하는 그림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18세 때 부친의 동료이자 자신의 미술 스승이기도 했던 ‘아고스티노 타시’한테 당한 성폭행은 그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이후 로마에서 열린 공개 재판에서도 젠틸레스키는 갖은 수모와 고문을 견뎌야 했습니다. 이후 그는 젊은 여성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폭력을 강렬하면서도 암시적으로 작품에 담았습니다.
올해 초, 런던 국립 미술관은 젠틸레스키의 그림 30여 점을 전시하는 거대한 회고전을 처음으로 열었습니다. 젠틸레스키를 주제로 열린 전시회 중에선 가장 큰 규모 중 하나였습니다. 전시회 개최를 앞두고 런던 국립 미술관은 2018년 7월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로 그려진 자화상’을 360만 파운드(470만 달러)에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비평가와 미술 사학자들의 (젠틸레스키를 향한) 높은 관심은 최근 몇 년 동안 미술 시장에서 어떤 여성작가들도 좀처럼 도달하지 못했던 작품 가격을 형성하는 등 젠틸레스키의 부상을 이끌었습니다. 젠틸레스키의 작품은 너무 인기가 많아서 미술품 거래 시장에 좀처럼 나오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의 알려진 그림들 중 약 40점만을 전 세계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한 손에 칼을 들고 자신을 찌르려고 하는 여성을 묘사한 그림 ‘루크레티아’는 2019년 파리에서 530만 달러라는 기록을 세우며 팔렸습니다. 이후로도 그의 작품은 국제 경매 시장에서 줄곧 상승세입니다.
뉴욕에 기반을 둔 미술 잡지 ‘아트뉴스’가 최근 보도에서 젠틸레스키 작품 중 최고 경매 가격을 기록한 작품 다섯 점의 목록을 추렸습니다.
1. 루크레티아(1627년경, 530만 달러)
프랑스 리옹의 한 소장가가 40년 동안 보유하고 있던 작품입니다. 2019년 파리의 한 경매장에서 추정가의 무려 8배를 넘는 530만 달러라는 놀라운 가격에 팔렸습니다. 성폭행을 당한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로마의 한 귀족 여성을 그린 작품인데요. 지난 4월,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로스앤젤레스의 게티 박물관입니다. 판매 가격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로 그려진 자화상(1615~17년경, 210만 달러)
스승에게 성폭행을 당하고도 재판 과정에서 여성을 향한 차별과 편견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끔찍한’ 시간을 겪어야 했던 젠틸레스키가 로마를 떠나 피렌체에 정착해 그린 작품입니다. 기원전 4세기, 철못이 박힌 수레에 묶여 고문을 당했던 성녀 카타리나의 모습으로 자신을 묘사했습니다. 2017년 12월, 추정치의 4배가 넘는 가격(210만 달러)을 치르고 파리의 한 경매상이 구입했습니다. 지금은 영국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 중입니다.
3. 루크레티아(1630년경, 216만 달러)
‘루크레티아’라는 제목의 또 다른 그림이 201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호주의 한 수집가에게 추정가의 세 배가 넘는 가격인 188만 유로(216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19세기 중반 유럽의 한 수집상 손에 넘어간 이후 한 번도 일반에 공개된 적 없던 작품이었습니다.
4. 갈라테아의 승리(1650년경, 210만 달러)
2020년 10월 크리스티의 고미술품 경매에서 추정치(100만 달러)의 2배인 210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재정난에 봉착한 뉴욕의 브루클린 미술관이 내놓은 16세기 독일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의 작품 ‘루크레티아’가 420만 달러에 팔린 데 이어 지난해 두 번째로 높은 가격에 팔린 고미술품이었습니다. 이는 젠틸레스키의 작품이 오랫동안 고미술품 시장을 장악해온 남성 아티스트들과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5. 엑스터시의 막달라 마리아(1623년경, 117만 달러)
분실한 것으로 알려졌던 젠틸레스키의 작품 ‘엑스터시의 막달라 마리아’가 2014년 6월 파리의 소더비 경매에서 추정가의 거의 세 배 가격인 117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 작품과 관련해서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기록은 20세기 초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흑백 사진이었습니다. 소더비 측은 이 그림의 출처와 관련해 개인 소장가들이 수 세기에 걸쳐 보관하고 있던 작품이라고 당시 밝힌 바 있습니다.
올댓아트 권재현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원문 출처 ㅣThe Most Expensive Works By Artemisia Gentileschi Ever Sold at A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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