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갤러리 탐방 두 번째 순서로 오늘은 가고시안, 더 페이스와 더불어 뉴욕의 3대 화랑으로 불리는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 갤러리 편입니다. 데이비드 즈워너는 지난 회에서 다뤘던 가고시안 갤러리와 여러모로 비슷하거나 대비되는 면이 많습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2012년 세계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게이징 볼’ 연작, ‘토끼’ 조각상 등을 제작하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로 유명한 미국 작가 제프 쿤스(1955년生)와 어린 시절 정신병을 앓은 병력과 뉴욕 미술계에서 활동하면서 동양인 여성 작가로서 받은 차별과 편견 등의 경험을 거대한 ‘점박이’ 호박 조형물 등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일본의 조각가, 설치미술가인 쿠사마 야요이(1929년生), 대형 설치 조각 작품으로 유명한 미국 작가 리처드 세라(1939년生)가 한꺼번에 잇따라 소속 갤러리를 옮기거나 전시를 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들이 모두 세계 최고로 꼽히던 가고시안 갤러리 전속작가였으니 세간의 이목은 더욱 쏠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이 향한 곳은 1979년 문을 연 가고시안에 비하면 ‘신생’ 갤러리나 다름 없는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였습니다. 이들이 한꺼번에 가고시안 사단을 떠나 데이브드 즈워너에 새로 둥지를 튼 명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고시안의 작가 관리에 뭔가 적신호가 켜진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반대로 데이비드 즈워너의 작가 관리 시스템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요.
1993년 미국 뉴욕의 소호 지역에서 작가 4명과 함께 처음 문을 연 데이브드 즈워너 갤러리는 단기간에 빠른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뉴욕 맨하탄 지역에만 지점 네 곳을 두고 런던(2012년)과 홍콩(2018년), 파리(2019년)에도 지점을 내며 100여 명 이상의 직원들이 일하는 다국적 글로벌 화랑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가고시안 갤러리와 더불어 유럽과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뮤지엄급 전시를 열 수 있는 세계 최정상급 현대미술 갤러리 중 하나로 꼽힙니다. 제프 쿤스와 리처드 세라, 쿠사마 야요이 외에도 미니멀리즘의 대표 작가들인 도널드 저드(1928~1994), 미니멀한 조각을 만드는 존 맥크레켄, 프레드 샌드백 등을 비롯해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영국 테이트 브리튼의 터너상을 수상한 독일 사진작가 볼프강 틸만스, 벨기에 출신 회화작가 프란시스 알리스, 오스카 뮤릴로, 뤼크 튀이만, 고든 마타-클락, 요셉 앨버스, 스탄 더글라스, 토마 압츠, 댄 플래빈, 이사 겐즈켄, 온 카와라, 신(新)라이프치히 화파의 대표 작가 네오 라우흐, 미국 작가인 앨리스 닐, 소형 페인팅 시리즈로 유명한 리사 유스카이바게, 수잔 프레콘, 바바라 크루거, 영화 제작자로도 활동 중인 벨기에 작가 미카엘 보레만스, 미디어 아티스트 다이애나 세이터 등 전속작가의 규모도 70명을 넘어섰습니다.
이중에는 20세기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고(故) 윤형근(1928~2007) 화백도 포함돼 있습니다. 1970~80년대 작품을 소개하며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2017년 첫 전시에 이어 2020년 1월 17일에도 뉴욕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가 그의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가고시안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한 배경으로 투기 수요로부터 작품을 보호하고 당장의 수익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작가와 갤러리의 동반 성장을 도모하는 데이비드 즈워너의 ‘아티스트 우선주의’ 시스템과 자신만의 독자적 작품세계를 구축한 작가를 찾아내는 안목, 상업성보다 예술적 가치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 철학 등을 꼽는 평론가들이 많습니다. 작가들의 가족들과도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는 등 소속 작가들이 마음 놓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87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순수한 화풍과 경쾌한 색채로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는 영국 출신 작가 로즈 와일리도 데이비드 즈워너의 전속작가로 이름을 올렸네요.
가고시안과 대비되는 데이비드 즈워너의 또 다른 특징을 꼽으라면 ‘젊은 감각’입니다. 갤러리를 이끌고 있는 데이비드 즈워너(1964년生)는 아직 50대 중반입니다. 한창 현장을 열정적으로 왕성하게 누빌 나이라는 거지요. 가고시안 갤러리의 오너 래리 가고시안의 나이가 70대 중반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데이비드 즈워너는 여타 대형 갤러리와 비교해 회화와 조각 등은 물론이고 설치미술, 사진, 영상, 퍼포먼스 등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젋고 진취적인 작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육성하는데 탁월한 감각을 자랑합니다. 실험적인 전시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독일 쾰른에서 갤러리를 운영했던 부친(루돌프 즈워너)의 영향(※할아버지도 아트 딜러였다고 합니다)으로 어릴 때부터 다양한 미술품을 보면서 예술적 소양을 체득했던 데이비드는 미국 NYU(뉴욕대) 유학(※이때까지만 해도 미술보다는 음악에 더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을 거쳐 불과 29살의 나이에 뉴욕 소호에 갤러리를 오픈하며 본격적으로 미술 분야에 뛰어들었습니다.
그의 아들(루카스 즈워너) 또한 2014년 문을 연 ‘데이비드 즈워너 북스’에서 편집 디렉터로 일하며 전속작가 도록 및 각종 아트 전문 서적 발간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아마존 같은 대형 인터넷 서점의 약진과 인쇄 매체의 쇠락으로 출판 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유명 아트갤러리들이 아트북 출판 사업에 직접 뛰어드는 이유는 출판업을 통한 이윤 창출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 한번 영입한 우수 작가들을 다른 갤러리와 큐레이터들에 뺏기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굵직한 전시 개최에 맞춰 갤러리가 직접 작가의 이력과 작품세계를 담은 책자를 참신한 디자인으로 ‘화끈하게’ 만들어 주니 작가와 그 가족들로선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지요.
데이비드 즈워너가 한국 미술 시장에서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건 2018년이었습니다. 2003년부터 해마다 가을이면 한국화랑협회 주최로 열리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 당시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가 창립 후 처음으로 참가했거든요. 데이비드 즈워너 홍콩의 제니퍼 염 디렉터는 당시 기자 간담회에서 “판매보다는 즈워너 갤러리의 작가와 작품을 알리는 게 목표”라며 “이번 키아프를 통해 한국 미술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할 뿐만 아니라 부스를 찾는 새로운 컬렉터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첫 KIAF 참여 소감과 각오를 밝혔는데요. 행사 기간 내내 프란시스 알리, 도널드 저드, 리처드 세라 등 작가들의 작품들은 국내 미술 애호가들의 발길을 끌어당기며 엄청난 화제를 뿌렸습니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전 세계 미술시장이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한국 미술 시장은 올 초부터 살아나면서 해외 유명 갤러리들의 서울 분점 개설과 해외 유명 작가 및 작품들의 방한도 잇따르고 있는데요. 최근 열린 ‘2021 키아프 서울’은 그 결정판이었고요.
2018년 키아프 참가 이후 소식이 잠잠한 데이비드 즈워너가 언제 어떤 형태로 한국 미술시장의 문을 두드릴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하겠습니다.
올댓아트 권재현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참고 ㅣ데이비드 즈워너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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