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작품은 한순간에 탄생하지 않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예술이 꽃 필 수 있도록,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중장기 창작지원을 통해 공연예술 단체를 최대 3년간 지원합니다. 올댓아트가 그 단체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요즘은 잘 ‘노는’ 것이 대세다. 너도 나도 어떻게 하면 더 잘 놀 수 있는지 궁리하며, 누가 더 재밌게 놀았는지 전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 한술 더 떠 ‘노는 땅’까지 직접 마련해 노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극단 ‘놀땅’의 멤버들이다. 극단 ‘놀땅’은 연극에 사로잡혀 무작정 연습실까지 만든 최진아 연출가로부터 시작됐다. 연습실에 둘러앉아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이것저것 하며 웃고 떠들다 보면 어느새 또 극단 ‘놀땅’만의 작품 하나가 완성돼 있었다.
2006년에 창단한 극단 놀땅은 ‘흥미로운 시대’의 이야기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연극 <1동 28번지, 차숙이네>를 시작으로 놀땅은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계속해서 던져줬다. <선을 넘는 자들>에선 탈북자의 삶을 이야기하더니 <아라베스크>로는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심사 과정 이야기를 담았다.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제기해온 극단 놀땅이 이번 중장기창작지원사업 프로젝트로는 ‘환경’과 ‘이주민’ 이야기에 집중했다. 지난 2020년엔 ‘흥미로운 시대’의 일환으로 빠질 수 없는 ‘코로나19’의 이야기까지 담아낸 연극 <널 만나러 무작정 나왔어>를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극단 놀땅은 여전히 연극을 알기 위해 세상을 공부하고 있다. 또한 공부에 그치지 않고 변화의 실천까지 하고 있다. 환경 문제를 다루는 연극을 올린 이후엔 극단 회식 때 육류를 소비하지 않으며, 분리수거에도 열심이다. 세상의 한 조각을 가져와 좋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극단 놀땅의 최진아 연출가, 배우 이준영·송치훈을 만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극단 놀땅을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최진아 연출: 처음에는 쑥스러워서 연극을 혼자 만들었어요. 그런데 조금씩 더 공식적인 모습으로 연극을 만들고자 해서 극단 ‘놀땅’을 만들었어요. 모집 공고를 통해 3명의 단원을 만났는데 그때 연습실 이름을 ‘놀땅’으로 지었어요. 저희는 연극이 ‘노는 거’라고 생각해서 ‘노는 땅’으로 정한 거였는데요. 나중에 찾아보니까 ‘놀땅’이 ‘날땅’도 될 수 있대요. 다듬지 않은 날바닥, 누군가 손대지 않은 땅이라는 뜻이죠. 저희도 연극으로 날 것의 무언가를 재창조하니까 뜻에 더 힘이 실렸어요.
이번 중장기 창작지원을 통해 ‘당신은 흥미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요.
최진아 연출: 이 시대는 항상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줘요. 또 인간들은 원래 살던 대로 살지 않고 끊임없이 외부의 자극을 받아 변화하고요. 저는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늘 궁금해져 공부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 사업을 통해 생각만 해왔던 것들을 본격적으로 시도해 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단원들과 함께 주위를 둘러보면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거기서 쟁점들을 뽑아내 서로 공유하면서 연극을 만드는 거죠. 이렇게 같이 공부하듯이 연극을 만들어 나가니까 공동창작이라는 형식이 나왔어요. 기존에 해왔던 연극들과 그 과정이 확연하게 다르더라고요.
선정한 주제들을 단원들과 어떤 방식으로 함께 공부했나요?
이준영 배우: 우선 연출가님이 주제를 던져 주시면 저희가 다 함께 모여서 공부하는 방식이었는데요. 조금 더 깊게 배우기 위해서 여러 선생님들을 직접 모시기도 했어요. 단원들끼리 워크숍을 열어 특정 주제들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기도 했고요. 많이 배울수록 표현과 생각이 다양해지는 게 느껴졌어요. 개인적으로도 앞으로의 연기 인생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자산을 얻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다면 여러 이슈 중에서도 환경 문제와 이주민을 선택해 다루고자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최진아 연출: 제가 집이 시골이에요. 보통 서울에 살면 집 밖에 놓인 쓰레기들이 수거가 돼서 눈앞에서 없어지잖아요. 그런데 시골에선 제가 만든 쓰레기들이 마당에 쌓여요. 그게 직접 눈앞에 쌓여가는 과정을 보니까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레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이게 또 우리가 만든 소비문화와도 큰 관련이 있더라고요.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문제점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에 심각성을 깨닫고 조금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중장기 창작지원 사업을 지원할 때쯤에 ‘난민’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많이 쏟아졌어요. 저도 개인적으로 탈북민들에 대한 연극을 한 직후였고요. 그렇게 ‘난민’과 ‘탈북민’의 문제가 만나 ‘이주민’도 하나의 주제로 뽑게 됐습니다.
연극을 준비하면서 진행한 워크숍을 통해 실생활에서 변화를 겪기도 했나요?
최진아 연출: 환경 문제를 배경으로 한 연극 <하늘 흙 물 탄소 플라스틱 맑음>을 준비하는데 단원들이 직접 기사를 찾아왔었어요. 그때 기사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환경 문제’에 대한 감성이 모두 다를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누군가는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 깜짝 놀라 실제로 고기를 못 먹게 되기도 했는데 또 누군가는 별다른 위기감을 못 느끼기도 하더라고요. 하나의 사회적인 문제를 인지하는 데 이렇게나 반응과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걸 개인적으로 알게 됐고, 나아가 이런 인지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연극에 담을 수 있었어요.
이준영 배우: 실제로 저희 극단은 환경에 대한 연극을 준비하면서부터 회식 때는 육류를 안 먹기로 했어요. 중장기 창작지원 사업을 진행하는 3년 만이라도 회식 때는 고기를 피해보자고 정한 거죠. 가장 피부로 와닿는 변화는 이런 곳에서부터 오더라고요. 사실 직접 해보니까 힘들기는 해요 (웃음). 회식 메뉴가 다양해야 하는데 고기를 못 먹으니까 항상 한정적이고요. 그밖에 분리수거나 재활용을 원래보다도 훨씬 더 신경 쓰면서 하게 됐어요.
코로나19 시대를 반영한 연극 <널 만나러 무작정 왔어>도 눈에 띄어요. 어떻게 나오게 된 제목인지도 궁금하고요.
송치훈 배우: 제목을 공모해서 만들었는데 감사하게도 제 아이디어가 발탁됐어요. 이 연극은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담고 있어요. 저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실제로 연극을 올리려고 하는 배우들의 이야기이고요. 갑자기 들이닥친 인생의 장벽을 만났을 때 각각의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있는데요. 표면적으로는 코로나19가 큰 장벽인 듯 보이지만 사회적 시선, 실패, 실직, 이별 등이 하나의 장벽이기도 해요. 제목은 단순히 저 당시 친구들을 만나지 못해 답답했던 제 생각을 담았어요. 모두가 답답하기만 이 상황 속에서 어떤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했는데, ‘무작정’이라는 단어와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튀어나왔죠. 단번에 떠오른 아이디어였는데 단원들이 좋아해 주더라고요.
이 연극에 코로나19로 실제 겪었던 경험들을 녹여냈다고 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이었나요?
이준영 배우: 실제로 연극을 준비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어려움들을 연극에 담았어요. 코로나19가 워낙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정말 많았는데요.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연극이 올라가기 3-4일 전에 공연이 취소됐을 때예요. 저희가 공연을 자체적으로 취소한 게 아니라 극장 측에서 대관을 취소한 거였어요. 이런 일을 처음 겪기도 하고 너무 무방비 상태였어서 그때 배우들의 표정이 다 기억에 남아요. 서로 눈치만 보면서 우리가 과연 연극을 올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던 바로 그 순간을 연극에 담았어요.
연극 <널 만나러 무작정 나왔어>는 2020 SPAF 초청 공연작으로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는데요. 온라인 공연이 낯설지는 않았나요?
송치훈 배우: 솔직히 말해서 온라인 공연이 달갑지는 않았어요. 연극은 비로소 관객을 만나야 완성이 된다고 생각해서요. 그런데 어느 순간엔 그저 준비된 작업을 관객에게 전할 수 있다는 자체에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이준영 배우: 놀땅은 항상 주제나 표현에 관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극단이예요. 연극 <널 만나러 무작정 나왔어>로 처음 온라인 공연을 준비하게 됐는데, 저는 또 다른 방식의 연극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체품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표현 방식이 된 거죠. 단순하게 카메라에 연극을 담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영상으로라도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한 것 같아요.
최진아 연출: 저도 온라인 공연은 기존의 연극과는 아예 다른 새로운 장르라고 생각해요. 연극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장성이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어요. 화면을 통해 새롭게 탄생할 연극의 장면들이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했고요. 또 앞으로 온라인 공연이 한층 더 발전하기 위해선 무대 위에 올라가는 공연들의 특성을 반영한 동영상 기술이 함께 발전해야 할 것 같아요.
최진아 연출가님은 연출 외에도 극작 그리고 극단 대표까지 맡고 계세요. 어떤 작업을 할 때 극단 이름처럼 가장 잘 ‘놀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최진아 연출: 연출이요. 극작의 쾌감이 엄청나기도 해요. 깊게 파고들어 무언가를 창조하는 작업이니까요. 그런데 그만큼 외로워요. 또 극단 대표는 조직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또 다른 감성이 필요하고요. 하지만 연출만큼은 배우들과 함께 해요. 저는 함께 모여서 작품을 분석하고 생각과 표현을 확장하면서 작업을 해야 진정으로 ‘놀고 있다’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중장기 창작지원 사업은 최대 3년까지 지원해 준다는 특징이 있어요. 현실적으로 어떤 도움이 됐나요?
최진아 연출: 3년 동안 고민을 해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우선 가장 좋았죠. 하나의 주제를 오랫동안 붙잡고 이걸 심화해 연장할 수 있는 감성과 힘도 생겼고요. 작품 외로는 단원들의 역량 강화에 큰 도움이 됐어요.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배우 훈련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었어요. 단원 모집도 가능했고요. 또 연극은 세상의 한 조각을 무대에 올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세상의 기저에 자리 잡은 정치와 경제를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걸 워크숍으로 채워 나갈 수 있었어요.
2021년 극단 놀땅의 향후 계획도 알려주세요.
최진아 연출: 7월부터 경제와 관련한 연극을 하나 올릴 예정이에요. 또 가을에는 히말라야 설산의 눈이 녹고 있다는 뉴스에서 영감을 얻은 환경 문제의 연극을 준비 중입니다. 얼마 전에는 연출부에 들어온 단원이 재일교포 북송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 주제도 흥미롭게 느껴져서 좀 더 구체적인 워크숍을 계획 중에 있어요.
극단 놀땅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송치훈 배우: 개인적으로는 놀땅과 오랫동안 작업하고 싶어요. 이유는 간단해요. 이 극단과 함께 하는 연극이 다 즐거워요. 또 작업하는 대부분의 날들이 이렇게 치열했으면 좋겠어요.
이준영 배우: 놀땅에 들어온 지 15년이 넘었는데 그때 이곳에서 처음으로 ‘연극의 맛’을 알았어요. 전에는 서사 중심의 연극만 떠올리며 무대에서 연기하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마주한 순간과 장면의 확장, 공간의 이동 등 연극을 바라보고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은 참 다양하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오랜 시간을 두고 계속해서 놀땅에서 연극하고 싶어요. 이렇게 쭉 작품들 하나씩 배워가면서요.
최진아 연출: 가장 큰 목표는 그냥 좋은 연극을 만들고 싶어요. 추상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이 연극 진짜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작품 있잖아요. 예전에는 작품을 만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지에 대해선 생각을 안 했었어요. 그런데 요즘엔 우리가 만든 연극을 더 많은 사람이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올댓아트 강나윤 인턴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공동기획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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