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김선영·김우형 부부는 뮤지컬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스타 부부입니다. 2006년 <지킬앤하이드>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2012년 결혼했습니다. 소문난 ‘잉꼬부부’였지만 결혼 이후 같은 작품에 출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요. 올해 두 배우가 같은 작품에, 그것도 부부 역할로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두 배우가 이번에 함께 하는 작품은 뮤지컬 <하데스타운>. 201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어 토니 어워즈 8개 부문을 수상한 수작이죠.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에서 두 배우가 맡은 역할은 저승의 왕 하데스와 왕비 페르세포네입니다. 뮤지컬에선 하데스를 권력에 취한 독재자이자 자본가로, 페르세포네는 노래와 춤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표현했는데요. 권태에 빠진 이 중년 부부가 사랑을 되찾아가는 과정은 작품의 주요한 감동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실제 부부다운 끈끈한 호흡으로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배우 김선영과 김우형. 두 사람을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2011년 <지킬앤하이드> 이후 10년 만에 부부가 함께 무대에 서고 있는데요.
김우형: 되도록 같은 작품 하는 걸 피해보자고 했어요. 아무래도 불편할 것 같고 보는 사람들도 몰입에 방해될까 걱정됐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품을 같이 하는데 생각보다 편하고 좋았어요.
김선영: 기대도 되면서 우려의 마음도 있었죠. 연습 분위기를 해치면 안 되니까요. 그런데 막상 연습실에 가니까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들더라고요. 그냥 동료로만 보였어요. 저희만 그런 게 아니라 다행히 다른 배우들도 “부부로서 함께 연습하는 게 아니라 김선영 배우, 김우형 배우로서 연습하는 느낌”이라고 하더라고요. 걱정했던 일은 생기지 않고 좋은 시너지를 냈던 것 같아요.
작품 속에서도 부부 역할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죠. ‘케미’가 남다르다는 반응이 많아요.
김선영: 저희가 연애와 결혼 생활을 합치면 거의 15년이더라고요. 그 시간을 보내고 나서 이 역할을 만나니까 남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하루는 저희 둘이 연습을 하는데 정작 뒤에서 지켜보던 후배들이 더 감동을 받는 거예요. 뒤에서 “찐이다, 찐이다” 하더라고요. (웃음) 관객분들 중에서도 저희의 활동을 오래 봐오신 분들이 많잖아요. 저희가 무대에서 만나는 모습을 보는 데서 오는 묘한 게 있나 봐요.
김우형: 젊은 부부가 아닌, 저희와 결이 비슷한 부부 역할이라 다행이죠. 신들이긴 하지만, 중년의 부부가 권태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인간적이에요. 저희와 비슷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보신다면 공감이 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데스타운>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브로드웨이에서부터 화제였던 작품인데, 첫인상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김우형: 선영 씨가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고 알고 있거든요. 선영 씨가 한다니까 저는 생각도 못 했던 작품이었죠. 그런데 작품이 너무나 훌륭하고 세련된 거예요. 제게도 제의가 들어왔을 때 하겠다고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한 도전이자 용기가 필요했던 작품이었어요. 두렵고 의심도 많았죠.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좋은 반응을 보내주셔서 놀랐고 기뻤어요. 생각지도 못 했던 작품이 운명처럼 와서 큰 선물이 된 것 같아요.
김선영: 이 작품에 대해 듣긴 들었지만 정확히 알고 있는 건 아니었어요. 제의가 들어온 뒤에 영상을 찾아봤더니, 재밌더라고요. 페르세포네뿐만 아니라 하데스, 헤르메스까지 캐릭터 자체가 독보적이잖아요. 이런 캐릭터를 한국 배우들이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어요.
특히 페르세포네는 신화 속 가녀린 ‘봄의 여신’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난 캐릭터라 흥미로웠어요.
김선영: 신화 속 인물들을 요즘은 이런 시각으로도 볼 수 있구나, 하는 상상력을 보여줘서 재밌었죠. 에우리디케도 마찬가지고요. 여자 캐릭터들이 우리가 알고 있던 가녀리고 소극적인 인물로 표현된다면 캐릭터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어요. 이런 여자 캐릭터는 만나기가 쉽지 않죠.
페르세포네의 술 취한 연기가 정말 실감 나던데요. 다른 페르세포네 배우들에 비해 ‘알코올 농도’가 높아 보였어요.
김선영: 그러려고 계산한 건 아닌데 그렇게 되네요. (웃음)
김우형: 둘이 집에서 술 잘 마시는데요. 가끔 많이 마시면 그렇게 춤춰요. 더 놀라운 건 저도 춘다는 거죠. (웃음)
김선영: 둘 다 와인을 좋아해서, 가끔 와인 한 잔씩 하면서 요즘 있었던 일도 얘기하고 그래요.
김우형 배우는 지금까지 <아이다>의 라다메스나 <고스트>의 샘처럼 마초적이면서도 헌신적인 인물들을 많이 연기했는데요. 하데스는 그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많이 다른 인물이에요.
김우형: 완전히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하데스도 한때는 오르페우스처럼 순수한 열정을 가진 ‘로맨틱 가이’였을 수 있어요. 그런데 강력한 힘과 권력을 누리면서 변해간 거죠. 1막에서는 하데스의 신적인 면모를 표현하려고 테크닉적인 연구를 많이 했어요. 연출가와 연습할 때 “하데스는 굵은 철근을 꽂아놓은 듯한 강인한 움직임과 에너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했어요. 반면 2막에서는 이 사람도 순수했던, 인간의 마음을 가진 신이란 걸 보여주기 위해 확실하게 무너뜨리죠.
<하데스타운> 연습 과정에서 새로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김우형: 음역대죠. 극도의 저음. 사실 악보만 보면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런데 오리지널 배우인 패트릭 페이지는 작곡가가 쓴 악보보다 한 옥타브를 더 낮춰서 불렀대요. 저는 90%는 악보대로, 10%는 낮춰서 부르고 있는데, 그럼에도 테너 음색인 저에게는 굉장히 낮은 음이긴 해요. 그래도 하데스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가 이 저음이기 때문에 많은 연구와 노력을 했습니다.
김선영: 핫한 최신작이고 라이선스잖아요. 이런 경우엔 보통 깐깐하게 ‘바이블’을 지키기를 원하는데, 이 작품은 희한하게도 굉장히 열려있었어요. 정답을 정해놓기보다는 배우마다의 개성과 지향점을 다 받아들여줬죠. 저를 투영한 페르세포네가 나오기를 바란다고 했어요. 2막 ‘Our Lady of the Underground’에서도 안무가 정해져 있지 않았어요. 꼭 이 박자에서 이런 동작을 해야 한다는 게 없었죠. 각자 버거운 동작이 있으면 바꿔주기도 하고, 연습 과정이 유연해서 신선했어요.
<하데스타운>은 여러 방향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에요. 기후변화, 자본주의, 빈부격차에 대한 사회적인 이야기로 읽는 사람도 있고, 예술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는데요. 두 분은 이 작품의 어떤 지점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나요?
김우형: 저는 굉장히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기본 바탕은 사랑 이야기거든요. 용기와 희망을 갖고 우린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 용기와 희망을 갖기 위해선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 아주 명확하고 쉬운 이야기죠.
김선영: 젊은이들이 한 치 앞도 볼 수 없고 희망을 갖기도 어려운 세상이에요. 그렇다고 우리가 안 살 순 없잖아요. 어렵고 힘든 이 시대에 무엇을 쥐고 살아야 하는가. 하데스처럼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장벽을 쌓고 일만 하며 사는 것이 답일까.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이 있어야 살 수 있는가. 나약하고 작은 존재인 인간이 용기를 내고 앞으로 헤쳐 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우리는 끝없이 연대해야 한다. 혼자 있을 땐 너무 무섭고 힘들지만, 함께 하면 내일을 살아가고 새로운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이런 근원적인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에요. 사실 다들 알고 있는 얘기거든요. 기술적으로 받쳐주지 않으면 뜬구름처럼 끝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무대, 조명, 음악이 이야기와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관객분들이 공감해 주시는 것 같아요.
두 명의 페르세포네, 세 명의 하데스가 번갈아 무대에 오르고 있는데요. 각자의 느낌이 어떻게 다른가요?
김우형: 완전히 달라요. (박)혜나는 더 여리고 소녀 같아요. 한때 저에게 더 많이 기댔을 것 같은 페르세포네예요. 선영 씨는 생각보다 더 강해요. 무서운 여자예요. (웃음) 술에 취해 있다가도 남편을 지키려고 하거든요. 저는 1막 엔딩의 “한 잔 할 사람?” 대사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느껴져요. 하데스가 마치 히틀러처럼 연설을 하는데, 페르세포네의 가치관은 그와 다르잖아요. 그를 지켜보는 게 힘들고 괴롭지만, 이런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주고 남편을 감싸주는 거죠. 농담처럼 말하지만 씁쓸하고 슬픈 대사예요.
김선영: 페르세포네의 가사 중 ‘너무 변해버린 그대’란 가사가 있는데, 가장 극단적으로 변한 것 같은 사람이 양준모 씨예요. 어쩌다 저 사람이 저렇게 됐지 싶어요. 너무 변해서 부러질 것 같은 느낌? 지현준 씨는 너무 자기 세계에 빠져서 고독하다 못해 허우적대는 하데스예요. 자기 연민도 굉장히 강하고요. 우형 씨는 제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피지컬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원체 압도돼요. 너무 근사한데, 그 근사함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울 때도 있어요. 사람들을 고상하게 속이는 모습을 볼 때면 묘한 애증도 느껴지고요.
1막 초반에 무대 2층에서 페르세포네와 하데스가 게임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어요. 어떤 게임인가요?
김우형: 도미노 게임이에요. 우리가 흔히 아는 블록을 넘어뜨리는 게임이 아니라, 미국식 도미노 게임이 있거든요. 우리나라에서 고스톱을 치는 것처럼 가족들이 모이면 하는 게임이에요.
김선영: 뉴올리언스에서 많이 하는 게임이래요. 이 장면을 위해서 룰을 배웠어요. 그런데 이거 할 때도 하데스들 성격이 나와요. 준모 씨는 성격이 급해서 빨리 진행하고, 우형 씨는 답답할 정도로 늦게 두기도 하고요. 현준 씨는 착해서 저한테 맞춰서 해요. 이런 걸 보는 재미도 있어요.
두 분이 같이 공연하던 날 춤을 추는 장면에서 꽃이 떨어진 적이 있었죠. 김우형 배우가 그 꽃을 주워서 무릎을 꿇고 김선영 배우에게 건네는 걸로 수습을 했는데, 그에 대한 관객 반응이 뜨겁던데요.
김우형: 어떡하지 생각하다가 그렇게 했는데, 그걸 또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저는 그냥 떨어진 거 주운 건데. (웃음)
김선영: 이러다가 우리가 일부러 떨어뜨리는 줄 아시는 거 아니야? (웃음) 공연이 끝나고 뭐가 잘못된 건지 둘이 리뷰를 많이 했죠. 여기서 팔을 이렇게 해서 떨어진 거 아닐까 하면서요.
페르세포네와 하데스는 부부이지만 성격은 정반대인데요. 실제 두 분은 어떤가요?
김우형: 아침에 아이 등원시킬 때만 해도 너무 달라요. 선영 씨는 타이트하게 ‘딱딱딱’ 해서 보내는데 저는 급하게 준비하는 걸 싫어해요. 미리 준비해놓는 스타일이죠.
김선영: 저는 ‘잠을 30분이라도 더 자자’ 주의거든요. (웃음) 그런데 이것도 서로 점점 비슷해져 가는 것 같아요. 우형 씨는 갈수록 풀어지고 저는 계획성이 늘었죠.
두 분은 2006년 <지킬앤하이드> 때 처음 만나셨죠. 그때 서로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김우형: 너무나 유명한 선배였고 제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배우였어요. 그런 분이 제가 좋다고 하니 너무 신기했죠.
김선영: 그런데 너무 웃긴 게, 제 팬이라고 해놓고 공연 본 게 달랑 두 개더라고요. (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운명 같은 게, 어느 날 TV를 보는데 김아선 배우가 나왔어요. <유린타운> 중계였는데, 계속 눈길이 가는 거예요. ‘저 사람은 누구지?’ 하고 눈여겨봤어요. 그러다가 <지킬앤하이드>에서 우형 씨를 만났죠. 우형 씨는 그때 지킬 커버였는데, 김아선 배우 동생이라는 거예요. 당시엔 저보다 한참 후배였는데 자꾸 신경이 쓰였어요. 갓 데뷔했는데 속된 말로 쫄지를 않는 거예요. 담대함과 에너지가 범상치 않았어요. ‘뭐지?’ 하면서 시작된 거죠.
부부가 둘 다 배우라는 특수한 직업을 갖고 생활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서로를 위해 두 분이 지키고 있는 약속이나 원칙이 있을까요?
김우형: 딱히 세워놓은 건 없어요. 그런데 어느 정도의 패턴이나 규칙이 자연스럽게 생긴 것 같아요. 오래된 친구라서 그런지 선영 씨가 뭘 원하는지 그냥 알거든요. 그럼 저는 그걸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들어줘요. 선영 씨는 예민하고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는 저를 옆에서 안정적으로 받쳐주고요. 약속한 듯이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죠. 이럴 때 진짜 ‘베프’구나 싶어요.
김선영: 무대와 연습실에서 굉장히 예민한 작업을 하는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일상에서는 최대한 일상의 모습으로 즐겁게 지내려고 해요. 일상에서조차 연습실의 일을 끌고 와서 햄릿처럼 고뇌하면 지쳐서 아무것도 못할 거예요. 그런 균형을 잘 지키려고 하죠.
서로의 출연작 중 가장 인상 깊게 본 작품은 무엇인가요? 그중에서 탐나는 상대의 배역이 있다면?
김선영: 우형 씨가 무대에서 뭘 해도 참 잘 해내고 빛나는 배우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아리랑>이에요. 아기 낳고 얼마 안 됐을 때 초연을 보러 갔거든요. 그전까진 저의 애인이고 남편이었지만, 이제는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우형 씨가 배우로서 무대에 서있는 게 감격스럽고 뭉클하더라고요. 탐나는 배역은 라다메스? 자신의 모든 걸 버리면서까지 한 여자를 사랑하는 모습이 매력 있어요. <레미제라블>의 자베르도 멋있고요.
김우형: 저는 공연을 자주 안 보기로 유명한 배우인데, 가족들의 공연은 다 보거든요. 그런데 선영 씨 공연은 볼 때마다 놀라워요. 그중 한 번 더 해줬으면 한 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예요. 그 작품이 너무 좋거든요. <보디가드>도 보고 놀랐고요. 이걸 한다고 했을 때 놀랐는데, 생각보다 정말 잘했어요. 박수쳐주고 싶었죠. 그러더니 <호프>에서는 또 78세 할머니를 하고. 변화무쌍하게 작품 하는 걸 보면 존경스럽더라고요. 개인적으로 탐나는 건 호프입니다. (웃음)
김선영: 노인 성대모사를 잘하거든요. (조)형균이가 했던 <나빌레라>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마지막으로, 관객들이 <하데스타운>을 꼭 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김우형: 코로나 시국이 된 지 2년 됐습니다. 우리 모두 힘들게 버티면서 살아왔잖아요. 정말 큰 감동과 위로를 받아 갈 수 있는 작품이에요.
김선영: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작품을 꼽자면 주저 없이 <하데스타운>이에요. 봐도 봐도 새로우실 거예요. 아무리 좋은 작품도 3개월을 넘어가면 힘든데, 이 작품은 6개월 동안 전혀 지치거나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아요.
뮤지컬 <하데스타운>
2021.9.7 ~ 2022.2.27
서울 LG아트센터
공연 시간 160분
8세 이상 관람가조형균, 박강현, 시우민, 최재림, 강홍석, 김선영, 박혜나, 김환희, 김수하, 지현준, 양준모, 김우형 등 출연
올댓아트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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