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초연했던 뮤지컬 <엑스칼리버>가 지난 8월 다시 돌아왔습니다. 뮤지컬 <엑스칼리버>는 고대 영국을 이끌었던 아더 왕의 전설을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바위산에서 명검 엑스칼리버를 뽑고 왕이 된 아더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지만, 아더 못지않게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여성 캐릭터들도 있습니다. 바로 아더의 이복누이이자 흑마술사인 모르가나, 그리고 아더의 연인이자 전사인 기네비어인데요. 모르가나는 악역이지만 관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중 하나입니다. <엑스칼리버>의 ‘킬링 넘버’로 손꼽히는 ‘아비의 죄’ 역시 모르가나의 곡이죠. 기네비어는 전쟁 중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무술을 연마하는 전사 캐릭터입니다. 특히 이번 재연에서는 더욱 일관성 있고 주체적인 인물로 바뀌었죠.
작품 속 두 캐릭터는 분위기도 성격도 목표도 정반대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연기하는 배우 장은아와 이봄소리는 현실에선 절친인데요. 뮤지컬 <더데빌>부터 <광화문연가>, <광주>에 이어 <엑스칼리버>까지 함께하며 돈독한 우정을 쌓아왔다고 합니다. 두 배우를 9월의 어느 날, 뮤지컬 <엑스칼리버>가 공연 중인 블루스퀘어에서 만났습니다.
장은아 배우는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모르가나 역으로 출연하고 있는데요. 장은아에게 <엑스칼리버>는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인가요?
장은아: 제가 리딩 때부터 참여했거든요. 그때부터 지금 재연까지 무대에 오른 과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애정이 남달라요.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캐릭터이기도 하고요. 이 작품을 통해 살면서 처음 상을 받아봤어요. 제가 그동안 상복이 없었거든요.
이봄소리 배우는 이번이 첫 <엑스칼리버> 출연인데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이봄소리: 오디션을 봤어요.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으로 영상 오디션을 봤는데, 오히려 안 떨리더라고요. 몇 번이고 다시 녹음해서 보낼 수 있으니까 편안하게 찍었던 것 같아요. 뽑히고 나서는 새로운 제작사와 처음 하는 작업이라 엄청 긴장됐거든요. 그런데 다행히 은아 언니, (민)영기 오빠처럼 EMK 작품을 많이 한 선배들이 저를 잘 이끌어주셨어요. 덕분에 마음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초연에 비해 작품이 정말 많이 달라졌는데요.
장은아: 저는 굉장히 좋은 방향으로 변화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연출을 맡으신 권은아 연출님이 정말 많은 공부를 하셨어요. 작품이 어렵다는 의견이 있어서 관객들에게 더 친절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했죠. 아더 캐릭터도 다듬었고, 모르가나도 아더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조력자가 된 것 같아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초연에 비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가 기네비어의 결말이에요. 초연에는 전사였던 기네비어가 결말에서 수녀가 됐던 반면, 이번에는 마지막까지 전사의 모습을 유지하는데요. 연기하는 입장에선 바뀐 결말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이봄소리: 초연을 함께하진 않았지만 제 친구 (민)경아가 기네비어를 했기 때문에 공연을 봤거든요. 저도 관객 입장에서 ‘기네비어가 갑자기 수녀가 된다고?’ 하고 아쉬웠어요. 아니나 다를까 다른 관객분들이나 창작진분들도 이 지점이 아쉬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초연과 가장 많이 달라진 게 기네비어가 아닌가 싶어요. 연기하는 입장에선 너무 좋았어요. 전사로서의 투지나 굳은 심지를 끝까지 보여줄 수 있어서 연기할 때 편안했고요. 우리가 이런 부분을 불편하다고 느끼게 된 것에 대해 ‘우리 모두의 수준이 올라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요즘 시선이 많이 바뀐 것 같아서 좋아요.
판타지 장르이다 보니 캐릭터들도 여느 뮤지컬과는 다른 점이 많은데요. 캐릭터 연구를 위해 다른 작품을 참고하기도 했나요?
장은아: 저는 초연 때 영국 연출님이 드루이드교와 관련된 책을 많이 보여주셨어요. 그런 책들을 보면서 포즈나 손 모양 같은 것을 많이 연구했어요. 모르가나가 주술을 외우는 동작도 드루이드교에서 실제 기도하는 방법에서 차용했고요. 고개를 꺾는 동작이나 주술 외는 소리도 다 계산된 것들이에요. 사람들이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손톱도 원래는 절대 안 기르는데 이 작품에선 손을 워낙 많이 쓰다 보니 손톱도 기르고 까만 칠을 했어요.
이봄소리: 저는 <엑스칼리버>에 처음 참여하는 거니까 초연에 관한 정보와 자료는 다 찾아봤고요. 기네비어 캐릭터를 연기함에 있어서는 제 스스로 창조한 것이 많지만, 프로필 촬영을 할 때는 영화 <헝거게임>을 참고했어요. 활을 드는 여전사 이미지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는데, <헝거게임>이 딱 적합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활을 드는 자세나 전사의 눈빛을 연구했어요.
기네비어의 경우 액션 장면이 정말 많아요. 랜슬럿과 결투도 하고 활도 쏘고요. 액션 연습은 어땠나요?
이봄소리: 연습 첫 주부터 가장 먼저 한 게 액션이었어요.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 모든 사람이 혈안이 돼서 노력을 기울인 것도 액션이었고요. 특히 여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무술이나 액션을 할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아서 배울 기회도 적잖아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활 쏘는 것도 처음에는 이리저리 날아갔는데, 이제는 저도 (최)서연 언니도 잘 쏘게 됐어요. 액션 합도 예전에는 랜슬럿 오빠들이 맞춰줘서 겨우 호흡을 이어갔다면, 요즘에는 점점 빠르고 과격해졌고요. 역시 뭐든지 하면 할수록 느는 것 같아요.
장은아 배우는 모르가나를 연기할 때 초연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나요?
장은아: 예전에는 유약하게 시작했다가 점점 흑마법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라 강해지는 캐릭터였다면, 지금은 처음부터 소위 말하는 ‘쎈 캐’, ‘또라이’로 가자고 연출님이 말씀하셨어요. 아더가 순진하게 자라온 것에 반해 모르가나는 아무리 갇혀있어도 팬드라곤의 피가 흘러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는 거죠. 이런 차이점이 극명하게 보여서 좋았던 것 같아요. 음악적으로도 여러 가지 소리를 내는 방법을 연구해서 보다 다채롭게 부르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기네비어는 분량에 비해 표현해야 하는 감정이 많아서 연기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더와 랜슬럿에 대한 기네비어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했나요?
이봄소리: 처음에는 저도 서연 언니도 그게 힘들었어요. 이 부분에 가장 큰 도움을 주신 게 권은아 연출님이었어요. 연출님이 생각하시는 그림이 명확하게 있었고, 각 장면에 대한 부연설명을 상세하게 해주셨거든요. 이 장면 사이에는 며칠간의 시간의 흐름이 있는데, 그동안 기네비어는 어떻게 지냈을 것이다. 이런 대본에는 나와 있지 않는 디테일한 서사를 저희에게 알려주셨어요. 아더와 갑자기 깊은 사랑에 빠지는 것도 현대인인 우리가 보기에는 의문이 들잖아요. 그런데 그들은 엄청난 감정 변화를 겪는 사춘기의 소년, 소녀들이고, 서로의 이념이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 운명적인 사랑을 느꼈을 거예요. 그런 설명을 연출님이 많이 해주시니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두 캐릭터 모두 넘버가 정말 어려워요. 부르면서 작곡가가 원망스럽지는 않던가요? (웃음)
장은아: 초연 때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연습실에 상주를 했어요. 그때 저랑 (신)영숙 언니가 기존 악보를 갖고 불렀는데, 그게 밋밋했나 봐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계속 음을 높였는데, 언니랑 제가 그걸 다 불러내다 보니 노래들이 다 높아진 거예요. 영숙 언니랑 농담으로 “다른 사람이 할 수 없게 높게 만들어버리는 것도 괜찮겠다”고도 했는데요. 지금은 살짝 후회되기도 하네요. (웃음) 진짜 힘들어요. 하지만 그래서 더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좋아해 주시니까 열심히 하는 거죠. 저희도 동조를 했기 때문에 프랭크에 대한 원망은 없어요. (웃음)
이봄소리: 저는 기네비어 넘버가 어렵다고 들었는데 오디션 볼 때는 쉬운 거예요. ‘뭐지? 너무 내 톤에 잘 맞고 편안한데?’ 이랬어요. 그런데 장면 연습에 들어간 날부터는 집에서 매일 울면서 러닝머신 위에서 노래를 했죠. 복병이 있었던 거예요. 그냥 부르는 게 아니라, 앞 장면에서 랜슬럿과 무술을 한 다음에 바위산을 오르락내리락했다가 점프를 하다가 뛰었다가 하면서 부르는 노래였던 거죠. 그런데 은아 언니가 너무 착하게도 같이 뛰면서 노래해보고 “야, 해보니까 좀 힘들다!” 하면서 공감해줬어요. 영숙 언니는 제게 ‘영숙 발성’을 알려줬고요. 언니가 알려준 발성법을 썼더니 진짜로 편해진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언니한테 소고기 사겠다고 했어요. (웃음) 이제는 어느 정도 노하우를 찾았지만, 그전까지는 무슨 태릉선수촌도 아니고 플랭크하고 사이클 타면서 노래를 부르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와일드혼 존경해요. (웃음)
두 분은 이번이 네 번째로 같이 출연하는 작품인데요. <엑스칼리버>는 모르가나와 기네비어가 연기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장면이 없어서 아쉬울 것 같아요. 다른 작품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가요?
장은아: <레베카> 아니면 <마리퀴리>에서 만나보고 싶어요. 제가 <마리퀴리>를 두 번 봤는데, 마리와 안느의 절절한 장면을 보고 ‘여성 서사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극도 있구나’ 싶었어요. 마음이 맞는 친구랑 하면 굉장히 남다를 것 같아요.
이봄소리: 언니를 <더데빌> 때 처음 봤는데 그때부터 친해졌어요. 언니는 모든 사람이랑 터울 없이 잘 지내는 편이거든요. 다가가기 편한 선배였어요. 항상 맛있는 걸 잘 챙겨주는데 저도 먹는 걸 좋아하다 보니 친해져서 속마음 이야기도 많이 했고요. 오랜만에 <광화문연가>에서 만났을 때도 언니가 옆에서 자신감을 북돋아줬어요. “너 잘하고 있다. 네 수아가 너무 좋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해줬죠. <광주>에서는 언니의 눈을 보고 연기할 수 있는 장면이 많아서 좋았어요. 이입이 잘 돼서 언니도 저도 많이 울었죠.
흔히들 장은아 배우 하면 강렬하거나 한이 많은 인물, 이봄소리 배우 하면 통통 튀고 발랄한 인물을 많이 떠올리는 것 같아요. 이렇게 이미지가 고정되는 게 아쉽지는 않은가요? 만약 이미지 변신을 해본다면 어떤 이미지를 시도해보고 싶은가요.
장은아: 저는 불만은 없어요. 남들이 못하는 독보적인 이미지를 할 수 있는 건 축복인 것 같아요. 주어진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가장 좋은 것 같아서 감사히 하고 싶어요. 그래도 만약에 뭔가 새로운 걸 할 수 있다면, 좀 더 인간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인간이 아닌 느낌의 캐릭터가 많은데, 이런 것도 너무 좋지만 인간적이고 드라마적인 역할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이봄소리: 저도 언니랑 비슷한 것 같아요. 전 제가 ‘청순 가련 유약’이 어울리지 않는단 걸 알아요. 누군가 새로운 기회를 주신다면 배우로서 당연히 도전하고 노력하겠지만, 지금 제게 주어진 긍정적이고 파이팅 넘치는 에너지가 좋아요. 그래도 뭔가 변신을 해보자면 ‘한 떨기 꽃’ 같은 역할보다는, 모르가나 같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이봄소리가 저런 포스도 있었어?” 하는 역할도 기회가 있으면 해보고 싶습니다.
이봄소리 배우는 최근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2>에 출연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촬영 비하인드도 궁금해요.
이봄소리: 시즌 1 때 오디션을 봤는데 그때 공연이랑 겹쳐서 출연을 못했어요. 그런데 시즌 2 때 감독님이 불러주셔서 감사하게도 짧게나마 얼굴을 비췄죠. 확실히 인기가 많은 드라마는 많은 분이 보시더라고요. 정말 많은 연락을 받았어요.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건 제가 (전)미도 언니 ‘찐팬’인데 언니랑 같은 신경외과가 아니라 산부인과였다는 거. 그래도 안은진 언니와 함께해서 행복했고요. 언니 덕분에 미도 언니랑 인사도 했어요. 오랜만에 언니를 코앞에서 보니까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오는 줄 알았어요. 너무 떨려서 바보같이 사진도 못 찍었어요. (웃음)
앞으로도 드라마 등 다른 장르에 계속 도전할 계획인가요?
이봄소리: 연극이든 매체든, 연기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으면 당연히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뮤지컬도 제의가 들어오면 당연히 열심히 하고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욕심도 많은 것 같아요. 그중에서 가장 하고 싶은 건 예능입니다. ‘런닝맨’, ‘라디오스타’, ‘놀면 뭐하니’ 등에 나가고 싶어요.
장은아 배우는 재작년 <마리 앙투아네트>로 인터뷰할 때 연기에 대한 욕심이 많이 생겼다고 하셨는데요. 최근 연기를 위해 특별히 노력한 부분이 있다면.
장은아: 작년에 소극장 공연을 많이 했어요. 소극장에서 디테일한 연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스모크>를 선택했고요. 배운 것도 많고 변화한 부분도 많아요. 가장 큰 변화는 연기자 소속사에 들어간 것이고요. 이전까지는 항상 가수 회사에 있었는데 처음으로 연기자 회사에 들어갔어요. 다른 분야에도 도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봄소리, 장은아로서 기네비어, 모르가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봄소리: “그냥 아더 옆에 있어!” (웃음) 마지막 장면에서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모르는 척, 어쩔 수 없는 척 아더 옆에 있으라고요. “아더가 불쌍하지도 않니? 다 죽고 혼자 남았는데 그냥 곁에 있어.” 이렇게요.
장은아: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마.” 인생에서 성공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모르가나는 워낙 사회생활을 못 해본 사람이라 그걸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파국을 맞은 것 같아요. 저도 아등바등 사는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에 모르가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뮤지컬 <엑스칼리버>
2021.8.17 ~ 2021.11.7
서울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8세 이상 관람가
공연 시간 160분김준수, 카이, 서은광, 도겸, 이지훈, 강태을, 에녹, 신영숙, 장은아, 민영기, 손준호, 최서연, 이봄소리, 이상준, 이종문, 홍경수 등 출연
올댓아트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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