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유진과 유진> 작곡가 안예은 인터뷰
청소년 소설 <유진과 유진>이 뮤지컬화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눈에 띈 점은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이 작곡을 맡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안예은은 ‘K팝 스타’ 시즌5에서 준우승하며 이름을 알린 싱어송라이터입니다. 대중적으로는 ‘홍연’, ‘상사화’ 등의 곡이 잘 알려져 있고, 최근엔 ‘문어의 꿈’이 CM송으로 쓰이면서 남녀노소의 사랑을 받고 있죠. 안예은은 평소 뮤지컬을 즐겨 보는 ‘뮤덕’임을 자처해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유진과 유진> 작곡은 버킷리스트 달성이자 ‘덕업일치’였던 셈인데요.
<유진과 유진>의 원작은 아동 성폭력 문제를 다룬 이금이 작가의 동명 소설입니다. 동명이인인 두 주인공 ‘작은유진’과 ‘큰유진’이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죠. 이기쁨 연출과 배우 임찬민, 김히어라, 강지혜, 정우연, 이아진 등 대학로에서 주목받고 있는 여성 창작진 및 배우들이 참여한 점도 눈길을 끄는데요. 의미 있는 작품으로 뮤지컬 작곡의 꿈을 이뤄 감사하다는 안예은을 지난 7월 1일 만났습니다.
오래전부터 뮤지컬 작곡이 꿈이었다고 들었어요. <유진과 유진>으로 그 꿈을 이루게 됐네요.
제가 뮤지컬, 연극 좋아한다고 많이 떠들고 다녔는데요. 그러면서 제작자분들과 연이 닿아서 함께 작업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빨리 꿈을 이룰 줄은 저도 몰랐어요. (웃음)
‘안예은이 장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색깔이 뚜렷한 아티스트로 유명해요. 반면 뮤지컬은 정해진 대본에 맞춰 작업해야 해서, 어렵지는 않았나요?
사실 저는 항상 이야기에 맞춰 음악을 만드는 작업을 좋아했어요. 이야기가 없으면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곡을 쓰기도 해요. 그래서 오히려 대본이 있어서 훨씬 재밌게 작업을 했어요. 저는 최대한 안예은이 쓴 노래라는 티가 안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는데요. 공연 후기를 보면 ‘안예은이 투명도 50으로 뒤에 떠서 노래 부르고 있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그래도 제 개인 앨범이었다면 쓰지 못했을 곡들이 있긴 해요. 오프닝 곡이나 동혁 오빠 넘버(‘잊지 못한 짝사랑’),’탈출’처럼 밝은 노래는 평소 자주 쓰지 않거든요.
대중가요와 뮤지컬의 문법이 달라서 고민되기도 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워낙 뮤지컬을 좋아했기 때문에 뮤지컬 문법에 최대한 맞춰야겠다고 생각하며 작업했어요.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대중가요에는 ‘훅(hook)’이라고 하는 꽂히는 구절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뮤지컬은 대사 전달이 우선순위잖아요. 대중가요의 정형화된 형식에 맞춰서 쓰면 안 될 것 같다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대본 작가님이 대본과 가사를 주시면 제가 멜로디를 붙이고, 음악감독님이 편곡을 해주시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유진과 유진>은 개막 전부터 주요 창작진과 배우들이 전부 여성이라는 점으로도 주목을 받았어요. 이런 작품에 참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나요?
일단 개인적으로는 첫 뮤지컬 작업이라 엄청난 의미가 있었어요. 원작도 정말 좋은 작품이기 때문에 작품 자체의 의미도 컸고요. 전원 여성인 팀에서 일해본 적이 저도 처음이라서 굉장히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유진과 유진> 넘버 중 가장 고민하며 작업했던 넘버는 무엇이었나요?
‘미운 오리 새끼’요. 제작진분들과 회의할 때도 그 장면을 많이 말씀하셨거든요. 자칫하면 작은유진에 비해 큰유진의 문제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 수도 있고, 속없다고 비칠 수도 있다고요. 그래서 저도 이 곡이 사춘기의 흔한 문제로 치부되지 않도록 제일 어둡게 썼어요. 그래도 별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 주고 계신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곡한 곡을 뮤지컬 배우들이 부르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덕업일치’ 같은 느낌? (웃음) 다른 분들이 제 노래를 유튜브에서 커버해 주시는 것이나 다른 가수분께 곡을 써서 드리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뮤지컬은 노래마다 상황도 있고 연기도 하고 동선도 있으니까 많이 새로웠죠. 제가 워낙 좋아하는 장르였기 때문에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나요.
가수 안예은의 목소리로 <유진과 유진> 넘버들을 들어볼 기회도 있을까요?
들려드릴 기회는 있겠지만, 공연이 다 끝난 후에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회가 되면 개인 콘서트에서 한 곡 정도 들려드리고 싶어요.
<유진과 유진>이 개막한 후에 실제 공연을 본 소감은 어땠나요?
제가 제 공연할 때는 안 떨거든요? 그런데 이건 너무 떨렸어요. 그리고 제 노래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극이랑 어우러져서 보니까 ‘내가 이렇게 좋은 노래를 썼나?’ 싶었어요. 마지막에 기립박수 쳐 주시는 걸 보고 ‘내가 그래도 민폐는 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공연을 본 주변인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저희 큰이모랑 엄마가 첫 공연을 보시고 우셨대요. 큰이모랑 엄마는 장년층 여성이시잖아요. 극에 나오는 인물들이 거쳐 온 과정을 다 겪은 세대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 또 다르다고 하시더라고요. ‘유진이가 힘들었겠다’ 내지는 ‘엄마가 힘들었겠다’가 아니라, 이들을 위에서 관망하는 느낌이 드셨대요. 그래서 결말에서 다 잘 됐다는 점에 뭉클했다고 하시더라고요.
평소 SNS나 댓글을 많이 찾아본다고 들었어요. <유진과 유진> 후기도 자주 찾아보는 편인가요?
많이 봐요. 궁금해서요. 다행히 좋게 봐주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기억에 남은 후기는, 첫 공연인가 두 번째 공연 때 “안예은을 잡아다가 검은 방에 가두고 뮤지컬 넘버만 쓰게 하자”라는 후기가 있었는데요. 너무 웃겼어요. (웃음)
뮤지컬에는 어떻게 처음 관심을 갖게 됐나요?
12, 13살쯤에 <밑바닥에서>라는 작품으로 처음 뮤지컬을 접했어요. <노트르담 드 파리> 내한공연도 기억에 남았고요. 그러다가 대학교 때 <레미제라블>을 ‘덕질’하기 시작했죠. 제가 너무 좋아하는 ‘혁명’을 주제로 한 뮤지컬이었거든요. 영화로 먼저 보고 10주년, 25주년 콘서트 DVD도 사서 보고 책도 봤어요. 본격적으로 소극장 뮤지컬을 보러 다닌 건 2017년 <광염소나타>를 보면서부터였어요. 행복한 이야기는 별로 제 취향이 아닌데, 이 작품은 제 취향을 응축시켜놓은 것 같았거든요.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은요?)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예요. 한결같이 ‘소나무’ 같은 취향입니다. (웃음) 파괴적이고 음울한 작품을 좋아해요.
사극이나 어두운 분위기의 뮤지컬에 작곡으로 참여해도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앞으로 이런 뮤지컬 작업을 해보고 싶다’ 하는 작품이 있나요?
음울하고, 서로 싸우고, 누군가 죽어나가는 그런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웃음) 공포나 스릴러도 너무 써보고 싶고요.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처럼 어두운 고전을 재해석한 작품도 좋을 것 같아요.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한번 작업해 보고 싶어요. <헝거게임>도 뮤지컬로 만들면 재밌을 것 같고요.
최근 뮤지컬 작곡이라는 꿈도 이뤘고, 싱글 음원 ‘문어의 꿈’도 온라인에서 굉장한 화제가 됐어요.
제가 항상 말씀드리는 건데요. 최종 목표로 삼고 있던 일이 생각보다 빨리 이뤄지는, 굉장히 좋은 일이 제게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홍연’, ‘상사화’, ‘문어의 꿈’ 모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를 정도로 갑자기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피자 박스를 들고 집에 왔는데 불바다가 되어있는 ‘짤’ 아세요? 그런 기분이에요. (웃음)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최근 아티스트로서 안예은이 가진 고민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익숙한 걸 계속해야 하는지, 아니면 내 고집대로 새로운 걸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예전부터 계속하고 있어요. 그래도 다행히 제가 하고 싶은 걸 다른 분들도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하면 이걸 길게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먼 고민이죠. 이 직업을 오래 하기 위해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드라마,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참여했는데요. 앞으로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나요?
애니메이션 OST를 너무 해보고 싶습니다. 애니메이션 음악은 사람을 벅차오르게 만드는 전문 장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는 겪을 수 없는 세상이잖아요. 그 세상에 정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시공간을 뒤트는 음악이 아닌가 싶어요. 아, 그리고 웹툰 <극락왕생>이 드라마화된다고 들었는데요. OST 작업을 꼭 하고 싶습니다. 진짜 좋아하는 작품이거든요.
안예은을 통해 뮤지컬을 처음 접한 팬도 있을 테고, 반대로 뮤지컬을 통해 안예은이라는 아티스트를 알게 된 관객도 있을 텐데요. 각각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가요?
감사하게도 뮤지컬을 통해 제게 관심이 생긴 분들은, 이 친구가 평소에 무슨 음악을 하는지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반대로 저를 통해 뮤지컬을 보게 되신 분들은 안예은을 배제하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저였어도 제가 좋아하는 가수가 작곡을 했다면 음악 위주로 감상할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최대한 전체적인 극에 집중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뮤지컬 <유진과 유진>
2021.06.19 ~ 2021.08.22
서울 드림아트센터 3관
공연 시간 100분
만 10세 이상 관람가임찬민, 김히어라, 강지혜, 정우연, 이아진 출연
올댓아트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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