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 감독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비틀쥬스>가 지난 7월 개막했습니다. 화려한 무대 효과와 유준상·정성화·신영숙 등 중견 뮤지컬 배우들의 연기가 호평을 받는 가운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들이 또 있습니다. 바로 제2의 주인공 ‘리디아’ 역을 맡은 두 신인 배우, 홍나현과 장민제입니다.
리디아는 엄마를 잃은 슬픔을 안고 있는 고스족 소녀입니다. 원작 영화에서는 당시 신인이었던 위노나 라이더가 리디아 역을 맡아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는데요. 뮤지컬에서는 리디아의 비중이 대폭 커졌습니다. 리디아가 슬픔을 극복하고 가족과 화해하는 과정이 작품의 큰 축을 담당하죠.
리디아를 맡은 두 배우는 이번 <비틀쥬스>가 첫 대극장 뮤지컬 출연입니다. 홍나현은 주로 대학로에서 활동했습니다. <앤>,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 등 창작 뮤지컬에서 존재감을 알려 왔는데요. 사랑스러운 에너지와 시원한 가창력으로 뮤지컬 팬들의 주목을 받던 신예였죠. 장민제는 올해 초연한 창작 뮤지컬 <검은 사제들>의 영신 역으로 데뷔했습니다. 두 번째 출연작인 <비틀쥬스>에서 벌써 주연을 꿰찬 그는 높은 캐릭터 싱크로율과 무대 장악력으로 호평 속에 공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보석 같은 신인’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두 배우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비틀쥬스> 무대에 서고 있을지, 서면을 통해 들어보았습니다.
홍나현
올해 목표가 ‘대극장 무대에 서기’였다고 들었어요. 무려 세종문화회관에서 그 목표를 이루게 된 기분이 어떤가요?
대학교 교양 수업에서 20살 때의 패기로 썼던 목표였는데, 이렇게 이루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세종문화회관이라는 큰 극장에서, 존경하는 분들과 함께 이런 즐거운 공연을 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일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에요. 짜릿합니다.
리디아를 찾는 오디션 과정이 굉장히 치열했다면서요. 기억에 남는 오디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정말 많은 양의 노래와 대사를 준비해야 했고, 여러 차례 오디션을 봤어요. 최종 오디션 때는 이미지까지 반영되어야 했기 때문에 “단발 가발을 착용하고 올 수 있느냐”는 코멘트를 받았어요. 무작정 가발 회사를 직접 찾아갔는데, 구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어요. 좌절하던 찰나에, 친한 언니 중에 멋지게 항암 치료를 이겨낸 언니가 딱 떠오른 거예요. 언니에게 연락하자마자 “그 가발로 네가 빛을 본다면 난 너무 행복할 거야.”라고 답변이 왔고, 그 가발로 오디션에 합격했어요. 너무 감사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억이에요.
리디아를 연기하면서 가장 고민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리디아는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인물들 중에서 가장 저와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친구예요. 그래서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연구하고, 다양한 각도로 접근했어요. 제가 가장 주안점을 둔 건 리디아의 성장 과정이에요. 엄마를 잃기 전, 엄마를 잃은 직후, 엄마를 떠나보낸 후의 일상, 바바라와 아담을 만난 후, 비틀쥬스를 만난 후, 저승에서 아빠와의 대화 후, 비로소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리디아까지. 이 모든 과정 속 리디아의 변화가 공연 안에서 보여지길 원했어요.
그리고 그 과정을 보신 관객 분들도 자신의 아픔을 솔직하게 대면하고 받아들일 수 있길 소망하면서 준비했어요. 저는 상처나 아픔을 덮어두는 편인데, 덮어두면 오히려 고름이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리디아는 그 상처를 늘 바라보고 질문하는 솔직하고 용감한 친구거든요. 그 친구를 통해서 제가 겪은 위로의 과정을 관객 분들께도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공중부양, 퍼펫 등 다양한 무대효과가 등장하는데요. 그중에 ‘배우인 내가 봐도 정말 신기하다’ 싶은 장면이 있다면?
저는 바바라 언니들의 공중부양을 꼽고 싶어요. 그 창의적이고 놀라운 무대 효과와 바바라 언니들의 실감 나는 연기력이 어우러져서,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 정말 집에서 혼자 영화 보는 것처럼 몰입해서 봤어요. 박진감 넘치는 강령회 장면의 화룡점정을 찍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습이나 공연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That Beautiful Sound’라는 넘버를 할 때, 제 심장 소리가 느껴질 만큼 신나요. 사실 그 노래가 안무와 동선에서 지켜야 할 약속이 많아서 연습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지금은 모두가 그 장면에서 ‘미친 텐션’으로 공연하고 있어요. 그 에너지 안에서 모든 약속들이 딱딱 들어맞을 때, 큰 전율이 온 몸으로 느껴집니다.
리디아가 ‘앤’에 이어 홍나현 배우의 새로운 ‘인생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홍나현 배우에게는 리디아가 어떻게 기억될 것 같은가요?
저는 늘 캐릭터를 ‘친구’라고 불러요. 친구를 통해서 저의 일부가 변화하기도 하고, 저로 인해서 제 친구가 변화되기도 하는 것처럼, 캐릭터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인생 캐릭터’라는 말보다는, 모두 소중한 친구들처럼 기억하고 싶어요. 리디아는 저에게 그 누구보다 강한 용기를 준 친구예요. 자신의 아픔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친구. 그래서 리디아에게 너무 고마워요.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다면?
하고 싶은 작품이나 캐릭터는 너무 많지만, 어떤 목표를 두고 달려나갈 때보다 그냥 그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했을 때 얻는 결과가 더 많다는 것을 느껴요. 제게 오는 모든 인물들을 감사하고 행복하게 만들어나가다 보면, 제가 하고 싶은 작품이나 캐릭터도 자연스럽게 와줄 것이라고 소망합니다. 요즘은 개인적으로 젠더프리 작품이나, 연극을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앞으로 만나게 될 모든 캐릭터가 기대되네요. 함께 기대해 주실 거죠?
장민제 배우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한 적도 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뮤지컬 배우로 데뷔하게 됐나요?
원래 제 최종적인 꿈은 뮤지컬 배우였어요! 너무나 감사하게도 기회가 생겨 연습생을 먼저 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어요. 그 후 회사를 나와 뮤지컬로 입시를 준비하며 정식으로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웠습니다.
데뷔 두 번째 작품으로 <비틀쥬스>처럼 주목받는 대작의 주연을 맡게 된 소감이 궁금합니다.
오랫동안 그려왔던 꿈이라 그런지 제가 무대 위에 서있다는 것이 아직 잘 실감 나지 않아요. 부담과 걱정이 많지만 그래도 ‘신나고 재미있게 하자!’란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그리고 매 공연마다 꿈꾸던 극장에서 선배님들과 호흡을 맞춘다는 게 너무 짜릿합니다. 대선배님들께 누를 끼치지 않고 함께하기 위해 저도 그만큼 열심히 고민하고 연습하고 있습니다.
리디아를 찾는 오디션 과정이 굉장히 치열했다면서요. 기억에 남는 오디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짧은 기간 안에 연기와 노래, 춤 등 많은 준비를 해야 했어요. 당시 매일매일 늦게까지 연습하고 열심히 준비를 했어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갔는데, 오디션장에서 갑자기 지정곡이었던 ‘Home’ 가사가 기억이 나지 않는 거예요! 중간에 반주는 흘러가는데, 갑자기 머리가 새하얘져서 ‘나나나나나’로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나요. 다행히 바로 기억이 나서 정확히 부르긴 했는데, 순간 너무나도 아찔했던 기억이 있어요.
리디아를 연기하면서 가장 고민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리디아는 개성이 정말 뚜렷해요. 그리고 관객들이 리디아의 ‘고스족’적인 모습도 많이들 기대하셨을 것 같고요. 저는 냉소적인 고스족 같은 모습을 부각시키면서도, 상처가 많고 여린 어린아이 같은 내면을 동시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각각의 캐릭터들을 대할 때마다 리디아의 마음 상태를 다르게 표현하려 했고, 다양한 모습이 나타난 것 같아요. 리디아라는 캐릭터를 만들면서 영화 <레옹>의 마틸다를 많이 참고했어요. 마틸다와 리디아는 비슷한 구석이 많아요. 어린 나이지만 영리하고 말괄량이예요. 둘 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요. 당시 실제 나이가 어렸던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를 보면서 리디아의 모습에 접목하려 했어요.
공중부양, 퍼펫 등 다양한 무대효과가 등장하는데요. 그중에 ‘배우인 내가 봐도 정말 신기하다’ 싶은 장면이 있다면?
저는 아직까지도 ‘왕뱀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몰라요! 마지막에 비틀쥬스가 왕뱀이를 타고 나올 때 왕뱀이 몸통이 꾸물꾸물거리는데, 그게 너무 신기합니다! (웃음)
연습이나 공연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한국인들이 모든 대답을 ‘아’로 끝낸다는 얘기 들어 보셨어요? 제가 평소에 리액션이 많은 편인데, 말버릇처럼 ‘아~’라는 말을 많이 했나 봐요. 해외 크리에이티브 분들이 저의 리액션을 보고 신기했는지 그걸 자꾸 따라 하시더라고요. (웃음) 자꾸 리액션으로 ‘아~’ 하면서 제게 장난을 쳤는데, 그게 웃기고 재밌었던 기억이 나네요.
<비틀쥬스>에선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가 중요하게 다뤄져요. 장민제 배우는 관객들에게 어떻게 불리고 싶은가요?
일단 제 이름을 불러 주시고 알아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합니다. 모든 배우의 로망이라 생각하는데요, 바로 ‘믿보배’라고 하죠. ‘믿고 보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어떤 극을 하더라도 저만의 해석으로 캐릭터를 입체감 있게 만들어서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실 수 있게 표현하고 싶어요.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작품이나 캐릭터는 무엇인가요?
저는 어떤 장르나 캐릭터에 국한되지 않고 많은 캐릭터를 만나보고 싶습니다. 정말 다양한, 상반되는 캐릭터들을 만나면서 더 큰 배우로 성장하고 싶어요!
뮤지컬 <비틀쥬스>
2021.7.6 ~ 2021.8.8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 시간 150분
8세 이상 관람가유준상, 정성화, 홍나현, 장민제, 김지우, 유리아, 이율, 이창용, 김용수, 신영숙, 전수미 등 출연
올댓아트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사진|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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