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0일 뮤지컬 <드라큘라>가 네 번째 시즌으로 관객들을 찾았다. <드라큘라>는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여인만을 바라본 드라큘라 백작과 미나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로맨스 작품이다. 화려한 무대 장치와 중독성 넘치는 넘버들로 2014년 초연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초연 때부터 전 시즌을 함께해 이제는 <드라큘라>의 아이덴티티로 자리매김한 이가 있으니 배우 김준수, 일명 ‘샤큘’이다.
매 시즌 빨간 머리의 드라큘라로 무대에 오른 김준수는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때로는 애절한 사랑 노래로 미나의 애정을 갈구하기도 하며 때로는 시원한 고음으로 공포와 광기에 휩싸인 드라큘라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네 시즌째 참여하며 <드라큘라>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을 김준수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화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별안간 웃음을 터트리다가도 작품 이야기가 나오면 자세를 고쳐 앉고 또다시 진중하게 말을 이어간 김준수와의 이야기를 지금 공개한다.
초연 때부터 <드라큘라> 전 시즌을 함께 하고 있어요. 남다른 애착이 있을 것 같은데요.
흥행 여부와 별개로 뮤지컬 작품 하나하나가 저에게 많은 깨달음을 줘요. 제가 공연을 하면서 위안을 얻는 작품도 많고요. 그런데도 그 많은 공연 중 소중한 작품을 하나 뽑자면 <드라큘라>를 빼놓을 수가 없죠. 우선 초연 때부터 임했다는 점이 커요. 또 감사하게도 저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공연이기도 해서 무대를 같이 만들어 나갔다는 성취감도 있어요.
‘샤큘’을 보기 위해 매번 다양한 분들이 관객석을 꽉 채우고 있어요.
저를 보러 와주시는 관객분들을 생각하면 다양한 감정이 들어요. 우선 제 공연을 처음 보시는 분들에 대한 책임감이 커요. 저는 매번 같은 무대를 올라가지만 누군가에겐 제 공연이 처음일 수도 있으니까요. 또 저로 인해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하는 분들에 대한 사명감도 있어요. 저로 인해 ‘뮤지컬이 꽤 재밌는 장르구나’ 느끼게 된다면 그것만큼 기쁜 것도 없고요. 매번 같은 공연을 계속해서 보러 와주시는 관객분들에겐 노래와 연기로 보답해야겠단 생각뿐이에요.
이번 시즌 <드라큘라>는 이전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나요?
무대 세트와 영상이 업그레이드됐어요. 예를 들면 미나에게 400년 전 있었던 이야기를 설명하는 넘버 ‘She’를 부를 때 시계탑이 거꾸로 돌아가는 영상이 있어요. 영상 자체가 많이 강렬해져서 스토리 전개에 집중이 더 잘 된다고 말씀하시는 관객분들이 많더라고요.
드라큘라는 초현실적인 캐릭터라 표현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캐릭터 표현을 위해 어떤 고민을 거쳐왔나요?
생각해 보면 제가 이런 추상적인 캐릭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엘라자벳>의 ‘죽음’도 ‘관념캐(관념 캐릭터)’이고요. 그런데 저도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심란해요. 드라큘라도 말로만 들었던 흡혈귀를 연기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항상 전제 조건은 ‘너무 오글거리지 않게’입니다 (웃음). 판타지 극들은 자칫 잘못하면 아동극처럼 보이기 쉽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유치하지 않고 관객분들이 납득할 수 있게끔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야 하죠. 사이코 같은 웃음소리, 일반적이지 않은 걸음걸이 등으로 조금 더 이질적인 모습의 드라큘라에 중점을 많이 뒀어요. 초월적인 존재인 만큼 그 차이를 몸짓으로 확연하게 드러내야 더 효과적일 것 같더라고요.
이번 시즌에선 신성록, 전동석 배우와 함께 드라큘라를 연기해요. 그렇다면 쟁쟁한 배우들 가운데 ‘샤큘’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제 매력을 제 입으로 이야기해야 해서 부끄럽네요(웃음). 그래도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조금 더 미치광이 같고 괴기스러운 흡혈귀를 무대에서 보고 싶으시다면 ‘샤큘’입니다. 제가 또 아이돌 가수 출신이잖아요? 그래서 동작, 제스처, 몸짓으로 관능적인 드라큘라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아주 조금은 자신이 있지 않나 싶어요.
이전부터 호흡을 맞춰온 조정은, 임혜영, 그리고 새롭게 합류한 박지연 배우의 미나는 각각 어떤 매력이 있나요.
조정은 배우는 드라큘라와 그 운명에 이끌리는 미나를 누구보다 가장 섬세한 감성과 노래로 표현해 줘요. 임혜영 배우는 미나 중에서 가장 발랄한 것 같아요. 해맑은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나중에 드라큘라가 떠난 이후에 미나가 느끼는 처절함이 배가 돼서 나타나는 것 같아요. 또 밝은 미나의 모습을 보면 400년 전에 드라큘라와 미나가 얼마나 행복한 사랑을 나눴을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을 자아내고요. 이번에 처음 합류한 박지연 배우는 가장 강단 있고 주체적인 미나예요. 운명조차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선택을 내리는 미나 같죠.
특히 좋아하는 넘버나 장면이 있나요?
이건 매 시즌마다 달라져요. 초연 때 이 공연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넘버가 바로 ‘Loving You Keeps Me Alive’였어요. 그런데 재연 때는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신 ‘Fresh Blood’에 애정이 가더라고요. 삼연 때는 심지어 제가 부르는 넘버도 아닌 ‘Before the Summer Ends’였어요. 조나단이 미나에게 불러주는 넘버인데 그걸 관 속에 숨어서 듣고 있으면 그 감정과 가사가 크게 와닿았어요. 이번 사연 때는 ‘Train Sequence’요. 이 넘버가 제대로 잘 이뤄져야만 관객분들이 피날레에 가서 의문을 갖지 않으실 것 같아요. 결말로 가는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죠.
초연 때부터 빨간 머리를 계속 고수하고 있어요. 다음 시즌에서 다시 드라큘라를 맡는다면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도 있나요?
빨간 머리는 할 때마다 힘든데 또 그만큼 반응이 너무 좋아요. 사실 처음엔 어떻게 하면 흡혈귀를 조금 더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시작한 일이었어요. 무대가 워낙 어두워서 명확하게 대비되는 색으로 시각적인 에너지를 줘야겠다 싶었죠. 그런데 다음 시즌에도 또 빨간 머리를 하겠다는 확답은 못하겠어요. 조금 더 색다른 모습의 드라큘라를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크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빨간 머리를 하면 길거리를 잘 못 돌아다녀요. 모르시는 분들은 많이 놀라시더라고요. 샤워 한 번만 해도 바닥이 그냥 피바다가 되고요(웃음).
가벼운 질문도 드리자면, 관 속에 들어가 있는 장면이 힘들진 않은가요? 상당히 더울 것 같아요.
좋은 질문 정말 감사해요. 제가 관객분들께 꼭 알아 달라는 건 아닌데요(웃음). 안에 있는 게 사실 너무 힘들어요. 무대 밖에서 노래하고 연기하는 게 훨씬 쉽다고 느껴질 정도로 너무 더워서요. 안에 있을 때는 거의 반 죽은 것처럼 눈만 감고 있어요. 그러다가 관이 열리면 다시 또 드라큘라로 돌아와서 연기하죠. 안 그래도 다음 공연 때는 관 안에 에어컨을 설치할 수 없냐는 농담도 몇 번 했었어요. 그러려면 저희 공연이 더 잘 돼야겠네요(웃음).
벌써 뮤지컬 배우로 11년째 활동하고 있어요. 처음엔 아이돌이 뮤지컬에 진출한다는 것이 흔하지 않았던 때라 우려 섞인 반응도 있었어요. 하지만 묵묵히 공연하면서 관객들의 반응을 바꿨고요.
11년 전에는 아이돌이 뮤지컬 진출하는 게 굉장히 드문 일이었어요. 기성 가수가 와서 주연을 한다는 것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는 것도 물론 알았고요. 또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갖는 분들도 꽤 있었어요. 그런데 그럴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단 생각만 했어요. 후배 아이돌 가수들이 뮤지컬에 왔을 때, 적어도 시작하기 전부터 비난을 얻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싶었죠. 또 소풍 온 것처럼 기웃거리기보단 진중하게 뮤지컬에 빠져서 작품 수를 늘려가다 보면 언젠간 관객들도 제 마음을 알아주시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무대에 모든 걸 쏟아내는 스타일인데요. 무대가 끝나고 공허함을 느끼기도 하나요?
공허함은 없어요. 예전에 <모차르트>를 할 때 매 회차 탈진할 것처럼 울어서 다들 걱정이 많았어요. 팬분들도 그렇고 부모님께서도 여쭤보시더라고요. ‘나도 네 무대를 보면 잠자기 전까지 마음이 아픈데 준수 너는 괜찮니?’ 하시면서요. 그런데 정말 다들 걱정할 필요가 없으세요. 저는 그 어떤 공연이라도 나와서 의상을 벗을 때부터 괜찮아져요(웃음). 물론 무대 위에선 모든 걸 다 쏟아내지만 그 감정이 무대 밖으로 나오는 스타일은 절대 아니에요.
무대 위에서 쏟아낸 에너지는 어떻게 다시 채우나요?
모든 무대를 감사한 마음으로 올라가고 거기서 받는 박수만큼 저를 채워주는 게 어디 있을까요? 또 ‘스타라서 외롭다, 무대가 끝나면 공허하다.’ 사실 이런 말들 모두 사치라고 생각해요. 물론 예전에는 연예인으로서 힘든 것만 보였던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잃은 만큼 얻은 것도 큰데 왜 유독 잃은 것들에만 집착하며 불행하다 느꼈을까 싶어요. 조금만 둘러봐도 연령대, 직업군, 사회적 위치와 상관없이 다 각자 얻고 잃은 게 분명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공허함이나 외로움은 모두가 갖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에겐 이제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날 수 있다는 감사함만 남았어요.
드라큘라에게는 사랑이 있듯, 실제 김준수에게 목숨 걸고 지키고 싶은 신념이 있다면?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말자’예요. 인간 김준수, 배우 김준수로서 부끄럽게는 살지 말아야죠. 혹은 저를 응원하고 믿어주는 팬분들은 부끄럽게 하지 말자는 마음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저를 좋아한다고 해서 부끄럽게 느끼는 일이 없도록 제가 이 신념을 잘 지켜야죠.
마지막으로 <드라큘라>를 보러 올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올여름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리고 싶으신 분들은 뮤지컬 <드라큘라>, 그리고 저 ‘샤큘’을 보러 와주시기 바랍니다!
뮤지컬 <드라큘라>
2021.5.20 ~ 2021.8.1
서울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공연 시간 165분
14세 이상 관람 가능김준수, 전동석, 신성록, 조정은, 임혜영, 박지연, 강태을, 손준호, 조성윤, 백형훈, 선민, 이예은 등 출연
올댓아트 강나윤 인턴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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