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가 개막했습니다. <카포네 트릴로지>는 2015년 국내 초연을 시작으로 2016년 재연, 2018년 삼연까지, 매 시즌마다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했던 작품입니다. 이번 시즌에는 새로운 제작사와 창작진을 만나 리프로덕션 버전으로 3년 만에 돌아왔는데요. 과연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을까요?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는 영국 연극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제이미 윌크스’의 대본과 ‘제스로 컴튼’의 연출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2016년 한국에서 초연됐던 연극 <벙커 트릴로지> 또한 이들의 작품인데요. ‘트릴로지’ 시리즈를 눈여겨 봐왔던 관객들이라면, 이번 <카포네 트릴로지>의 개막 소식이 반가울 것 같습니다.
시카고를 휩쓸었던 금주법과 마피아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는 20세기 초, 금주법과 대공황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합니다. 금주법이란 1920년부터 미국에서 발효된 법으로, 알코올 농도 0.5% 이상의 음료 양조와 판매, 유통을 금지하는 법안인데요. 해당 법이 시행된 이후 합법적인 절차로 술을 얻게 되지 못한 시민들이 강한 독성의 술을 마시다가 사망하는 일이 잇따랐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거대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하며 막대한 금융 손실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공황은 미국 전체로 퍼져나갔고, 엄청난 실직자들을 만들어내며 평온했던 사회를 하루아침에 붕괴시켜 버립니다.
이때를 틈타 성행했던 인물이 바로 전설적인 마피아 ‘알 카포네’입니다. 1000명의 부하를 거느리며, ‘밤의 황제’라고 불릴 만큼 큰 영향력을 자랑했던 악명 높은 인물인데요. 그는 금주법을 역이용한 밀주, 매춘, 도박 등을 통해 부를 축적했습니다. 더 나아가 경쟁 관계의 갱단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밸런타인데이 대학살’을 비롯해, 수많은 폭력과 살인, 테러를 지휘하면서 시카고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기도 했죠.
하나의 방, 세 개의 이야기
이런 ‘알 카포네’가 실제 묵었던 렉싱턴 호텔 661호.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는 그곳에서 10년 간격으로 벌어지는 세 가지 사건을 다룹니다. 각 사건은 ‘로키’, ‘루시퍼’, ‘빈디치’란 제목의 에피소드를 구성하는데요. 60분씩인 각 에피소드는 하루에 두 편 또는 세 편씩 묶어서 공연됩니다. 세 에피소드는 독립된 옴니버스 형식이지만,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이야기 사이에 소소한 연결고리가 있어, 이를 찾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세 이야기는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지고 규칙과 질서가 사라진 당시 사회의 민낯을 각각 코미디, 서스펜스, 하드보일드 장르로 풀어냅니다.
공연의 첫 에피소드를 담당하는 ‘로키’는 코미디 장르로, 1923년 쇼걸 롤라 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결혼식을 하루 앞둔 그에게 갑작스럽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는데요. 결국 롤라는 살인 누명을 쓰게 될 위기에 처합니다.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와 유쾌한 풍자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에피소드지만, 사실 롤라는 그 누구보다 카포네 시대를 살아가던 서민의 삶을 함축한 인물입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서스펜스 장르의 ‘루시퍼’입니다. ‘로키’로부터 약 10년 뒤인 1934년, 렉싱턴 호텔 661호에 머물고 있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이 부부에게는 말 못 할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남편 닉 니티가 카포네 조직의 2인자라는 사실인데요. 아내 말린을 행복하고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닉의 욕망으로 인해, 점점 둘은 파멸의 길로 빠져들게 됩니다. ‘루시퍼’는 등장인물을 통해 불안하고 폭력적인 사회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이들은 자신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주체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죠.
마지막 에피소드는 하드보일드 장르인 ‘빈디치’입니다. 1943년, 직장 상사 두스에 의해 아내를 잃은 전직 경찰 빈디치는 두스를 향한 잔인한 복수극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런 빈디치에게 의미심장한 인물, 루시가 찾아오는데요. 이들은 부패한 사회에서 규칙과 정의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세 에피소드는 독립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꼭 시간 순서대로 봐야 하거나, 세 에피소드를 모두 봐야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 에피소드를 모두 관람하면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겠죠.
실제 호텔 방 같은 ‘블랙박스’ 무대에서 ‘프로시니엄’ 무대로
지난 2018년 시즌까지 <카포네 트릴로지>는 블랙박스 극장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됐습니다. 블랙박스 극장이란 무대와 객석의 구조를 변형할 수 있는 가변형 극장을 말합니다. 연출가의 의도에 따라 공간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어, 실험적인 작품에서 많이 쓰이는 형식인데요. 이전 시즌 <카포네 트릴로지>의 경우 공간 전체를 렉싱턴 호텔 661호처럼 실감나게 꾸몄습니다. 관객들은 객실 양쪽 벽에 앉고, 방의 중앙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펼쳤습니다. 무대와 객석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까웠고, 관객들은 불편하리만큼 가까이 붙어 앉아 있었죠. 때문에 관객들은 러닝타임 내내 실제 사건이 벌어지는 객실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즌은 조금 다릅니다. 프로시니엄 무대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로 공연장을 옮겼기 때문인데요. 프로시니엄 무대란 무대와 객석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고, 관객이 정면에서 무대를 관람하는 형식의 무대입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형태의 무대죠.
관객들의 몰입도가 높은 블랙박스형 무대로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기 때문에, 프로시니엄 무대는 창작진들에겐 도전이자 모험일 수밖에 없었는데요. 오루피나 연출과 강남 작가가 합류한 이번 공연은 이전 시즌만한 깊은 몰입감은 없지만, 대신 관객들이 거리감을 갖고 객관적으로 에피소드들을 바라볼 수 있게 했습니다.
어둡고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와 에피소드마다 180도 달라지는 배우들의 연기는 여전히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매 시즌마다 관객들에게 지적받았던 소비적인 여성 캐릭터의 사용에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는데요. 2021년 네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과감한 리프로덕션이 과연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관객들이 평가해줄 것 같습니다.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2021.9.14 ~ 2021.11.21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2부작- 2시간 20분 (인터미션 1회)
3부작- 3시간 40분 (인터미션 2회)
17세 이상 관람가이건명, 고영빈, 박은석, 송유택, 장지후, 강승호, 홍륜희, 소정화, 박가은 출연
올댓아트 임승은 인턴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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