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1일,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개막했습니다. <빌리 엘리어트>는 2005년 런던에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제작된 뮤지컬입니다. 국내에서는 2010년 초연 이후,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하고 있는데요. 2017년 재공연을 끝으로 4년 만에 돌아온 만큼, 많은 관객들의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빌리 엘리어트>는 1980년대 광부 대파업 시기의 영국 북부 탄광촌을 배경으로 합니다. 11살 소년 빌리는 우연히 복지센터에서 발레를 접하게 되고,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천재적인 재능을 발견하게 되죠. 일련의 사건들이 빌리를 좌절시키기도 하지만, 소년은 꿈을 위해 포기하지 않습니다. 가슴 따뜻한 빌리의 성장 스토리와 배우들의 화려한 퍼포먼스는 매 시즌마다 많은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작품에는 어린이부터 원로 배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배우들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주인공 빌리부터 그의 친구 마이클과 데비 등, <빌리 엘리어트>에는 수많은 아역 배우들이 등장하는데요. 이들은 매 공연마다 성인 배우 못지않은 고난도 안무와 풍부한 감정 연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아역 배우들은 몇 배 더 고된 연습과 스케줄을 소화해내야 할 수밖에 없죠.
다행히도 최근 들어 아동‧청소년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아역 배우들을 현장에서 보호하기 위한 지침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공연계에서도 이를 위해 다앙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데요. 특히나 많은 아역 배우들이 출연하는 <빌리 엘리어트>나 <마틸다>와 같은 작품들은 체계적인 아동 보호 방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학업에는 지장 없을까?
<빌리 엘리어트>의 아역 배우들은 대부분 초등학교에 재학 중입니다. 이들은 학업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대부분 방과 후에 연습과 공연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학교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학업 스케줄과 부딪히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다만, 빌리 역을 담당하고 있는 배우들은 주 1-2회 정도 학교 조퇴 후 공연장으로 향합니다. 전체 발레 수업과 아크로바틱 수업, 플라잉 무대 연습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 장면만 나오면 아역 배우들은 대기실로 옮겨진다?
공연 중 특정 장면에 적용되는 지침들도 있습니다. 먼저, 10살 이하의 아역 배우들은 1막 중 ‘Solidarity’ 장면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해당 장면은 다소 격한 가사와 안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9살 이하의 아역 배우들은 빌리와 데비가 화장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도 노출되어선 안됩니다. 대화에 성적인 내용이 포함되기 때문인데요. 이처럼 어린이에게 부적절할 수 있는 장면들이 등장하면, 해당 나이의 아역 배우들은 모니터 화면을 볼 수 없는 별도의 공간에서 대기해야 합니다. 작품 안에 등장하는 욕설이나 성적인 농담도, 공연이나 리허설 외의 다른 장소(대기실, 복도 등)에서는 일절 허용되지 않습니다.
식사부터 안전까지… 아역들을 책임지는 ‘샤프롱’
<빌리 엘리어트>는 샤프롱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샤프롱이란 과거 젊은 여자가 사교장에 나갈 때, 따라가 보살펴주던 이를 뜻하는 프랑스어인데요. 최근에는 공연계의 아역 배우들을 전담 관리하는 스태프를 통칭해서 부르는 용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해당 작품에는 총 6명의 샤프롱이 아역 배우들과 함께 합니다. 샤프롱은 아이들이 연습장이나 공연장에 도착하는 순간, 부모로부터 아이들을 인계받습니다. 부모는 연습실이나 백스테이지에 출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이후에는 이들이 안전하고 프로답게 연습과 공연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안전부터 스케줄 관리, 컨디션, 정서, 학습, 식사, 공연 동선 관리 등, 모든 영역에 대한 관리를 책임지는데요. 특히나 연습 과정 중에는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에, 샤프롱이 배우들에게 적절한 멘탈 케어도 제공합니다.
아역 배우들은 <빌리 엘리어트> 프로덕션과 함께 있는 모든 시간을 샤프롱과 보냅니다. 그만큼 채용 조건도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데요. 영국에서는 3년마다 지역 행정당국의 인증을 받아야만 샤프롱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국내에는 아직 이러한 공식적인 절차가 마련되어 있진 않죠. 대신 제작사 측에서 자체적으로 샤프롱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샤프롱은 먼저 연습 및 공연의 진행 방식이나 백스테이지에 대해 기본 이해를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아이들을 지도하는 만큼, 아동 교육 관련 경험이 있거나 아이들을 좋아해야 합니다. 이 외에도 집중력, 공정성, 인내심, 평정심 등은 샤프롱으로서 꼭 갖추고 있어야 하는 자질입니다.
그렇다면 샤프롱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흘러갈까요. 현재 빌리를 담당하고 있는 샤프롱은 아역 배우들의 컨디션과 기분을 체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는 적절한 마인드 컨트롤도 도와주죠. 배우에게 안전에 대한 주의를 심어주고 무대를 체크하기도 합니다. 공연이 시작되면, 빌리의 모니터링을 담당합니다. 스태프들과 함께 배우의 장면 전환을 돕기도 하며, 인터미션(쉬는 시간)에는 빌리의 다리를 마사지해 주거나 간식을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2막에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인데요. 공연이 끝난 후에는 부모에게 아이들을 인계하고 다음 날의 스케줄을 공지해야 합니다.
아역 배우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만큼, 샤프롱들에게는 다양한 에피소드도 많습니다. 2017 시즌 샤프롱으로 참여했던 현 컴퍼니 매니저는 “쉬는 시간 및 대기 시간에 아이들과 오목 게임을 하고는 하는데 이우진 군이 생각보다 잘해서 진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생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오목 연습까지 했어요.”라며 유쾌했던 에피소드를 밝혔죠. 또한 “지난 시즌에는 빌리 역할을 맡았던 심현서 군에게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고 믿게 만들어서, 현서 군이 새벽까지 거실에서 산타를 기다렸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현서 군 아버님께서 새벽까지 함께 거실에서 산타를 기다려서 고생은 했지만 좋은 추억 남겨주었다고 감사해 해주셨어요.”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스케줄 공지는 짧게, 멀티 캐스트는 많게!
<빌리 엘리어트>는 티켓 오픈 전에 전체 스케줄을 공지하는 일반적인 뮤지컬 공연과 달리, 아역 배우들의 스케줄을 공연 약 2주 전에 공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역 배우의 컨디션을 수시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빌리 엘리어트> 해외 공연에선 아예 사전 캐스팅 공지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한국에선 국내 공연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해외 팀과 상의 후 지금과 같은 시스템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빌리 엘리어트> 프로덕션은 모든 아역 배우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공연 당일이나 공연 중에라도, 아역 배우에게 문제가 발생할 시 캐스팅을 변경할 수 있죠. 이는 티켓 예매 시 공지사항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2017년 시즌에는 빌리 역 김현준 군의 발목 통증 및 부종으로 당일 캐스팅이 변경된 경우도 있었는데요. 이러한 상황을 대비해 어린이 배역에는 2~4명의 배우들을 멀티 캐스팅했습니다. 한국 초·재연 당시 빌리 역은 5명의 배우가 캐스팅됐고, 이번 시즌에는 총 4명의 배우가 빌리를 연기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컴퍼니에서는 다양한 노력을 통해 아역 배우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안전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매 공연 전 안전 점검을 진행하고, 성장기인 아역 배우들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전문 피지오(물리치료사) 케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빌리 엘리어트>에 출연하는 수많은 아역 배우들은 매 공연마다 뛰어난 역량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이 완벽한 무대를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빌리 엘리어트> 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가슴 따뜻한 빌리의 성장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여러분도 직접 공연장을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2021.8.31 ~2022.2.2
서울 대성 디큐브아트센터
공연 시간 175분
8세 이상 관람 가능김시훈, 이우진, 전강혁, 주현준, 조정근, 최명경, 최정원, 김영주, 박정자, 홍윤희, 강현중, 나다움, 성주환, 임동빈, 김시영, 이선태, 김명윤, 오세준, 김명희 등 출연
올댓아트 임승은 인턴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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