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18일 뮤지컬 <비틀쥬스>가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으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합니다. <비틀쥬스>는 팀 버튼 감독의 동명 영화를 무대화한 뮤지컬입니다. 2019년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기발한 비주얼과 중독성 강한 음악으로 마니아층의 호평을 받았는데요. 따끈따끈한 브로드웨이 신작을 한국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개막 전부터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습니다.
타이틀롤인 비틀쥬스는 98억 년 된 악동 유령입니다. 제4의 벽을 깨고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가 하면 짓궂은 돌발행동으로 다른 인물들을 깜짝 놀래기도 하는 발칙한 캐릭터죠. 이번 한국 초연에서 이 독보적인 매력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할 배우는 유준상과 정성화입니다. 평소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기로 유명했던 유준상에게도 이번 작품만큼은 연습 중 후회와 좌절을 할 만큼 쉽지 않았다는데요. 지난 6월 8일 유준상을 만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비틀쥬스> 출연을 결심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가 명쾌합니다. 앞으로 만들 영화가 죽음에 대한 내용이에요. 죽음이 뭔지 고민하던 차에 <비틀쥬스> 대본을 딱 받았는데, ‘어떻게 죽음에 대한 메시지를 이렇게 명쾌하게 담았지?’ 했어요. 이 작품 한번 해봐야지 싶었죠. 그런데 연습을 들어간 후에 수백 번 후회했어요. (웃음) 그래도 이제는 힘든 시간은 털어냈고요. 관객분들과 만날 시간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힘이 분명 관객분들에게 전달될 것 같아요. 미국식 코미디가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비틀쥬스>의 전 세계 라이선스 초연이란 점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 위상이 높아져 있기 때문에 브로드웨이 제작진의 선택을 받은 것 같아요. 코로나19 때문에 브로드웨이는 멈춰있는데 한국에서 공연할 수 있어서 그분들도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어요. 우리를 존중해 주면서 서로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작품이니까 너희가 따라와’가 아니라 ‘한국에선 우리도 처음이니까 같이 만들어나가자’ 하는 자세가 인상 깊었고요. 저도 그분들을 ‘형’이라고 부르면서 같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웃음)
미국식 유머를 어떻게 한국식으로 풀어낼지가 관건일 것 같은데요.
고민과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분석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결국 전 세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코미디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걱정은 어느 순간 덜어내게 됐고요. 번역을 한 김수빈 작가가 단어와 문장을 잘 선택하고 만들어줬어요. 번역의 도움도 크게 받았습니다. 비틀쥬스가 외로운 유령이에요. 98억 년 동안 혼자 있다가 외로움을 떨쳐내기 위해 인간 세계에 왔기 때문에, 말이 많아요. 그래서 음악도 엄청 빨라서, 대사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더 신경을 쓰고 있죠. 외국 스태프들도 뉘앙스를 잘 전달하기 위해 지금도 계속 문장들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평소 대본을 철저히 외우는 걸로 유명한데요. 가사가 자꾸 바뀌어서 힘들었겠어요.
그래서 새벽까지 대본을 보며 외웁니다. 외국 연출가가 “너희는 왜 대본을 안 들고 연습을 해? 다 외웠어?” 하고 놀랄 정도였죠. (웃음)
비중과 활동량이 많아서 체력적으로도 힘들다고요.
저도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어요. 마스크를 쓰고 노래하고 춤을 추면 숨이 안 쉬어져요. 하늘이 노랗게 보이더라고요.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을 할 때는 몸을 만들려고 하루에 한 끼만 먹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점심, 저녁 다 먹는데도 그때보다 몸무게가 덜 나가요. 근육도 다 손실됐죠. 하지만 몸이 가벼워져서 안무는 잘 됩니다.
팀 버튼 감독의 원작 영화와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원작을 하도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잘 안 나요. 최근엔 일부러 다시 안 봤습니다. 뮤지컬은 영화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부분이 많아요. 특히 리디아와의 관계가 그렇죠. 리디아와 비틀쥬스가 어느 순간 친구가 되거든요. 현실 세계에서도 고맙게도 리디아 역의 두 배우가 저를 오빠라고 부르면서 친구처럼 대해주고 있습니다. (웃음)
신기한 무대 효과와 퍼펫으로도 유명한 작품인데요.
저도 이제 곧 보게 됩니다. 빨리 보고 싶어요. 제가 손짓 하나 ‘딱’ 하면 배경이 다 바뀌거든요. 지금까지는 바뀐다고 하니까 그렇게 알고 연습을 했는데, 실제로 무대에서 구현된다고 생각하면 정말 신기하고 재밌을 것 같아요. 대사 하나, 손짓 하나에 모든 큐가 연결되어 있어요. 제가 손 하나만 올려도 음악과 무대효과가 시작되죠. 하나도 허투루 할 수 없어서 끊임없는 반복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비틀쥬스>를 비롯해 초연에 많이 참여해 왔어요. 특별히 초연을 선택하는 이유가 있나요?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고요. 누군가가 먼저 한 작품은 그분들이 이미 잘했기 때문에 제가 굳이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에 초연을 계속하는 것 같습니다.
정성화 배우와 같은 역에 더블 캐스팅됐는데요.
정성화 배우와는 <그날들>을 같이 했어요. 이번엔 동지의 입장에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서로 왜 힘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묵묵히 응원해 주고 있고요. 각자의 색깔이 명확하기 때문에 관객분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주지 않을까 싶어요.
유준상 비틀쥬스만의 매력을 꼽아본다면요?
에너지, 저세상 텐션? (웃음)
앞서 비틀쥬스가 외로운 유령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어쩌면 배우란 직업도 외롭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이 외롭습니다. 누구나 외롭겠지만요. 저도 젊어 보이지만 어느새 반백 년 넘게 인생을 살면서 ‘삶이라는 게 참 외로운 거구나’ 느끼고 있습니다. (웃음) 이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이 작품의 대본을 받았어요. 외로움에 대해 이렇게 재밌게 전달하는 작품을 만났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흔히 50세를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합니다. 지천명을 넘으면서 새롭게 느낀 것이 있나요?
이번에 연습하면서 엄청난 좌절을 겪었어요. 단순한 좌절이 아니라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좌절이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엄청난 질문을 던져준 시간이었죠. 이걸 이겨내려면 연습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그동안 내가 훈련해온 20여 년의 시간이 이런 순간을 위한 거였다고 깨달으면서 홀가분해졌어요. 이러기 위해 지금까지 연습과 훈련을 했구나 느꼈죠. 연기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순간이었어요.
얼마 전 한국뮤지컬협회에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1억 원을 기부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흔히 절 뮤지컬 배우 1.5세대라고 하시는데요. 옛날의 열악함을 생각하면 지금은 대단한 발전이 있었던 거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무대를 지키길 잘했단 생각을 수도 없이 하고 있어요. 거기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고요. 공연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런 힘든 시기에도 공연을 통해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인생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에요. 객석에 앉아있는 순간만큼은 다른 세상이 되거든요. 저도 제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힘닿는 데까진 해보고 싶어요. <비틀쥬스>는 처음엔 10년 이상 할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60살에 이런 텐션 갖기 쉽지 않잖아요. (웃음) 하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뮤지컬 <비틀쥬스>
2021.6.18 ~ 2021.8.7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 시간 150분
8세 이상 관람가유준상, 정성화, 홍나현, 장민제, 김지우, 유리아, 이율, 이창용, 김용수, 신영숙, 전수미 등 출연
올댓아트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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