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뮤지컬 <광화문연가>가 개막했습니다. <광화문연가>는 죽음까지 단 1분만을 앞둔 ‘명우’가 인연의 신 ‘월하’를 만나 떠나는 추억 여행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과거부터 현재까지 명우의 삶을 훑으며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굵직한 기억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하죠. 때문에 <광화문연가>가 그리는 시대적 배경들은 중장년층에게 매우 익숙합니다. 1980년대 학생 운동부터 당시 대학생들의 MT와 술자리, 격변의 1990년대부터 기적의 2002년 월드컵까지. 짧게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은 자연스레 향수를 일으키죠.
하지만 중장년층은 물론 요즘 세대 관객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것이 있으니 바로 넘버들입니다. <광화문연가>는 ‘옛사랑’, ‘사랑이 지나가면’,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 ‘소녀’, ‘광화문 연가’ 등 수없이 많은 히트곡을 남긴 故 이영훈 작곡가의 곡들로 이뤄진 주크박스 뮤지컬입니다. 그의 페르소나, 가수 이문세의 목소리로 남은 수많은 이영훈 작곡가의 곡들은 1980~1990년대 우리나라 대중가요를 책임졌다고 할 수 있는데요. 노래 제목만 들어도 전 국민이 자연스레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노래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회상할 수 있을 만큼 매우 대중적이죠. 또한 약 30년이 흐르는 시간 동안 여러 유명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며 전 세대의 공감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광화문연가> 속에 등장하는 주요 넘버들을 함께 알아보고, 원곡 발매 이후 어떤 가수들의 목소리로 리메이크되어 대중들을 만났는지 함께 알아보시죠.
깊은 밤을 날아서
“삶은 난제였으나, 죽음은 축제라!” 죽음을 앞둔 명우의 앞에 나타난 월하. 자신을 인연의 신이라 소개하며 남은 1분 동안 명우의 기억들을 꺼내 추억 여행을 하자고 제안하는데요.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과 월하의 존재를 믿지 못하는 명우의 모습에 월하는 곧 맞이할 죽음과 추억 여행을 즐기라 조언하며 ‘깊은 밤을 날아서’ 넘버를 시작합니다.
‘깊은 밤을 날아서’는 이문세와 이영훈이 함께 작업한 이문세 정규 음반 4집의 수록곡입니다. 가수 이문세 하면 떠오르는 발라드곡과 달리 빠른 비트로 진행되는 것이 큰 특징인데요.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시적인 가사로 담아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한 가수 이문세 이후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해 화제가 됐으며 여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도 등장했었죠. 그중에서도 슈퍼주니어 규현의 첫 번째 솔로 미니 1집 <광화문에서>에 수록된 ‘깊은 밤을 날아서’는 당시 대중가요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프로듀서 켄지가 편곡을 맡아 더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가수 악동뮤지션 수현 또한 음악 및 예능 방송에서 여러 차례 커버 공연을 선보이며 해당 노래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죠.
고운 그대 손을 잡고 밤 하늘을 날아서 궁전으로 갈 수도 있어
소녀
월하의 안내 속에 추억 여행을 시작한 명우. 그의 첫 번째 기억은 열여덟 살이었던 1984년 봄의 덕수궁입니다. 수줍음만 많았던 당시의 명우는 덕수궁에서 우연히 만난 수아의 당돌하면서도 유쾌한 모습을 보고 단번에 사랑에 빠지는데요. 꽃이 만연한 덕수궁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18살의 과거 명우와 죽음을 앞둔 현재 명우가 함께 ‘소녀’를 부르며 수아를 추억합니다.
‘소녀’는 오늘의 이문세를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이문세 3집 속 7번 트랙입니다. 1985년, 가수 이문세가 이영훈 작곡가를 처음으로 만나 함께 작업한 앨범 3집은 대한민국 가요계에 큰 획을 그었는데요. 당시 무려 150만 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했으며 타이틀곡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비롯해 ‘빗속에서’, ‘휘파람’, ‘하얀 느낌’등 9개의 트랙 모두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뮤지컬 <광화문연가>에도 이문세 3집 속 9개의 트랙 중 무려 5개의 곡이 등장하니 그 앨범의 위상을 뚜렷하게 보여주죠.
가수 성시경, SG워너비 등 여러 후배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된 이 곡이 1020대 세대들에게도 확실하게 각인을 찍은 계기가 있으니 바로 <응답하라 1988> OST 덕분입니다. 과거 1980년대를 따뜻하면서도 인간적인 시선으로 그려내 센세이셔널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여러 과거의 명곡들을 리메이크해 OST로 선보였는데요. 그중 당시 인디음악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었던 오혁의 독특하면서도 애절한 보이스를 만난 ‘소녀’는 오랜 시간 차트에 머물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내 곁에만 머물러요
떠나면 안 돼요
사랑이 지나가면
사계절을 함께 보내며 사랑을 키워가는 명우와 수아에게도 위기가 찾아옵니다. 대학에 진학한 수아는 학생 운동에 매진하며 시위에 참여하는데요. 어느 날 명우는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경찰들에게 맞서다 폭행당해 연행되는 수아의 모습을 목격합니다. 수아를 사랑하는 명우였지만 어린 나이의 그는 두려움에 수아를 보호하지 못하고 도망칩니다. 이후 죄책감에 빠진 명우는 수아와 점차 멀어지고, 설상가상으로 입영통지서를 받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여전히 수아를 향하는 명우의 깊은 사랑, 옛사랑에 대한 수아의 슬픔이 만나 ‘사랑이 지나가면’ 넘버가 흘러나옵니다.
‘사랑이 지나가면’은 이문세 4집 앨범의 타이틀곡입니다. 3집 앨범으로 15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한 이영훈·이문세 콤비는 4집 앨범으로 약 280만 장 판매라는 경이로운 결과를 얻어냅니다. 앨범에 올라간 9곡을 비롯해 타이틀곡 ‘사랑이 지나가면’은 이영훈 작곡가 특유의 서정적이면서도 담담한 사랑 표현 방식으로 사랑을 받으며 1987년 골든디스크 음반 대상을 수상합니다.
여러 후배 가수들을 거쳐 지나간 ‘사랑이 지나가면’은 특히 여성 솔로 아티스트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발라드 가수 이수영이 해당 노래를 리메이크한 데 이어 2010년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중가요를 책임지고 있는 가수 아이유도 해당 노래에 애정을 표현했죠. 1980년대부터 사랑을 받아온 추억 속의 노래들을 리메이크해 모은 아이유의 앨범 <꽃갈피>는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10~20대들에게는 과거 아날로그 감성의 묘미를 선사했습니다. 또한 ‘너의 의미’, ‘나의 옛날이야기’,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등의 곡들과 더불어 아이유의 목소리로 부른 ‘사랑이 지나가면’도 오랜 시간 실시간 음원 차트에 남아 연간 79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
빗속에서
과거의 사랑을 뒤로한 채 각자의 또 다른 인연을 만나게 되는 명우와 수아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하지만 단번에 옛 기억을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가기란 모두에게 쉽지 않은데요. 월하는 직접 ‘BGM’까지 불러주며 두 사람의 추억을 극적으로 연출해줍니다. 월하의 조력자인 ‘그대들’이 함께 부르는 ‘빗속에서’는 과거를 추억하는 일에서 오는 쓸쓸함과 덧없음을 더 돋보이게끔 합니다. 마지막에 몰아치는 월하의 애절한 노래는 관객들의 빛바랜 옛 기억 속의 슬픔을 다시 불러일으키기도 하죠.
가장 최근 ‘빗속에서’를 커버한 아티스트는 바로 밴드 잔나비입니다. 리얼리티 음악 프로그램 <비긴 어게인– 오픈 마이크>에 출연한 잔나비는 작은 한옥 주택에서 ‘빗속에서’를 공연했는데요. 전 세계 곳곳의 명소들을 찾아 버스킹 공연을 진행하는 기존의 <비긴 어게인>과 달리, 시간이 바랬지만 여전히 우리의 일상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소한 공간들을 찾아 공연한다는 <비긴어게인–오픈 마이크> 취지와 잘 맞는 선곡이었죠.
비 내리는 거리에서 그대 모습 생각해
광화문 연가
새로운 인연을 만난 명우, 이제 그의 옆엔 그를 사랑하는 시영이가 늘 함께합니다. 둘은 정동길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명우는 자신이 작사·작곡한 노래를 들려주죠. 노래 제목도 아직 정하지 않았다며 홀로 기타 반주에 맞춰 담백하게 불러 나가는 넘버가 ‘광화문 연가’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계속해서 과거의 것만을 노래하는 명우의 모습에 시영은 서운함을 느끼는데요. 명우가 여전히 첫사랑 수아를 잊지 못했고 그가 현재의 시간과 존재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느껴 투정을 부립니다.
‘광화문 연가’는 이명훈·이문세 명콤비가 제작한 명반 3부작의 완결판 앨범 5집에 수록된 곡입니다. 5집 또한 대중들이 익히 알고 있는 ‘시를 위한 시’, ‘붉은 노을’,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등의 곡들로 이뤄져 3연속 히트에 성공합니다.
이후 2004년, 가수 이수영이 리메이크 앨범 5.5집 <Classic>을 발매했고 타이틀곡 ‘광화문 연가’는 2004년 음반 판매량 연간 2위를 기록해 또다시 크게 성공하는데요. 이수영의 리메이크 앨범 성공 이후로 2000년대 여러 발라드 가수들이 연이어 리메이크 앨범을 발매하며 ‘명곡 재해석’ 트렌드를 이끌었다고 평가받습니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옛사랑
시간이 흘러 명우와 시영은 결혼해 함께 늙어갑니다. 어느 겨울, 서울 중심 속 광화문, 시청, 덕수궁을 벗어나 한강 고수부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죠. 때마침 눈이 내리고, 명우는 자신이 작곡한 ‘옛사랑’을 불러 나가기 시작합니다. 또다시 지나온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가며 노래를 부르는 듯한 명우. 시영은 그런 명우를 향해 그의 그런 모습까지 사랑한다고 말하는데요. 명우 또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진정한 마지막 사랑이 누구를 향했는지 점점 깨닫게 되죠. 한강 고수부지에서도 여전히 눈 내리는 광화문 거리의 풍경을 노래하는 명우. 평생 그의 작곡에 큰 영감을 준 ‘기억 속 빈집’의 주인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지금까지 수많은 리메이크로 재탄생한 곡들 모두 누군가의 추억 속에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는 노래이지만, 명곡의 힘은 역시 원곡에서 오는 것이겠죠. 담백하고 소소한 가사와 향수를 자극하는 목소리로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킨 故 이영훈 작곡가와 가수 이문세가 오랜 시간 사랑을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빛바랜 기억 속 기쁨과 슬픔을 기꺼이 꺼내 소박하게 추억할 수 있게 하는 명곡의 힘, 원곡 가수 이문세의 ‘옛사랑’까지 감상해 보시죠.
뮤지컬 <광화문연가>
2021.7.16 ~ 2021.9.5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공연 시간 160분
8세 이상 관람 가능윤도현, 엄기준, 강필석, 차지연, 김호영, 김성규, 전혜선, 리사, 문진아, 송문선, 양지원, 황순종, 홍서영, 이채민, 심수영 등 출연
올댓아트 강나윤 인턴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콘텐츠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