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6일 뮤지컬 <비틀쥬스>가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으로 개막해 국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뮤지컬 <비틀쥬스>는 2018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팀 버튼 감독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특히 초연 당시 브로드웨이에서 볼 수 있는 무대 효과의 집약체라는 호평을 얻으며 큰 관심을 끌었다. 이러한 무대 장치와 더불어 주목을 받은 부분이 또 있었으니 바로 주인공 ‘비틀쥬스’ 역이다. 약 150분의 러닝 타임 내내 비틀쥬스는 무대 이곳저곳을 누비며 재치 있는 대사와 에너지 넘치는 넘버들을 선보인다. 격렬한 동선에 무대 장치와의 합까지 맞춰야 하는 비틀쥬스 역, ‘극한 직업’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번 <비틀쥬스> 한국 공연에서는 배우 유준상과 정성화가 비틀쥬스를 번갈아 연기한다. 배우 정성화는 SBS 공채 3기 개그맨으로 데뷔한 후 뮤지컬 배우로 전향해 약 17년째 무대 위에서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뮤지컬 <영웅>, <레미제라블>, <맨오브라만차>, <킹키부츠>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속에서 굵직한 역할들을 개성 넘치게 소화해 국내에선 이제 베테랑 뮤지컬 배우로 통한다. 지난 21일 온라인 인터뷰로 배우 정성화를 만나 그의 <비틀쥬스> 도전기를 자세히 들어봤다.
개막이 두 차례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관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좋은 후기가 많은데요.
처음 공연이 연기됐을 때 굉장히 조마조마했어요. 연습하면서도 개막일을 연기한다는 건 생각조차 못 했으니까요. 그만큼 배우들의 텐션이 떨어질까 봐 걱정이 많이 되더라고요. 이럴수록 연습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런스루 리허설을 쉬지 않고 진행했습니다. 더 디테일한 연습에 중점을 두기도 했고요. 그래서인지 불행 중 다행으로 훨씬 더 좋은 퀄리티의 공연을 보여드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리뷰들을 읽어봤는데 좋은 후기들이 많아서 기분도 좋아요.
다른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출연 배우들이 ‘유난히 힘든 연습’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는데요. <비틀쥬스>의 어떤 점이 어렵고 새롭게 다가왔나요?
<비틀쥬스>는 무대 기술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어요. 모든 무대 장치가 오토메이션을 통해 움직여요. 컴퓨터로 모든 게 조종되는 거죠. 그래서 대사, 춤, 노래가 모두 약속된 자리에서 진행이 돼야 해요. 하나의 대사라고 하더라도 앞 부분은 무대 왼쪽에서 치고 뒷부분은 무대 오른쪽에서 치는 그런 세세한 약속들이 모두 존재해요. 그래서 배우의 모든 움직임도 무대 장치의 일환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이전에는 이런 식의 무대를 준비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훨씬 새로웠고 또 그만큼 어려웠죠.
한국식 코미디를 보여주고자 많은 준비를 했다고 들었어요. 실제 공연 중 애드리브도 많이 하시나요?
언뜻 보면 비틀쥬스 역에 자율적인 부분이 많이 허용된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이게 사실 연출의 일부분이에요. 비틀쥬스의 대사들이 애드리브라고 생각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연출 본연의 목적인 거죠. 연습 때는 모든 배우들이 자신이 맡은 역의 대사뿐만 아니라 모든 역의 대사들에 아이디어를 냈어요. 협력 연출가와 김수빈 번역가님이 모든 아이디어를 종합해 다시 대사화하셨고요. 저도 연습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내긴 했지만 실제 공연 중에는 애드리브를 거의 안 합니다. 무대 위에서 하는 건 모두 연출가와 합의된 부분이에요.
수많은 춤과 노래를 소화해야 해서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이 작품의 런스루 리허설을 처음 했던 날이 기억나요. 런스루 끝나고 제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누가 말을 걸어도 대답을 못할 정도였어요. 유준상 형도 마찬가지더라고요. 그런데 나이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웃음). 제가 40대 후반대이지만 20대가 와도 체력적으로 힘든 건 비슷하지 않을까요. 무조건 체력을 올려야 할 것 같아 연습 끝나고 집에 가서도 트레드밀을 달리면서 노래 연습을 했어요. 또 유준상 형과 제가 코드가 굉장히 잘 맞는 곳이 바로 약이에요(웃음). 홍삼, 아미노산, 아르기닌 등 좋은 영양제는 무조건 공유하면서 함께 체력을 열심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처음 매체들을 통해서 <비틀쥬스>가 뮤지컬화된다는 소식을 봤어요.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했다는 말에 여러 영상들을 찾아봤는데 각종 무대 장치와 효과음에 깜짝 놀랐어요. 무엇보다 이렇게 투자가 많이 된 ‘코미디’ 작품도 나오는구나라고 생각했고요. 우리나라에서 하면 어떨까 싶었는데 정말 우리나라로 들어오더라고요. 무조건 제가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개그맨 출신이기도 하고 워낙 코미디를 사랑하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비틀쥬스는 그동안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던 캐릭터예요. 어떤 식으로 캐릭터를 이해하고 연구했을지도 궁금한데요.
<비틀쥬스>는 죽음이라는 어두운 상황을 즐겁고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작품이에요. 이걸 극대화해주는 캐릭터가 비틀쥬스고요. 그래서 비틀쥬스는 악동 같은 이미지가 강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악동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영화들을 참고했는데요. 영화 <비틀쥬스>는 물론이고 <다크나이트>의 조커를 많이 참고했어요. 그들이 보여준 특유의 몸놀림이 인상 깊더라고요. 특히 조커는 몸 전체를 앞으로 숙이기보다는 뒤로 젖히는 느낌이 강해요. 여기서 모티브를 얻어 저만의 기괴하지만 유쾌한 악동 비틀쥬스의 모습을 무대 위에서 구현하고 있습니다.
리디아 역을 맡은 두 배우 모두 대극장 뮤지컬에서 첫 주연을 맡은 신예인데요. 선배로서 칭찬하고 싶은 점이 많을 것 같아요.
보석 같은 배우들이 탄생했다고 생각해요. 대극장 뮤지컬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은 대극장의 무대와 관객석을 전부 다 채울 수 있는 성량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두 배우 모두 그 성량을 충분히 갖고 있어요. 홍나현 배우는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안정적인 연기가 인상적이에요. 장민제 배우는 대극장 뒤까지 닿는 연기 전달력이 크게 칭찬할 점이고요. 그래서 매 회차마다 달라지는 연기 호흡들에 오히려 제가 신나서 기대를 하게 되더라고요. 저도 이런 귀한 배우들을 만나서 행복한데 관객분들도 정말 오랫동안 즐거우시겠다 싶어요.
코미디 연기로 인정 받은 배우입니다. 이번 <비틀쥬스>를 하면서 새롭게 느낀 코미디 연기의 포인트가 있다면요.
코미디 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약속’이에요. 약속을 통해 코미디를 짜고 그걸 완벽한 타이밍에 드러내야 가장 고급스러운 극적 장치가 되지 않나 싶어요. 갑자기 튀어나온 듯 보이지만 그때 나온 대사와 행동 모두 잘 짜 놓은 약속의 일부분인 거죠. 또 하나의 캐릭터로서 관객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코미디 연기를 할 때 저 ‘정성화’ 개인의 모습이 나오는 걸 선호하지 않아요. 내가 갖고 있는 개인기를 사용하기보다는 맡은 캐릭터를 충실하게 소화해 나오는 개그적인 연기가 코미디의 정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정성화 배우의 필모그래피는 늘 소화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있는 캐릭터였어요. 쉽지 않은 도전을 계속 해나가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제 자신을 소개할 때 ‘고생 전문 배우 정성화’입니다라고 해요. 매번 작품을 맡을 때마다 고생스러운 역할을 맡는 건 맞아요. 그런데 도전해서 인정을 받는 것만큼 짜릿한 순간이 또 없어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무난한 모습의 캐릭터를 잘 소화하는 것보다는 도전적인 역할을 맡아서 그걸 소화해낼 때 주는 행복함이 훨씬 더 커요. 그래서 항상 작품을 맡을 때마다 도전에 중점을 많이 두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듣다 보니 <비틀쥬스>가 커리어적으로도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을 것 같아요.
네, 당연하죠. 커리어적으로 의미가 상당해요.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를 대한민국에서 진행한다는 건 그만큼 우리나라 뮤지컬을 브로드웨이에서 주목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주목받고 있는 이 작품의 주인공을 맡았잖아요. 게다가 흔하지 않은 코미디 장르의 작품이라 더 의미가 깊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이후에 한국의 창작 블랙 코미디극을 꼭 맡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마지막으로 <비틀쥬스>를 보러 오실 관객분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비틀쥬스>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보다 희망적인 방식으로 그려내 우리들의 삶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끔 하는 작품입니다. 배우 개인의 역량보다는 뮤지컬에서 사용하는 모든 요소들의 합이 더해져 더 뛰어난 시너지를 내는 공연이고요. 비록 팬데믹이라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지만 관객분들이 오셔서 꼭 희망적인 메시지를 갖고 가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뮤지컬 <비틀쥬스>
2021.7.6 ~ 2021.8.7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 시간 150분
8세 이상 관람가유준상, 정성화, 홍나현, 장민제, 김지우, 유리아, 이율, 이창용, 김용수, 신영숙, 전수미 등 출연
올댓아트 강나윤 인턴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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