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오를 때마다 화제의 중심이었던 뮤지컬 <지킬앤하이드>가 10월 19일 돌아옵니다. 이번 시즌 역시 화려한 캐스팅으로 관심을 모으는 가운데, 배우 아이비와 민경아도 이름을 올렸는데요. 두 배우는 2018년 처음 <지킬앤하이드>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아이비는 평소의 밝고 유쾌한 이미지와 달리 비극적이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루시 역을 맡아 이미지 변신에 도전했죠. 당시 데뷔 4년 차의 신예였던 민경아는 지킬의 약혼자인 엠마 역을 맡아 많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후 3년 동안 아이비는 <아이다>, <고스트>, <레드북> 등의 작품에서, 민경아는 <엑스칼리버>, <레베카>에서 활약했습니다. <렌트>와 <시카고>에는 두 배우가 함께 출연하기도 했죠. 3년이 흐른 만큼 더 성숙한 루시와 엠마를 선보이고 싶다는 두 배우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두 분 다 <지킬앤하이드> 두 번째 참여인데요. 어떻게 이 작품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됐나요?
아이비: 사실 <지킬앤하이드>를 관객으로서 본 적은 있지만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루시 역은 김선영, 소냐 선배님처럼 성량이 좋고 허스키한 톤의 배우들이 하는 역할이라 생각했거든요. 저는 꿈도 꾸지 못했던 역할이었어요. 그래서 오디션 제의가 들어왔을 때 못한다고 했는데, 매니저가 절 설득하는 거예요. 남들은 하고 싶어서 난리인데 왜 이렇게 용기가 없냐면서요. 그래서 고민 속에서 오디션을 보고 걱정도 많이 했는데요. 다행히 관객분들이 새로운 모습을 반겨주신 것 같아서 반가웠던 작품이에요.
이 작품을 통해 배운 게 많았어요. 제가 불렀던 노래 중 가장 어려운 노래였기 때문에 배우로서 한걸음 성장하는 계기가 됐죠. 훌륭한 선배님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재밌었던 기억이 나요. 팀워크가 참 좋은 공연이었어요.
민경아: 저도 엠마는 생각지도 못했던 역할이었어요. 그런데 <웃는 남자> 리허설 도중에 프랭크 와일드혼이 “네가 엠마를 해줬으면 좋겠다.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사실 되게 힘든 역할이었어요. 고음도 많고, 강한 내면을 가진 여성을 표현하는 게 버겁기도 했죠. 나이가 좀 더 있어야 하는 역할이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3년이 흐른 지금은 좀 더 성숙한 내면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난 시즌 좋은 기억이 많았기 때문에 다시 불러주셨을 때 기뻤어요.
지난 시즌 어떤 추억이 그렇게 기억에 남았나요?
아이비: 오디컴퍼니가 ‘이벤트의 천국’이에요. 제일 재밌었던 건 플리마켓이었어요. 그때 제가 ‘판매왕’이 돼서 에어팟도 받고 호텔 숙박권도 받았어요. 경아가 제 VIP 고객이었어요. (웃음)
민경아: 공연 녹음한 걸 컴퍼니에서 보관을 하잖아요. 그런데 가끔 ‘삑사리’가 나면 그걸 회식 때 틀어주세요. 그럼 다들 웃기다고 뒤집어지는 거예요. 그런 이벤트가 많아서 진짜 재밌었어요. 아이비 언니가 회식 때 백댄서를 데리고 와서 춤춘 기억도 나요.
아이비: 배우들이 지인을 초대하려고 해도 티켓이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PD님한테 회식 자리에서 춤을 출 테니 티켓을 한 장만 달라고 했거든요. 그때 삼겹살집에서 춤추고 티켓 한 장 받았죠. (웃음)
지금까지 수많은 배우가 엠마와 루시를 연기했는데요. 그중 민경아 엠마, 아이비 루시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아이비: 경아는 신이 내린 목소리 같아요. 허스키하면서도 맑고 청아하고 독보적인 음색을 갖고 있어요. 공연할 때 백스테이지에서 듣기만 해도 경아의 목소리와 사랑에 빠질 것 같아요. 경아 자체도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어서 엠마에 ‘찰떡’이지 않나 싶어요.
민경아: 언니의 노래는 파워풀하면서도 청아해요. 그런 톤 때문에 루시가 더 가여워 보이는 것 같아요. 특히 저랑 목소리가 잘 어울려요. 언니랑 같이 공연할 때면 ‘In His Eyes’를 늘 녹음했거든요. 톤이 비슷해서 그런지 목소리가 잘 섞이는 것 같아요.
이번 시즌 연습을 진행하면서 지난 시즌에 비해 발전했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나요?
민경아: 노래에 대한 부담이 가장 컸던 공연이었는데요. 이번엔 레슨도 받고 있고 주위 언니, 오빠들이 음악적인 부분을 많이 도와주셔서 두려움을 조금 극복했어요. 이전 시즌 녹음했던 걸 지금 들어보면 ‘왜 이렇게 얕게 들릴까?’ 싶어요. 제가 소리를 너무 예쁘게만 내려고 했던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소리를 풍성하게 내는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데, 확실히 좀 더 성숙해진 것 같아요.
아이비: 확실히 지난 공연을 1년 동안 했던 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무대에 많이 서는 것만한 연습이 없거든요. 몸에 익었던 것들이 나오면서 스트레스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연습에 임하고 있어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무르익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넘버가 좋기로 유명한 작품이잖아요.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넘버는 뭐예요?
민경아: 전 ‘In His Eyes’를 정말 좋아해요. 부르다 보면 울컥하기도 하고 지킬에 대한 마음도 커져요. 위로 받는 느낌도 들어요. 유일하게 루시 언니들과 만나는 장면들이기도 하고요. 공연 때마다 이 노래를 빨리 부르고 싶어요.
아이비: 저는 다 좋지만 지킬과 엠마의 듀엣인 ‘Take Me As I Am’이 참 좋아요. 멜로디가 정말 예뻐서 무대 뒤에서 따라 부르기도 하거든요. 루시 넘버 중에서는 ‘Someone Like You’를 좋아해요. 프랭크 와일드혼이 한국인이 좋아하는 멜로디를 기가 막히게 잘 쓰는 것 같아요.
이번 시즌에는 세 지킬과 함께 하는데요. 그중 류정한, 신성록 배우와는 이번 시즌에서 처음 호흡을 맞춰보시죠.
아이비: 저는 류정한 선배님 정말 팬이었거든요. 쫓아다니면서 공연 볼 정도였는데 처음 작품에서 만나게 돼서 영광이에요. 신성록 씨는 사실 뮤지컬 무대에서 본 적이 없었어요.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 너무 잘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 잘하는 분을 왜 그동안 못 봤지 후회도 됐고요. 신성록 씨는 ‘개털 코트’ 의상을 입었을 때도 ‘패션왕’이에요. 두 여자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웃음) 사실 다른 배우들과 친해질 기회가 많진 않았어요. 회식도 못하고 식사도 다 따로 하거든요. 코로나 때문에 이런 점이 참 서글퍼요.
민경아: 저는 성록 오빠랑 정한 선배님은 <레베카> 때 뵀었거든요. 정한 선배님은 사람을 굉장히 편하게 해주세요. 확실히 여유가 넘치세요. 예전에 <몬테크리스토> 때 잠깐 뵀을 땐 이렇게 재밌는 분인 줄 몰랐어요. (웃음) 성록 오빠도 정말 재밌어요. <드라큘라>에서도 오빠 공연을 좋게 봤거든요. 새로운 지킬이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사실 <지킬앤하이드>는 여성 캐릭터가 평면적이라고 자주 지적받는 작품이기도 해요. 그래도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선 관객들에게 캐릭터를 납득시켜야 하니 고민이 많이 될 것 같은데요.
아이비: 아무래도 서사가 부족한 건 사실이에요. 지킬에 집중하다 보니 엠마와 루시가 잘 안 보이는 건 사실이죠. 그래서 노래에 최대한 감정을 실으려고 해요. 장면 안에서 관객들에게 충분히 감정을 잘 전달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엠마와 루시가 있기 때문에 지킬의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인다는 생각도 들어요. 엠마와 루시의 서사를 많이 보여주는 게 과연 극에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꼭 단편적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같은 역을 맡은 다른 배우들과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도 했나요?
민경아: 사실 전 이번에 (조)정은 언니가 한다는 얘기를 듣고 저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몬테크리스토> 때도 언니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무대 뒤에서 항상 들었던 기억이 나거든요. 언니랑 음악적인 부분이나 캐릭터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엠마가 등장하는 장면이 많지 않아서 표현하기 아쉽다는 얘기도 했죠. 그러다가 언니가 영어 대본을 주셨는데요. 거기에는 지킬과의 관계가 좀 더 직접적으로 설명되어 있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연기하면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최)수진 언니랑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요. 정은 언니가 엠마들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아주고 계세요.
만약 <지킬앤하이드>에서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 볼 수 있다면 어떤 인물을 해보고 싶은가요?
민경아: 하이드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꺼내보고 싶어요. (웃음)
아이비: 저도 하이드요. 제가 좀 더 청순한 이미지였다면 엠마도 해보고 싶고요.
스스로 하이드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나요?
민경아: 하루에도 수십 번 느끼죠. 특히 불친절을 경험할 때 그래요. 누가 말을 퉁명스럽게 하는 걸 못 참는 것 같아요.
아이비: 약자에게 강한 사람. 약자한테만 강한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면 때려주고 싶죠.
서로가 했던 작품 중에 탐나는 배역이 있다면?
민경아: <레드북>이요. 노래가 너무 좋아요. 언니가 나온 영상을 진짜 많이 봤어요.
아이비: 저는 <레베카>의 ‘나’요. 저는 나이가 많아서 이제 못 하겠지만요. (웃음)
코로나19 때문에 무대에 서기도 쉽지 않은 요즘, 두 분에게 무대란 어떤 의미인가요?
아이비: 저는 뮤지컬 배우를 하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여기서 많이 얻었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연예인을 하면 사실 사회생활을 경험하기가 어려워요. 주변에서 다 도와주고 케어해주니까요. 저는 특히 솔로 가수였기 때문에 인간관계라든지 모르는 것이 정말 많았어요. 그런데 뮤지컬은 서로의 합이 굉장히 중요하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가잖아요. 그런 단체생활을 경험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도 생기고 성장할 수 있었어요. 무대가 제겐 학교였던 거죠.
이것도 30대 중반이 돼서야 조금씩 알아갔던 것 같아요. 요즘엔 조금 더 주변 사람들을 챙기려고 노력하고, 선배님들에게 경의를 표하려고 해요. 그분들이 걸어와 주신 길이 있어서 지금 우리가 좋은 환경에서 공연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10년 넘게 하다 보니 이런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민경아: 저 역시 무대라는 게 결코 혼자 해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배우, 스태프분들이 계셔야 하고, 약속 하나하나 다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늘 감사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특히 이런 시국에는 공연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해요. 그래서 무대에 오르면 더 긴장하고, 겸손해지려고 합니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2021.10.19 ~ 2022.5.8
서울 샤롯데씨어터
공연 시간 170분
14세 이상 관람가류정한, 홍광호, 신성록, 윤공주, 아이비, 선민, 조정은, 최수진, 민경아, 김봉환, 윤영석 등 출연
글·사진|올댓아트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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