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냄새 안 나요?
(재채기를 하며)
엘에이치(LH)!
커다란 탑을 짓기 위해 버려진 땅을 사 들이고 그 땅의 값을 더 받기 위해 버드나무를 심는 사또의 모습에서 국민들의 공분을 샀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부동산 투기 사건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답답함도 잠시. ‘초품아’, ‘역세권’, ‘똘똘한 한 채’, ‘줍줍’ 등 부동산 신조어를 읊조리며 사람들을 현혹하는 그 모습에 재채기로 응수하는 주인공의 한마디가 ‘사이다’ 같은 청량함을 안긴다. “엘–에이치(LH)!”
국립정동극장 레퍼토리 뮤지컬 <판>이 돌아왔다. ‘국정농단 사태’, ‘블랙리스트’ 등 사회 부조리를 향해 일침을 쏟아냈던 3년 전 무대와 마찬가지로 이번 ‘판’ 역시 조선의 권력가들을 풍자하는 동시에 지금의 현실을 신랄한 풍자와 해학으로 담아냈다.
무대는 흉흉한 역병이 돌고 있는 19세기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한다. 공부나 세상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양반가 자제인 달수는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매설방(이야기를 파는 방)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희대의 전기수(전문적으로 소설을 읽어주고 돈을 버는 직업) 호태로부터 ‘낭독의 기술’을 전수받으며 재능을 펼친다.
매설방의 주인 춘섬, 소설을 필사하는 이덕까지 합류한 ‘협업’은 무대 안팎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내시인 줄 모르고 혼인한 여인, 줄 타는 여자 광대, 신분과 제도를 뛰어넘지 못하는 사랑 등 장르를 넘나드는 주제는 양주별산대놀이, 꼭두각시놀음, 판소리, 가면극 등의 다채로운 형식으로 표현되며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여기에 전통과 현대 음악의 조화가 ‘판’의 흥을 더한다. 전통음악의 리듬에 스윙, 보사노바, 클래식, 탱고 등 서양음악을 더하고, 대금과 바이올린, 장구와 드럼 등 서양악기와 국악기를 절묘하게 결합했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일상을 유쾌하게 담아낸 대목 또한 인상적이다. 온 나라에 역병이 퍼져 외출이 자유롭지 않다는 설정이나 주막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백신침’을 맞았어도 명부를 써야 한다는 대사 등이 대표적이다.
뮤지컬 <판>은 2015년 정은영 작가와 박윤솔 작곡가가 제작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20분가량의 공연에서 출발했다. 2017년 3월 CJ 문화재단의 신인 공연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 ‘크리에이티브마인즈리딩‘을 통해 대중 앞에 처음 선보였고, 같은 해 12월 창작공연 발굴을 위한 국립정동극장 프로젝트 ‘창작 ing’에 선정됐다. 또 제7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 ‘베스트 리바이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이번 공연은 관객들이 전기수의 이야기에 말과 박수로 추임새를 넣으며 배우와 함께 극을 이끌어갔던 지난 공연과 달리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박수만 가능하다. 대신 전기수가 관객이 즉석에서 선택한 주제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등으로 참여를 유도하도록 했다.
“이건 좀 직접적이지 않나”라는 우려의 목소리에 “재담은 재담일 뿐”이라며 여유를 부리는 뮤지컬 <판>은 9월 5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진행된다.
뮤지컬 <판>
2021.7.27 ~ 2021.9.5
서울 국립정동극장
공연 시간 100분
14세 이상 관람가류제윤, 김지철, 원종환, 김지훈, 최유하, 김아영, 최수진, 박란주, 류경환, 이경욱, 김지혜, 임소라, 최영석 출연
글 올댓아트 김지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사진 |국립정동극장
콘텐츠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