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영상화하는 것은 생선회를 통조림으로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서 극장이 열려서 관객들과 만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지난 11월 16일 열린 연극 <더 드레서> 프레스콜에서 배우 송승환은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공연이 중단되거나 영상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아쉬움을 표한 것이다. 연극 <더 드레서> 역시 지난 2020년,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되어 총 48회차 중 19회차만을 공연하고 중단된 바 있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올해 다시 무대에 올랐다.
연극 <더 드레서>는 국립정동극장의 ‘연극 시리즈’ 첫 작품으로 기획된 공연이다. ‘연극 시리즈’는 한국의 명배우들을 선정해 그 배우가 직접 작품 선정부터 창작진과 배우 구성까지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그 첫 주자로 선정된 송승환은 아역배우로 시작해 공연 제작자로도 활약하고 있는 배우다.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의 프로듀서와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직접 선정한 연극 <더 드레서>는 20세기 최고의 극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로널드 하우드의 작품이다. 셰익스피어 전문 극단을 이끌어온 노배우 ‘선생님’과, 16년 동안 그의 곁을 지킨 의상 담당자 ‘노먼’의 이야기를 그렸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영국, ‘선생님’은 227번째 <리어왕> 공연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막이 오르기 직전 대사를 잊어버리는 등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관객들을 실망시킬 순 없다는 노먼의 말에 예정대로 공연을 시작하지만, 공습경보까지 울리면서 상황은 복잡해져만 간다. 난장판 속에서도 공연을 계속하려는 단원들이 모습이 코믹하게 그려지면서도, “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뭉클한 감동을 준다.
아래는 11월 16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창작진 및 배우들과 나눈 질의응답.
작년과 올해의 코로나 상황이 작품 속 전쟁 상황과도 비슷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공연을 올려야 하는 이유와 그 소감이 궁금하다.
송승환(선생님 역): 다시 공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쁘고 다행스럽다. 코로나 상황이 되면서 영상으로 공연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연극을 영상화하는 것은 생선회를 통조림으로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연극은 살아있는 배우와 관객이 만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키는 장르다. 이것을 영상으로는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서 극장이 열려서 관객들과 만나기를 기다렸다.
장유정(각색 및 연출):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때면, 내가 바깥에 떨어져 나와서 스스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 그날 화가 났던 일들이 가라앉는다. 이런 순간이 하루하루 쌓여서 내 인생을 만들어가는구나 싶다. 연극도 마찬가지다. 인생을 떨어져서 바라보게 만든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너무 뜨겁거나 차갑다. 그러나 조금 떨어져서 보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여유를 갖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연극은 참 좋은 온도를 갖고 있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연극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더 드레서>라는 작품을 선정한 계기가 궁금하다.
송승환(선생님 역): 정동극장으로부터 의뢰를 받고 많은 작품을 찾았는데,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작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 작품이 기억났다. 시대적 배경이 지금 코로나 상황과 흡사했다. 내가 아역부터 연극을 했는데, 그런 배우와 스태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게 딱 들어맞아서 이 작품을 택하게 됐다.
작년 공연과 연출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장유정(각색 및 연출): 가장 달라진 점은 1,2막이 나뉘어있던 공연을 인터미션 없는 구성으로 바꾼 것이다. 또한 디테일한 부분을 살리고자 했다. 전쟁의 폭격을 무대에서 표현하기 위해 천장에서 떨어지는 시멘트 가루나 조명 등 시각적 표현을 추가했다. 그리고 중반부쯤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타이밍에 재미를 추가하려고 했다. 극중극 상황 속에서 코믹하게 보여줄 수 있는 지점들을 부각했다. 새로운 배우들이 캐스팅되면서 거기서 나오는 새로운 발견도 있었다. 김다현의 노먼은 굉장히 예민하고 섬세하다. 양소민 배우(사모님 역)는 솔직하고 뻔뻔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있다. 이런 느낌을 잘 살리려고 했다.
극중극으로 <리어왕>이 등장한다. 지금 공교롭게도 다른 극장에서 배우 이순재의 <리어왕>이 공연되고 있기도 하다. <리어왕>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송승환(선생님 역):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면 인생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을 할 기회가 별로 없다. 연극의 역할 중 하나가 평소 잊고 있던 것들을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리어왕> 역시 그런 기회를 주는 작품이다. <리어왕>을 보면 내가 지금까지 잘 살아왔나,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돌아보게 된다. <더 드레서> 또한 마찬가지다. 사실 극중극으로 짧게 <리어왕>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깊이 있는 리어왕을 표현하기는 힘들다. <리어왕>의 난제는 코딜리어를 들어 올린다는 것이다. “이순재 선생님도 코딜리어를 드냐”고 물어봤더니, 옆에 있는 근위병이 대신 든다고 하더라. (웃음)
송승환 배우는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의 프로듀서로도 유명하다. <더 드레서>가 넌버벌 퍼포먼스와 차별화되는, 정극으로서의 매력은 무엇인가.
송승환(선생님 역): <난타>가 20개월 만에 명동에서 다시 개막한다. <난타>는 철저히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한국 작품을 해외에 갖고 나가기 위해 기획한 공연이다. 해외에서 공연을 하려다 보니까 언어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세계 어디에서도 통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 언어가 없는 <난타>를 만들었다. <더 드레서>는 원작자가 뛰어난 작가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옥같다. 작년에는 그리 깊게 느끼지 못했던 대사도 올해 다시 하면서 깊게 다가왔다. 희곡이 주는 대사, 언어의 힘이 굉장히 크다.
연극 <더 드레서>
2021.11.16 ~ 2022.1.1
서울 국립정동극장
공연시간 100분
12세 이상 관람가송승환, 오만석, 김다현, 정재은, 양소민, 송영재, 유병훈, 이주원, 임영우 출연
글·사진|올댓아트 정다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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